부산시 동래구와 동래문화원이 주최한 '2006 동래읍성 역사축제'가 10월 11일부터 15일까지 부산 동래읍성 북문광장, 동래문화회관, 온천천변 등에서 개최됐다. 축제에 시민, 자원봉사자, 학생, 관광객 등 많은 인파가 참여하여 성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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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 모습 ㅡ 조선시대 병영․복식․엽전․호패․옥사형틀체험, 동래부사 가마행차·장영실 과학캠프·참살기 건강·소원지·도자·옹기 체험 등 많은 볼거리와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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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주 |
| 이 축제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을 지키기 위해 송상현 동래부사와 동래읍성민들이 일치단결해 결사 항전한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실제 전투상황을 재연하고 읍성민들의 장터 등 생활상을 직접 체험케 하는 부산의 역사교육·체험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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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무형문화재 제 18호 동래야류 공연 - 동래지역에서 옛부터 행해지던 연희이다. 역사와 함께하는 축제를 빛내주는 전통예술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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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주 |
|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동래부사행렬·야류길놀이·가마행차, 건강 체험마당, 마당극, 가족영화제 등 전야행사가 열렸다. 14일부터 15일까지는 동래성전투 퍼포먼스, 읍성 성곽 밟기, 개막식, 불꽃놀이, 외줄타기공연, 전국시조경창·백일장 및 사생대회, 큰 장기 및 윷놀이·씨름·노래자랑 대회, 상해 홍구구 예술단 공연, 전통혼례, 무술공연 등 행사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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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학춤 공연 - 동래는 예로부터 황새가 많아 주민들이 학의 청초함과 우아한 몸짓 등을 소박한 민속의 율동에 담은 춤이다. 동래의 뛰어난 전통문화를 축체를 찾은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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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주 |
| 13일부터 15일까지 행사장에서는 동래장터가 재현됐다. 또한, 먹을거리 장터를 조성해 관람객들에게 볼거리와 편의를 제공하고, 동래 일대 상가들과 연계하여 '세일 대축제'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병영·복식·엽전·호패·옥사형틀 체험, 동래부사 가마행차·장영실 과학캠프·참살기 건강·소원지·도자·옹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기회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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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에 놀러온 아이들의 투호놀이 - 다양하고 재미있는 전통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많은 것을 느끼고 얻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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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주 |
| 이번 축제엔 긍정적인 면이 많았다.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 바가지를 쓰게 마련인 다른 축제들과 달리, 먹을거리 장터 메뉴가 보통 2000~3000원 정도여서 10000원 정도면 한 가족이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또, 축제기간 충렬사와 복천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하고 북문광장에 조성된 전시관에 축제주제관을 설치하여, 동래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인 것도 느껴졌다.
1995년부터 '동래 충렬제'라는 이름으로 열린 동래읍성 역사축제는 향토사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계승하는 데 큰 힘이 되어왔다. 지난해에는 동래구민은 물론 국내외 방문객 15만 명을 동래지역으로 유치하면서 음식업에서 3억5천만 원, 소매업에서 1억 원 등 5억4천여만 원의 파급효과를 창출했다. 안내 해설 요원 등을 배치해 교육 효과를 부각했으며, 패전지라는 인식밖에 없던 동래읍성에 대해 '숭고한 역사가 담긴 지역'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도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도 몇 가지 있었다. 동래읍성 역사축제는 역사교육형 체험 축제를 내걸었지만, 사용되는 복식과 당시 생활상을 재현한 소품들 중 많은 부분에서 역사적 고증이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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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란 전투재현 중 조선군들 모습 - 장수는 칼 한 자루를 손에 말 그대로 ‘달랑’ 들고 뒤를 따르는 군졸들은 모두들 당파(삼지창으로 알려져 있으나 삼지창과는 다름)만을 들고 진법은 전혀 무시 한 채 전투에 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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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주 |
| 특히, 임진왜란 전투재현 행사에서 사용된 무기들은 당시 군사사·전쟁사에 등장하는 사실과 무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행사에서 조선군 장수는 칼 한 자루를 말 그대로 손에 달랑 들었고, 그 뒤를 따르는 군졸들은 모두 당파(삼지창으로 알려져 있으나 삼지창과는 다름)만 들고 진법을 전혀 무시한 채 전투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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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조선군의 복장과 무기 조선시대 사용되었던 환도와 기병용 궁시일체인 동개일습을 착용한 무인들의 모습 - 조선은 장수나 병졸 모두 검집에 달린 칼 고리(띠돈)를 이용하여 겨드랑이나 허리부분에 검을 패용하였다. 화성행궁 무예24기 상설공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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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욱 |
|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 본디 조선 장수의 무장은 전복인 철릭(무관들의 평상복)이나 구군복(동달이와 쾌자, 전대 등을 갖춘 옷)을 안에 입고 두정갑이나 두석린갑 등을 착용하며, 특히 기병장수들은 동개일습(마상에서 쓰는 짧은 활인 동개궁·시를 함께 패용할 수 있는 도구)을 갖추고 검(환도)은 겨드랑이에 띠돈을 사용해 패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축제에 사용된 갑옷에서 구군복이나 철릭, 동개일습은 볼 수 없었다. 갑옷 자체도 형식이나 문양 고증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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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조선군의 복장과 무기 당파의 응용 - 당파는 주로 장창과 짝을 이루어 상대편의 장창을 찍어 눌러서 자기편의 장창을 돕는 방어용 무기였으며, 사용기법은 봉술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다. 화성행궁 무예24기 상설공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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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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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조선군의 복장과 무기 조선시대 군사무예인 무예24기가 실린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당파 - 세개의 날을 이용하여 상대의 무기를 찍어 눌러 방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주로 화전을 장착하여 화기로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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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국 |
| 임진란 당시 조선 보병은 주력 무기로 활과 화포 이외에 4m에 달하는 장창을 비롯해 월도 등 다양한 단병기들을 사용했다.
근래 사극과 전통문화 축제 등에서 조선군은 대부분 당파만 사용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당파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단 하나도 없고 다른 무기가 사용되었던 기록이 지천에 있음에도 역사축제에서까지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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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조선군의 복장과 무기 원앙진 교전 - 다양한 무기들이 서로 조화롭게 도와 적을 무찌르는 조선의 진법과 전투장면. 이처럼 조선시대의 전투재현은 진법을 이용하여야 마땅하다. 화성행궁 무예24기 상설공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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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학 |
| 또, 이날 행사에서 군졸들은 방어용 단병기로 사용하거나 가지에 화전을 장착하여 일종의 화기로 활용한 당파를 들고 합기도에서 가르치는 봉술을 구사했다. 당파는 주로 장창과 짝을 이루어 상대편의 장창을 찍어 눌러서 자기편의 장창 사용을 돕는 방어용 무기였다. 그 무게가 무거웠으며 사용기법도 현재의 현란한 봉술과는 상당히 다르다.
또, 행사 중 임진왜란이나 조선시대 무예와 전혀 관련이 없고 일본무예에서 유래한 것을 모 합기도 단체에서 전통무예인 양 시범공연을 했다. 역사왜곡이라는 시각마저 불러올 수 있는 이런 프로그램을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학도로서 이해할 수 없다. 우리 고장의 역사를 기리고 선조의 충의를 본받자는 축제를 구경하고 나오는 길엔 아쉬움이 가득했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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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왜곡이라는 시각을 불러올 수 있는 임진왜란이나 조선시대무예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모 합기도 단체의 전통무술 시범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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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주 |
| 동래구는 동래읍성의 공원화, 동래읍성 복원사업 및 지역 문화제 활성화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역사축제의 이름으로 동래읍성이라는 문화유적을 동래구민, 나아가 부산시민의 가슴속에 살려내려 한다면 많은 수정과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동래읍성 역사축제는 부산의 역사를 소재로 전국 규모의 축제를 시도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들과 수많은 외국인이 다녀가는 비중 있는 축제가 되어 가고 있다. 그만큼 책임 있는 축제로서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역사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