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133
동봉
0453북 고鼓
0454비파 슬瑟
0455불 취吹
0456저 생笙
(돗자리를 펼친뒤에 자리정하고)
-북을치고 비파뜯고 젓대를분다-
0453북 고鼓
같은 글자를 놓고 이름씨로 볼 것인가
움직씨로 읽을 것인가 하는 점은
한자에서는 종종 있는 일입니다
고슬취생鼓瑟吹笙에서
고슬鼓瑟이 이런 예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고鼓 자를 '북'이란 이름씨로만 읽을 수도 있고
'북을 치다'처럼 이름씨와 움직씨를
한 단어에서 두 번에 걸쳐 풀 수도 있습니다
또 뒤의 슬瑟을 부림말目的語로 두고
'치다'라는 움직씨로만 읽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千字文》을 해설한 이들은
한결같이 고鼓를 슬瑟의 움직씨로 풀었습니다
그러니까 고슬취생鼓瑟吹笙에서
비파 슬瑟과 생황 생笙은 부림말로
북 고鼓와 불 취吹는 움직씨로 푼 것입니다
'비파를 뜯고(치고), 생황을 분다'로요
북은 치는打 악기 타악기고
비파는 줄絃로 된 악기 현악기며
생황은 관管으로 된 악기 관악기입니다
이들 3가지는 모두 이름씨인데
취吹는 악기가 아닌 움직씨입니다
불 취吹 자가 움직씨기에 격을 맞추고자
북 고鼓자를 같은 움직씨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북 고鼓 자는 움직씨로 풀이하든
이름씨로 풀든 다 뜻이 통한다는 것이지요
북 고鼓 자는 그 자체로 부수입니다
대나무 가지를 뜻하는 지支와
악기 이름인 주壴가 만나
북을 친다는 뜻이었는데
나중에 직접 북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북 고鼓 자는
이름씨에서 움직씨로 간 게 아니라
움직씨에서 이름씨로 나오게 된 것이지요
북 고鼓 부수가 일본의《支那語大辭典》에는
11902북 고鼓
11903북 칠 고鼔
11904북소리 동鼕
11905땡땡이 도鼗
11906큰북 분鼖
11907마상고馬上鼓 비鼙
11908북소리 창鼚
11909큰북 고鼛
11910북소리 연鼘 등으로 실려 있습니다
왼쪽 숫자는《支那語大辭典》에 실린
총12,024자 가운데 수록순收錄順입니다
그 밖에도 북 고鼓 자 부수에는
북소리 등鼟
북소리 연鼝
종고 소리 당鼞
북소리 잡䵽
떠들썩할 부䵾
북소리 나지 않을 첩䵿
북소리 답䶀
요란할 답䶁
순찰 북 척鼜
북 고皷
북 고皼 등 다양한 글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자를 찾으며
나름대로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경 고瞽는 눈 목目 부수이고
부풀 고臌는 육달월月 부수이며
여뀌의 꽃인 요화 고薣는 초두머리艹부수지요
이들 글자를 북 고鼓 부수에서 찾으면
아무리 자전을 뒤적여도 나오지 않습니다
시각장애 소경 고瞽는 눈의 문제이기에
눈목目 부수에서 찾아야 하고
몸이 부풀어오르는 증상 부풀 고臌는
몸의 건강과 관련되기에
육달월月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화蓼花는 여뀌꽃입니다
나무꽃이 아니고 풀꽃이므로
반드시 초두머리艹에 들어있습니다
북 고鼓 자에 담긴 의미는
두드리는 타악기의 하나로 북Drum입니다
북소리, 맥박, 심장의 고동, 두드리다, 치다
무게의 단위(480근斤이 1鼓입니다)
부피의 단위(1되가 1고鼓입니다)
시간更點을 알려주던 시보時報이기도 하고
휘두르다, 악기를 타다, 연주하다, 격려하다
북돋우다, 부추기다, 선동하다 따위입니다
0454비파 슬瑟
거문고 슬/큰 거문고 슬瑟로도 새깁니다
큰 거문고는 우리나라 현악기지요
역시 현악기 비파琵琶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림씨로 풀이할 때는 '쓸쓸하다'외에
엄숙하다, 곱다, 많다의 뜻입니다
다른 큰 거문고 슬㻎 자도 있는데
다 같이 현악기의 모양을 본뜬 각珏과 함께
소릿값에 해당하는 필必로 되어있습니다
중국 발음이나 우리 한자 발음이나
필必과 슬瑟 두 글자가 똑 같지는 않습니다
'교주고슬膠柱鼓瑟'이란 말이 있습니다
절에 들어온지 만 여섯 해가 지난
1981년 초여름이었습니다
종로 대각사에 머물고 있을 때인데
클래식 기타를 즐기는 거사님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수행자이기에 기타는 물론
어떤 악기도 다루면 안 된다는 의식이
언제나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비구계를 받은지 5년이 지났지만
사미계에 '노래하고 춤추지 말고
그런 곳에 가지도 말라'는 조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사형님 중에는
거문고를 즐기는 분이 계셨지요
나는 클래식 기타를 즐기는 거사님에게
내 생각을 말했습니다
내 얘기를 듣고 그가 말했습니다
"스님은 '교주고슬膠柱鼓瑟'이십니다"
"교주고슬이요?"
"네, 스님, 스님은 교주고슬입니다."
처음 듣는 말이라 해석을 부탁했더니
교주고슬이란 비파 기타 거문고 등 현악기의
기러기발雁足을 아교로 붙여 놓아
음조를 바꾸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지요
아교로 붙여 놓으면 조율이 안됩니다
피아노든 기타든 가야금이든
비파나 거문고든 조율이 되지 않는다면
악기로서의 생명이 없는 것이지요
수행자가 계율을 지킬 때는 으레 철저하되
그러나 계율이 누구를 위해 있습니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위해서지요
그러나 고지식하여 꽉 막히면
융통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대승불교의 꽃이라 할 수있는
방편바라밀을 모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 거사님으로부터 받은 이 말을
삶의 화두처럼 부여안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그날로 종로 2가에 있는
'교향전자음악학원'에 등록을 했습니다
종로 2가 사거리에서 종각 방면으로
양우당 서적이 유명했지요
바로 그 옆에 있던 음악학원이었는데
클래식 기타를 배우겠다고 등록하고는
닷새 다니고 그만 두었습니다
학원비가 아까웠지만 그냥 접었습니다
평소에는 늘 그만 두길 잘했다고 여겼는데
그로부터 23년이 훌쩍 지난 뒤에
아프리카에 나가 있을 때 비로소
지난 날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나는 몸으로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서
목탁 치고 염불하고 기도하고
축원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1980년, 1981년 사진을 배워
두 번이나 가작으로 입선을 했습니다만
수행자에게 붙을 '사진작가'가 마음에 안 들어
1982년도에는 작품도 내지 않았고,
1981년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침술도 배우다가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역시 수행자가 남의 옷을 벗기고
의료행위를 한다는 게 용납되지 않았으니까요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 구제활동을 펴며
침술을 그만 둔 것을
참으로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이로
악기 하나 다룰 줄 알았더라면 하는 것이
만 4년 내내 내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0455불 취吹
괜찮은 시 한 수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조비지이월鳥飛枝二月이오
풍취엽팔분風吹葉八分이라
새가 나니 나뭇가지는 한들한들
바람이 부니 나뭇잎새 사뿐사뿐
한들 한들은 한달 한달이니 두 달이고
사뿐사뿐은 사분사분으로 팔분입니다
불 취吹 자는 부수가 입 구口 자이고
불 취䶴, 불 취龡 자와 같이 쓰는 글자입니다
뜻으로는 불 허嘘 자와 같습니다
입 구口 자는 먹다 말하다의 뜻이고
하품 흠欠 자는 숨을 내쉰다는 뜻으로서
입 안에 공기를 모아 힘껏 분다는 의미입니다
으레 악기를 불 때는 세게 불어야겠지요
입김을 불다, 불 때다, 불태우다, 과장하다
부추기다, 충동질하다, 퍼뜨리다 등과
바람, 관악, 관악기
취주吹奏 악기의 가락 등입니다
앞의 북 고鼓 자와 함께 고취鼓吹라 할 때
북 치고 피리를 분다는 뜻도 있지만
용기와 기운을 북돋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선전함을 얘기합니다
고취시킨다는 말의 어근이 되는 셈이지요
0456저 생笙
생황笙簧 생笙이라고도 새깁니다
앞에서 타악기로 북鼓이 나왔고
현악기로 비파, 거문고瑟가 나왔습니다
여기서는 관악기로 아악雅樂에 쓰는
관악기의 하나로 생황이 나왔습니다
이《千字文》에서는 4글자 한 수 속에
타악기 현악기 관악기를 모두 들고 있습니다
짧은 문장 속에 3가지 악기가 다 실렸으니
참으로 놀라운 문장이지요
인류 최고의 물리학자인
앨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
그는 그의 논문에서 'E=mc^2' 이라는
지극히 짧은 기호 하나로서
에너지와 질량과 빛의 속도와의 관계를
완벽하고도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선배가
천자문의 저자 저우씽쓰(470~521)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은 어떠하십니까
저 짧고도 유명한《반야심경》에서
육부중도六不中道를 통해
'E=mc^2의 이치를 다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디 에너지, 질량, 빛의 속도 뿐이겠습니까
저 '불생불명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이라는
12글자 속에는 E=mc^2을 비롯하여
우주宇宙 곧 시공간과
이 시공간 속에서 변화하는
모든 자연현상과 함께
생명의 법칙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계십니다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과
초超 끈이론String theory을
부처님은 '육부중도'로 담아내셨습니다
브래인幕Brane의 세계와
다중우주론Many Multiverses과
나의 '마디 가설節假說'까지 다 담고 있는데
우리는《반야심경》을 마치 주문을 외듯
그냥 외우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4글자 1줄에 모든 악기와 연주까지 다 담다니
저우씽스 선생이 멋지지 않습니까
생황笙簧에 대한 얘기는
시간 날 때 한 번 더 하고 싶습니다
05/30/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