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제자에게 배우는 승가와 화합
차닉車匿은 석가세존이 석가족의 도시 카필라성에서 태어난 날 동시에 태어났다. 성장해서는 왕궁에서 태자인 고타마 싯타르다를 시중했다.
태자가 출가하려고 하여 왕궁에서 떠나려고 할 때는 애마 칸타카(건척)를 몰고 애경하는 태자를 도와서 태자를 성 밖으로 보내 주었다.
석존이 깨달음을 열고나서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왔을 때, 차닉은 석가족의 많은 청년들과 같이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었다.
석존의 교단에 들어와서도 석존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과 이미 출가를 도왔다고 하는 이유로, 차닉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석존과 친한 존재라고 하는 생각이 강하여 점차 교만하게 되어 수행자들의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어느 날 차닉은 석존의 2대제자라고 하는 사리불과 목련존자에게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석존이 왕궁 생활을 버리고 출가하셨을 때 도와주었기 때문에, 석존에게 있어서는 가장 친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자신들이 석존의 제일가는 제자라고 자부하면서 말하지 않느냐.”
사리불과 목련은 단지 묵묵히 있을 뿐이었는데, 다른 수행자들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釋尊은 바로 차닉을 불러 두 사람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석존을 경모하고 있던 차닉은 그 때는 영리해서 석존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조금 지나자 사리불과 목련의 악구惡口를 또 시작하였다. 석존은 그 때도 다시 차닉을 불러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같은 것을 반복할 뿐이었다. 뿐 아니라, 차닉은 계율을 어기고서도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서 바르게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들에게 비판을 받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래서 ‘악구 악성차닉惡口惡性車匿’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석존이 입멸하시기 조금 전, 아난존자가 석존이 돌아가신 뒤에는 차닉을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묻자, 석존은
“아난아, 내가 입멸한 후 차닉이 죄를 범한다면 교단은 ‘브라흐마 단타(범단梵壇)’라고 하는 벌칙을 적용하라”고 대답하셨다.
‘브라흐마 단타’라고 하는 벌罰은 교단의 수행자들이 그 벌을 받는 자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 되고, 계율도 가르침도 설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처벌處罰이다.
석존의 입멸 후도 차닉車匿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아난은 많은 수행자들과 같이 코산비의 고시타 공원에 가서 차닉을 불러 범단梵壇의 벌을 내렸다.
그러자 과연 차닉도, “아난존자,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도 나에게 말하지 않고 계율도 가르침도 주지 않는다는 것은···”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그러나 차닉은, 이것을 계기로 마음을 고쳐 수행한 결과 드디어 성위聖位에 올랐다.
석존의 교단에서는 출가 전의 석존과 특히 친했다던가, 석가족 출신이라고 하는 이유만으로 존경받거나 특별취급을 받는 일은 전혀 없었다.
석존의 교단에 있어서는 석존을 경모하여 오로지 법에 맞게(如法) 수행하는 것만이 모든 가치기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