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비평과 토론의 장으로 출발한 인터넷 댓글창이 온갖 욕설과 비방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익명성에 기댄 도를 넘는 발언이 넘쳐난다. 주제나 내용에 상관없이 일단 욕부터 하는 경우도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생각 없이 뱉어낸 댓글에 누군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악플을 손가락 살인이라고도 부른다. 5월 23일 ‘악플 없는 날’을 맞아 인터넷 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장미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동안 장미를, 잼미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너무나도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부디 장미가 편히 쉴 수 있게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올해 초 유명 배구선수와 인터넷방송 BJ가 악성댓글을 견디다 못해 연이어 세상을 등지는 일이 있었다. 배구선수 김인혁 선수와 BJ잼미로 활동해온 조장미 씨다. 27세 두 청춘의 죽음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갑작스런 죽음이었지만 이들이 겪은 고통은 결코 짧지 않았다. 생전 김 씨와 조 씨는 악성댓글에 시달리며 여러 차례 피해를 호소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생전 개인방송을 통해 “단어 하나로 욕먹는 게 너무 힘들고 무섭다”며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심해져 세상이 각박해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한 바 있다.
특히 조 씨의 어머니도 딸에 대한 악성 댓글로 인해 우울증을 앓다 2019년도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져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인혁 선수 또한 지난해 개인 SNS를 통해 악플러들에게 “알지도 못하면서 수년 동안 날 괴롭혀 온 악플행위를 그만하라”며 “이제는 버티기 힘들다”고 호소한 바 있다.
그러나 악성댓글로 시름하는 건 비단 정치인이나 연예인, 유튜버와 같은 유명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일반인도 악성 댓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3년 전 우울증을 앓던 대학생 A양이 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자신의 고민을 올렸다가 댓글로 조롱당해 자살한 사건은 사회 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악성 댓글은 사람을 죽일 만큼 파괴적이지만 이를 대하는 네티즌들의 태도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악플러 상당수가 자신이 올린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별 생각 없이 언어폭력을 남발하는 설명이다.
사이버수사 업무를 담당했던 한 경찰관은 “20대 대학생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특정 이용자에게 입에도 담기 힘든 욕설을 해서 조사받으러 왔는데 정작 본인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며 “증거를 보여주자 그제야 매우 놀라면서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동작구에 사는 이 모씨는 “개인 SNS에 모르는 사람이 뜬금없이 욕설을 남겼다”며 “DM(다이렉트 메시지)로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니 별 뜻 없이 재미로 그랬다며 뒤늦게 사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표현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며 “가해자는 가슴에 비수에 꽂아놓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분노를 표했다.
사람이 죽어도 처벌은 미미
사이버 모독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은 악성 댓글을 부추기는 주된 원인이다.
20대 국회 시절인 2019년 두 개의 악플방지법이 발의됐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임기 만료로 법안이 모두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 전용기 더불어민주당의원은 악플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여전히 후속 논의는 없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 악플러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명예훼손’과 ‘모욕 범죄’가 유일하다. 그러나 일반인의 경우 공인에 비해 악성 댓글 작성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악성 댓글로 고소하더라도 작성자를 특정했다는 게 입증되기 쉽지 않고 압수수색 등이 필요하지만 그에 비해 처벌이 크지 않아 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탓으로 오늘날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한 검거는 10건 중 7건도 채 되지 않으며 구속률은 한 자리수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관련 범죄 검거 건수는 1만7천954건으로 2017년 9천756건에 비해 84% 증가했지만, 검거율은 2017년 73.1%에서 2020년 65.2%로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5년간 전체 검거율 평균은 69.3% 수준에 그쳤다.
검거가 되어도 구속이 되는 경우는 희박하다. 2017년부터 작년 6월까지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범죄로 구속된 인원은 고작 43명에 그쳤다. 전체 검거 인원에 0.06%에 불과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경고제 도입 등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포털사이트가 연예뉴스 댓글 창을 닫는 등 악플에 대한 최소한의 조처를 하고 있으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병도(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익명성에 기댄 온라인에서의 타인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는 전파력이 빠르고 파급력이 커 치명적인 범죄행위”라며 “경찰은 사이버 범죄가 증가하는 만큼 검거율 제고와 신속한 대응을 위해 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악플을 달면 반드시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생기면 가해자들도 압박감을 느끼고 자제하게 될 것”이라며 “확실한 처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또한 "인터넷 문화가 성숙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지만 쉽지 않다"며 "포털사이트 차원에서도 댓글 필터링을 강화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손가락 살인’ 악플의 현주소…근절 방법은? < 환경 · 생명 < 기획 < 기사본문 - 데일리굿뉴스 (goodnews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