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넣은 연금계좌 갈아 엎은 金차장···ETF 10개로 채웠다
서울경제 원문 | 뉴스줌에서 보기 |입력2021.03.23 17:45 |수정 2021.03.23 18:23 |
[막 오르는 연금 투자시대]
<상>"쥐꼬리 수익 못 참아 " 연금개미의 진격
年평균 수익 1.29%···물가상승률만도 못하자 '손절'
ETF 운용할 수 있는 '증권사 연금 계좌'로 머니 무브
"장기투자땐 예금이자 이상"···저금리 시대에 대세로
직장 생활 20년 차 김호석(46·가명) 차장은 지난해 12월 연금 저축 계좌를 갈아엎었다. 13년 전 소득공제를 위해 가입한 후 매년 300만~400만 원씩 꼬박꼬박 넣었던 계좌의 누적 수익률이 18.1%에 불과한 것을 확인하고 허탈했기 때문이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1.29%. 물가상승률만도 못한 수익률이었다. 노후자금이기에 안전한 채권형 상품에 넣어뒀지만 금리가 꾸준히 내리면서 수익률은 인플레이션 방어조차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반도체, 2차전지, 중국 항셍테크지수, 미국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 등) 기업 , 원유 선물 등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10개로 포트폴리오를 갈아치웠다. 그 이후 계좌 수익률은 불과 3개월도 안 돼서 5%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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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개미’의 투자 열기가 연금으로 번졌다. 예금이자보다 못한 수익률에 실망한 개인들이 투자형 상품으로 연금의 운용 방향을 틀고 있다. 연금 저축 계좌나 퇴직연금(DC·IRP)에서는 직접 주식 투자가 안되지만 국내 상장된 각종 ETF는 투자가 비교적 자유롭다. ‘고관여’ 연금 가입자인 20~40대의 스마트 개미들은 지난해부터 ETF를 활용해 국내외 유망 업종과 테마를 공략했으며 올해는 그 강도가 더 거세지고 있다.
◇ETF 투자노린 연금저축 ‘머니무브’ =23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연금 저축 계좌를 기존 은행(신탁)과 보험에서 증권사로 옮기는 ‘머니 무브’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은행과 보험사에서 미래에셋 등 5대 증권사로 둥지를 옮긴 연금 저축 및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는 총 4만 1,888건, 1조 2,428억 원이었다. 올 들어서도 이미 5,000억 원이 넘게 이전해 온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연금 계좌의 경우 은행권과 보험사에서 가입하면 주식형 펀드를 가입할 수는 있지만 ETF 매매는 할 수 없다.
이주리 삼성증권 연금마케팅팀장은 “투자에 적극적인 개인들이 연금 계좌에 쌓아 뒀지만 잊고 있었던 자금에 대해 지난해부터 발상의 전환을 시작했다”며 “특히 연금 저축 펀드 계좌의 경우 70%까지만 가능한 퇴직연금과는 달리 100%까지 위험자산 편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주요 증권사에서 연금 저축 펀드 계좌가 봇물 터지듯 개설됐다. 5대 증권사의 연금저축펀드 신규 계좌는 2019년 9만 6,037건으로 전년(7만 5,996건) 대비 26.4%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38만 4,094건의 신규 계좌가 그야말로 ‘터지면서’ 전년 대비 299.9%나 급증했다.
◇연금 개미의 러브콜 세례 ETF는= 지난해부터 올해 까지 미래에셋 등 5대 증권사에 개설된 연금 저축 펀드, IRP에서 사들인 ETF는 평가액 기준으로 지난 해 초 이후 약 2조 5,000억원에 달한다.
‘연금개미’들이 몰려든 ETF는 미국의 빅테크, 전기차 등 성장주 ETF가 주였다. 가장 인기가 많은 ETF는 단연 TIGER 미국나스닥100이었다. 또 KODEX 미국FANG플러스(H)도 수위에 올라 있다. 또 중국 전기차 완성차 및 배터리, 소재 기업에 투자하는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도 연금 개미들이 사랑한 ETF로 나타났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ETF로는 △TIGER KRX2차전지 K-뉴딜 △KODEX 2차전지산업 △TIGER KRX BBIG K-뉴딜 △KODEX 반도체 등이 연금 계좌에 가장 많이 담겨 있다. 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본부장은 “성장주ETF는 변동성은 있지만 장기 투자하면 월등한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스마트한 투자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에 분산투자하는 ETF야말로 연금에 제격”이라고 말했다.
◇'수익률 2%P'만 올려도 노후자금 앞자리수가 달라진다=아직 전체 연금 자산에서 투자 상품의 절대 비중이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금을 수비형이 아니라 투자형 운용으로 바뀌는 대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지난해 말 기준 250조 원을 넘어선 퇴직연금의 경우 비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확정급여(DB)와 확정기여(DC)형을 합쳐 10.8%로 늘었다. 이 비율은 2016년만 해도 6.9%였으나 매년 증가하며 2019년 10%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특히 개인들이 직접 운용하는 DC형의 경우 증권업권 내에서 비보장 상품의 비중이 지난해 48.7%에 달했다.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셈이다. 은행권은 여전히 10.3%선이었다.
연금 투자시대가 개막된 이유는 무엇보다 저금리 환경 때문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매년 400만 원씩 25년간 연금 계좌에 납입한다고 가정할 때 평균 2%의 수익률로 운용하면 은퇴시 1억 2,812만 원을 받는다. 그러나 수익률을 5%로 끌어올리면 1억 9,091억 원, 7%면 2억 5,300만 원으로 격차가 벌어진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원리금 보장 상품의 수익률이 1%대로 내려앉은 시대에 수익률을 장기적으로 조금만 높여도 노후에 쥐는 목돈의 크기가 크게 달라진다”며 “저금리 환경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돼 연금 계좌에서 적극적인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혜진 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