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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와 달이 만든 땅 영암군
1543년 황해도 개성 석봉산 아래에서 태어난 한석봉 그리고 그의 어머니 홍주 백 씨
맹모삼천지교의 조선판으로 스승 따라 개성에서 삼남길 따라 전남 영암까지 내려오셨던 분으로써 석봉을 조선 최고의 명필로 만드신 어머니
그리고 고려를 세운 왕건이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하셨던 풍수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태어난 곳이며 월출산 아래 도갑사를 창건한 분
백제 근초고왕 때 일본에 건너가 천자문과 논어를 가르쳤던 왕인께서 이곳 영암 출신이다.
동대구에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첫차로 광주에 도착하고 곧바로 달이 뜨면 너무나 아름답다는 영암땅으로 향한다.
광주에서 한 시간 걸려 영암땅에 내려 기세등등하게 서있는 월출산의 웅장한 자태에 고개 한번 숙여 드리고 택시로 땅끝지맥길인 불티재로 찾아간다.
영암땅과 강진땅 경계인 불티재에서 좌측 산길로 오르면 공사 현장 사무실이 나오는데 날씨가 추워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공사 현장사무실 갓길 따라 오르면 어느 양반집 무덤가에 달아놓은 사자자리님의 때 묻은 시그널이 반기는데
땅끝(사자봉)으로 향하는 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자자리님 시그널이다.
불티재에서 20분가량 올라가면 310m 봉이 있는데 영암천은 이곳에서 발원하여 영암읍 -덕진교-영암군 서호면 태백리까지 25km를 흐른다.
낮은 산이건만 이곳에 서면 사방조망이 나올 것 같았는데 잡목이 많아 월출은 한 뼘가량 겨우 고개를 내밀뿐이다
지나간 경로
계곡아래로 발끝 가는 곳으로 무작정 내려가면 나뭇가지 사이로 월출산이 보이는데 산아래 내려가면 넓은 평지를 걷기에 월출네는 실컷 볼 것 같고
짧은 계곡으로 내려왔으니 물은 보이지 않았고
임도길은 어디로 돌아가는지 모르겠고
임도길을 건너 내려오니 흐르지 못한 물이 얼어있는데 발원지라 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골이 깊지 않으니
허리까지 자란 산죽길이고
내려가는 길에
산죽밭을 천천히 내려오면 해남에서 강진땅으로 넘어가는 13번 국도 풀치터널이 있고 터널 위는 불티재다.
학송 저수지가 있는데 산능선 위로 월출산이 고개를 내민다.
뭣이 그리도 궁금했나
낯선 이를 반기는 월출네
그가 고개를 내민 모습을 보니 궁금하게 많은 듯
아마도 젊은 시절에 몇 번 본 산객을 또렷이 기억해낸듯 담장너머로 내려다본다
좌측 두 번째 310봉에서 발원지 시작
아랫마을 반송마을 주민분들께서 붕어 치어를 방류하였기에 낚시하다가 걸리면 각오하란다.
영암천을 감싸는 31번 도로와 강진ㅡ 광주 간 고속도로 공사중인 곳
영암방향으로
쌍정 저수지
달이 떠오르면 꿈틀거리며 깨어난다는 월출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기세등등(氣勢騰騰)한 월출산
월출산(809m) 천황봉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산으로 천황이란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고
강진과 영암땅 넓은 평야지대 위에 홀로 우뚝하니 제 아래 큰 산을 두지 않은 탓에 조망이 일품이다
멀리 움푹 들어간 곳은 누릿재로 예전에 해남-강진사람들이 한양으로 오고 갈 때 넘던 길로 길 위에서 삶을 이야기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강진으로 유배를 간 다산 선생이야기다.
신유교사(申酉絞死)로 순교한 셋째 형 정약종과 흑산도로 유배 간 둘째 형 유배지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정약전
다산 선생께서 나주에서 형 정약전과 기약 없는 앞날을 예견하고 헤어지며 홀로 눈물로 걸어야 했던 영암땅의 고갯길이다.
영남길의 문경새재나 삼남길에 넘던 차령, 노령, 누릿재길에 구슬픈 전설 하나 없다면 말이 안 되겠지만 전국으로 유배 떠난 조선의 선비들이 너무 많았고 지식인 4천 명 중 유배 다녀온 사람이 700명이라고 하니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선비들께서 유배형을 많이 받았지만 주상 전하로부터 해배(解配)되기가 쉽지 않았는데 한양에서 먼 전라도의 유배지역은 56곳이며 경상도가 가장 많은 71곳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유배를 다녀와야 1진에 속해 어디 가서 유배 다녀온 사람이라며 큰소리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분 중에서
중종 때 조광조 선생께서 37세 젊은 나이에 한양에서 공주 차령과 장성 노령을 넘어 광주에서 화순으로 유배 가셨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낮으로 방문을 열어 두고계셨는데 얼마뒤 사약을 받으셨다.
조광조 선생께서는 일반 떼쟁이와는 다른분으로 자신이 싸워야 할 대상이늘 자신임을 알았던 분으로 "선비는 물에 빠져도 개 헤엄은 치지않고,얼어죽을 지언정 겻불은 쬐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었던 분이다.
읽어보시고
땅끝지맥의 활성산과 풍력 발전단지
월출네
한양에는 천만의 인구가 사는곳답게 빼어난 암릉을 대표하는 북한산과 도봉산을 닮았고
백두대간길에 만나는 강원도 깊은 곳의 설악을 닮기도 했으며 기품 넘치기로 북한산과. 설악과도 견주니
신라말 도선이 극찬하며 도갑사에서 수도(遂行)한 산이기도 하다
예전에 절친이었던 친구와 설국님과 같이 월출산 바람폭포에서 사자봉으로 릿지 할 때 사진
뒷배경은 장군봉?
영암읍이 보이는데 영암은 인심이 좋은 땅이며
구황 작물인 고구마와 먹어봐야 알 수 있는 꽃의 비밀을 간직한 무화과가 특산물이다
북쪽에는 영산강 건너 목포시와 무안군이 있고
동쪽에는 나주시, 남쪽에는 월출산 아래 강진과 해남이 자리한다
다만 인근으로 산이 많이 없어 물은 빼어난 산과 다르게 느리고 흐리기만 하다
월출산 아래 영암은 맹모삼천지교(孟母 三遷之敎)의 땅으로 알려져 있고
달이 떠야 그 아름다움이 보이는 월출산은 강진땅에서는 다소 아기자기한 모습이라면 영암땅에는 웅장하고 가파르다 보니
명당터가 많아 빼어난 학자들이 모여들어 공부하던 곳이며,멀리서 보면 천상(天上)에 꺼지지 않을 촛불을 켜놓은 듯한 모습으로
능선 어딘가에 구룡(九龍)이 살았다는 마르지 않은 물구덩의 구정봉이 산아래 굽어 보는 듯하다
이 계절에는 전국 어딜가도 물은 하늘을 담고 바람을 품고 있어 깨끗해 보이지만
바닥을 보면 실상과 다르니 이런 모습이고
막대기 하나 들고 휘저으면 진흙뻘이 뿌옇게 일어날듯하다
덕진교와 영암천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大石橋創主德進之碑)
통일 신라시대 말 이곳 영암땅에 덕진이라는 여인이 강가에 주막을 운영했는데 해남, 강진, 영암사람들이 서울로 오고 갈 때
다리가 없어 비만 오면 불편해 이를 본 덕진이 다리를 만들려 했으나 너무 많이 돈이 들어가자 그날부터 주막집 기둥옆 땅속에
항아리를 묻고 번 돈을 한 푼 두 푼 모았으나 끝내 다리를 만들려 했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다.
그 후에 새로 부임한 영암 군수가 잠을 자는데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사또 영암천에 다리하나 만들어 주면 고맙겠소
그리고 돈은 주막집 옆 땅을 파보면 300 냥을 묻어두었으니 그 돈으로 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날이 밝아 군수는 부하들을 시켜 주막집 옆 땅을 파고 보니 진짜로 돈이 300냥이 들어 있었고 그 돈으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다리 이름이 덕진교라고 했다고 한다.
덕진 사당
생면부지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나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고마운 마음씨를 알 수 있는 덕진 아씨
사당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담장 위에서 한 장 찍으며 감사한 마음 전한다.
영암이나 강진 해남사람들이 서울로 올라갈 때 사용하는 덕진교와 예전 덕진교 있던 자리는 지금 돌다리만 놓여있다
예전에 다리가 없을 때 물을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나무그늘에 기다렸다가 엽전을 받고 업고 건너주던 월천꾼이 있었는데
자칫 잘못해서 자빠지기라도 한다면... 엽전은 고사하고 맞아 죽었을법한 극한직업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백룡산에서 흘러온 물이 영암천에 합수되는 지점
물은 어디 가고 쓰러진 갈대와 마른풀이 하천을 가득 메웠고
앞에서 옆에서 따라오는 월출네
멀어지는 월출네
봄나물의 제왕인 냉이 케시는 동네 어르신
커다란 자루에 가득 케셨는데 며칠 지나면 여러분들의 밥상에도 오를 것 같고
풍력 발전기의 활성산과 월출산과 매봉산 방향
내려가는 길에 하천 폭이 많이 넓어져 있고
월출과 월각- 흑석산 방향
산너머 땅은 남도 여행의 1번지겪인 강진땅
예전에 간척한 곳
하천을 막고 있는 제방은 물과의 경계로 물보다 조금 높을 뿐 농지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고
강바람과 드넓은 농지에서 거리낌 없이 부는 바람에 연약한 갈대는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이리저리 크게 휘둘린다
간척을 잘한 건지
인구는 줄고 쌀은 남아돌고
우리나라 농지면적은 76만 ha이며 쌀 생산량은 370만 톤 정도로 1인당 쌀 소비는 년간 65kg이다.
쌀 소비는 매년 줄어드는데 라면이나 빵으로 간편하게 먹게 되고 무엇보다 1인 가구 800만 시대에 아침을 거르게 되는 게 일상인점도 있겠다
얼굴은 시골 마음은 쓰레기
물은 진실되기에 돈도 명예도 싫고 그저 아래로 흐르며 뭇 생명을 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이러함에도 이런 쓰레기가 없으면 서해가 아니지
인적도 없는 하천가에 쓰레기 불법 소각
서해 용왕님께서 인간들에게 무슨 잘못을 크게 하셨나 통 큰 서비스로 드넓은 갯벌까지 양보하셨는데 다들 왜 이러시나
경고문 있는 곳에 버리고 태운 건지
아니면 태우고 버린 곳에 이런 건지
월출산에서 흘러온 호동천이 합류하는 곳
하천폭이 300미터 이상으로 크게 벌어졌으며
영암천에는 한여름 이외 하천으로 흘러드는 물이 미미하였을 테고 예전 같으면 달의 지배를 받았던 갯벌이 있을 자리다
아따리...
만들었으면 드셔야지 왜 버렸을까
이것도 용왕님 전에 진상되는 물건인가?
꽤 많은데 박스 그대로 인 것도 있고
한 개 뜯어서 맛보니 시원하고 아직 먹을만하다.
멀리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이 보이는데 길게 보이는 산능선 너머는 나주땅이며 다음에 갈 만봉천이다
좌측에는 넓은 하천 우측에는 넓은 평야
세상 조용한 곳이건만 바람은 조용하질 못하고 하류로 내려올수록 영산강 하구둑 영향으로 강폭은 500미터 이상으로 벌어졌다.
월출-매봉-별뫼-흑석산 -두억봉 방향으로
산너머 흐르는 물은 지난주에 다녀온 해남의 옥천천이다
따뜻한 곳을 찾아 남도로 와서 해남. 영암 나주까지 짜잘한 하천 열심히 걷지만 이 걸음도 굶어가며 할 처지는 못된다
쓰레기
하루 이틀 버리고 태운 흔적이 아닌데
이건 한,두명이 아니라 고구마 줄기처럼 한줄기로 무더기로 태웠고 마을사람 전체가 버린듯하다
떼쟁이 깡통들이 달려나와 있고
가장 가까이 보이는 마을이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왜 이렇게 할까
차 끌고 오는 기름값으로 봉투사서 집 앞에 놓으면 더 좋을 텐데
"어지간히들 해라" 한마디 하고
이래저래 보는 사람 없어 쓰레기 버리기 좋은 곳이다.
해암교에서 본 영산강
지나온 하천
예전에는 바다였을 곳
해암교를 건너와서
물고기 잡는 어부님이 보이고
가까이 있다면 어떤 물고기가 잡히는지 물어보겠는데 거리가 너무 멀다.
영산강 하구둑은 1981년 완공되었으며 4,350m의 영향으로 많은물이 고여있는데 총저수용량은 2억 5천3백㎥ 즉 2억 5천3백만톤이다
영암천이 25km를 흘러와 영산강에 합류하는 지점
멀리 보이는 곳은 무안땅이다.
간척하는 것보다 갯벌로 그냥 두었더라면
달이 만들었던 갯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갯벌 그대로였다면 동네 할매들이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 호미와 고무통 하나씩 들고 갯벌로 나갔을 터
지금은 대부분의 할매들이 할 일이 없어 경로당에 앉아 계시는데
갯벌로 남아있었다면 할매들이 시린 손을 입으로 불어가며 바지락 캐서 손자들 용도 벌러 나갔을 길로 그려진다
언젠가는 이런날이 올지도
어딜 가나
쓰레기는 그만
냄새나는 쓰레기는 집안에 두면 악취가 진동하니
썩기 전에 스스로 나가게 하거나 내보내는 게 정답이다.다만 이런방법은 아니되고
영산강 168개의 크고 작은 지류를 거느린 하천이다
대한민국의 하천길 228개 걸었는데 4대 강이나 서해를 간척하기 전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더 예쁜 모습 담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곳 금강마을에서 마치고 버스 타고 낙지로 유명한 독천면으로 가서 다시 영암으로 나가는데
시골이라 버스는 공짜인데 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첫댓글 공짜인 시골버스~ 인심은 좋은 동네라 기분좋게 보며
월출네와의 데이트하며 보기에 흐뭇하고 좋았는데...
물은 어찌 좀 찌찌~ 쓰레기가 너무 많습니다.
쓰레기 버리거나 태우지 말라는 표지판 말고
카메라를 하나 달아놓던지 해야지...
영암 걸을 때 무화가 음료 1팩 주셨던 편의점 여주인님과의 만남을 다시 그려보며...
멋진 바위와 달이 만든 월출네와의 동행길 강행기 잘 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왜~~ 월출네 한번 가보시게
세상의 모든 꽃들은 겉에서 꽃이 피지만 무화과는 속에서 꽃이 피기 때문에 열매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꽃입니다. 참 신기한 꽃입니다.
글 감사드리며 이제 며칠 있으면 입춘이니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그 쓰레기들을 다 어쩌면 좋소?
월출산, 지금이야 땅끝기맥도 해 보고, 기냥 넘어도 보고 하지만
실은 우리 가족 최초의 종주가 월출산.
애들 초딩 1, 4학년 때 천황산인가 하는 주차장 앞 민박에서 하룻밤 자고
도갑사까지 당시 기억으로 13km.
애들도 처음 해 보는 종주고, 다소 거시기하지만 나로서도 처음 해보는 종주.
비는 올락 하고, 아니 몇 방울 떨어지기도 하고
마음은 바쁜데, 사자봉은 올라 봐야 하고, 돌에 패인 웅덩이는 들여다 보면서
그래, 그렇게 어찌어찌 넘고
택시를 불러 황금들판을, 그 뿌듯한 보람 속에서 가로건너던 일이
어느새 23년이 흘렀군요.
첫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여 월출산은 늘 그리움으로 떠오르는데
거기가
다른 데도 아니고 하필 그 황금들판이
이래 쓰레기 천지가 되었단 말인고?
월출산은 멀리서 봐도 딱 표시가 안 나죠.
아주 오래전에 다녀오신 것 같은데 예전에 친구와 같이 암벽할 때가 참 좋았던 거 같은데 세월이 지나고 그 친구는 벌써 고인이 되었습니다. 참 많이 보고 싶었던 친군데...
이상하게 서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은 대부분 쓰레기가 많습니다. 물론 불법 소각한 것도 많고
친구님 글 감사드립니다. 조용한 시간에 연락 한번 드리겠습니다.
어느 동네건 시골버스 어쩔수 없이 한참 기다려 타는데 손님이 없다
지맥하면서 많이 느껴봅니다
영암천 발원지를 찾아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요즘은 백두대간을 기점으로 좌,우 모두 인구 소멸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골 분들께 이용되는 버스비는 모두가 공짜입니다. 물론 나그네들도 마찬가지죠.
대장님의 글 감사합니다.
벌써 냉이가 나오는군요.
어릴때 냉이캐서 어머니 가져다 주면 맛있게 나물로 만들어 주시던 생각이 나네요.
요즘은 먹거리가 많고 탄수화물인 쌀밥이 건강에는 안좋다 하니 밥을 덜 먹게 되는듯요.
영암천발원지 찾아가는길 수고하셨습니다^^
냉이가 커다란게 나물이나 된장찌개에 넣으면 봉이 입안 가득 들어올것 같았습니다.
어릴적 누나따라 다니며 냉이케던 생각도 나구요
글 감사합니다
남도의 겨울은 다뜻하기에 냉이는 벌서 보았습니다.
시골에서 쓰레기 불태우는걸 해결하는 문제는
지자체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산불감시요원을 쓰레기 불법소각 감시요원의
역할을 겸하게하고 쓰레기를 무상 수거하면 해결될것도 같은데...
백룡지맥 날머리가 영암천/ 영산강 합수점이어서
다시 한번 트랙을 찾아보았네요.
추운날 홀로걷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동해안이나 낙동강에 기대어 사는곳은 쓰레기가 거의 없는데 유독 서해로 흐르는 하천에 쓰레기가 넘처납니다.
신고를 해도 안되더군요
선운산 조망 잘봤구요 늘 응원드리겠습니다
벌써 냉이가 어김없이 봄은 봄인가보네
가뭄이 계속되니 발원지 찾기도 힘들겠습니다
아마도 집앞 마트코너에 냉이가 등장했을것 같습니다.
사서 맛있게 드셔보시기 바래요
지부장님 감사합니다
2016년~~~~~~~~~
나주현장에 근무할때 틈만 나면 쫒아다니던
월출과 무등.
그때 추억이 소환되내요.
배낭 둘러 메고 무엇이 좋다고
청주 집에 가족과 함께 해야하는 시간들인데
집과 가족은 둿전이고 나만 좋다고
산과 애인되고 친구되어 놀았는지
겨울에는 온도는 그리 내려가지 않지만
영산강 강바람이 차디차던 기억
산과 물 끈을수 없는 인연들~~~~
수고 하셨습니다.
건강하게 몸관리 잘하시고요.
영암산의 빼여난 암릉에 주변으로 영암천 발원지 다녀오셨네요.
영암하면 십년지기옛 대간동기가 생각나네요.
지역으로 가면 갈수록 쓰레기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인것 같습니다.
시골의 노인들의 인식이 아직 예전의 인식이 남아있어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바람이 싸늘할텐데 수고하셨습니다.
덕진사당을 보니 설악 천불동계곡 등로를 개척하셨던 이(이기섭)박사님이 생각이 납니다.
월출산은 정말 멋진 것 같습니다. 월출산 주위에 높은산이 없으니 산을 가릴게 없어 산을 바라보는 경치도, 산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실제로 보면 더욱 맛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