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 이질, 간염에 좋은 벼룩나물(나락나물).
먹을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
우리네 부모님들은 춘공기가 되면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러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은 전부 채취했었다. 그것도 부지런해야 많이 채취할 수 있었고 게으르면 그나마 밥상에 올리지 못했다.
나물을 채취하던 습관은 지금도 때가 되면 산이나 들로 마음을 이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양문물이 들어오고 방송매체의 발달로 깨끗한 것, 좋은 것만을 보다보니 앞마당에 나는 자연초는 잡초라는 멍울을 쓴다. 그리고 뿌리째 뽑혀버리는 신세가 되었다.
풀 한포기, 오줌 한방울을 아끼고 귀히 여기던 자연적 순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먹거리가 풍부해지자 천대시하고 하찮게 여기게 되었으며 아예 박멸하려 약을 치고 뿌리째 뽑아버리게 되었다.
심은 작물의 성장에 방해가 되면 주위의 풀만 깎아주면 된다. 그리하면 키가 큰 작물보다 다시 새순을 올리는 풀에 벌레나 진딧물이 달라붙는다. 벌레들도 굳이 키가 자라고 억센 작물에 달라붙지 않는다. 키가 작고 연한 달달한 새순을 먹는다. 애써 올라가서 작물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적용이 되는 부분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존경쟁을 식물은 더 치열하게 한다. 팽팽하던 세력이 어느 한쪽이 균형을 잃으면 맥없이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다. 경쟁자의 기를 꺾어놓으면 꺾인 자는 꺾이지 않은 자의 심부름꾼이나 노예로 전락한다.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약을 뿌리지 않고 그냥 상대적 식물을 그냥 예초만 해주면 병충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고추는 약을 치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들 흔히 말한다. 생각을 해보자. 풀을 깎아주기 귀찮아서 비닐을 깔고 주변에 제초제를 뿌려 경쟁자를 모조리 죽였는데 그럼 수많은 벌레는 어디로 가겠는가?
달려들지 않아도 될 벌레들이 달려드니 당연히 약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주위의 풀들을 깎아주면 되는 일을 그것이 귀찮아서 약을 친다. 그도 모자라 자라지 못하도록 비닐을 치는데 벌레들은 살아남기 위해 작물에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습이 많은 풀밭에 볍씨를 조금 뿌려보라.
풀과 함께 자란 벼가 얼마나 튼튼하게 자라는지 아는가. 결국 생존경쟁이 있어야 더 강해진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생활속에 경쟁력이 없다면 무의미한 일상이 되지 않겠는가? 경쟁력이 있어야 활력소도 생기는 법이다. 경쟁자가 없는 게임이 무의미한 것처럼 말이다.
벼룩나물을 쓰려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벼룩나물도 논이나 밭에 흔한 풀 중에 하나다. 쌈도 싸서 먹고 나물로 김치로 또는 초장에 찍어 먹던 추억의 나물이다. 나락나물이라고도 부르며 들별꽃, 소무심채, 개미자리, 벌금자리, 벌거지둑, 작설초라고도 불렸으며 한방에서는 천봉초라 했다.
맛은 달고 약간 쓰며 성질은 따듯하다. 비타민C와 글루코사이드,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어 해열과 해독, 어혈을 풀고 혈액의 순환을 도우며 염증을 다스린다.
전초를 뿌리 째 캐어 음지에 바싹 말려서 쓴다. 감기나 설사, 이질, 치질, 간염, 폐렴, 타박상에 잘 듣는다. 특히 치질에 좋다. 벼룩나물 한움큼을 짓찧어서 그 즙을 항문에 바르면 기어나온 녀석?이 점잖게 다시 들어간다.
감기나 폐렴, 설사, 이질에는 생초나 건초 한움큼을 큰주전자에 끓여 수시로 마시면 좋다.
풍치를 앓거나 잇몸질환으로 고통을 받으면 달인 물로 가글하고 그냥 삼키던지 뱉는다. 달이기 귀찮으면 생초를 잘근잘근 씹어도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통증이 사라져서 아프지 않게 된다. 건초를 가루내어 치약과 섞어 써도 좋다.
타박상에는 뿌리째 캔 생초를 짓찧어서 그 즙을 바르면 되고 말린 전초를 가루내어 들기름이나 참기름에 개어서 발라도 된다.
어린 순은 쌈을 싸서 먹거나 생나물무침이나 겉절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된장국에 넣으면 국거리로도 손색이 없다.
급만성간염에는 녹즙으로 장복하면 좋다.
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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