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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9:15-27절) 복음의 전략
영화〈인천 상륙작전〉이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가 북한군에게 밀려 낙동강에서 사투를 벌리고 있을 때, 맥아더는 북한군의 허를 찔러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켜서 북한군대의 허리를 잘랐습니다. 그때 한국 해군 특공대의 활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전쟁은 초등학교 운동회 때, 줄다리기를 하듯 힘만 쓴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의 힘과 전략을 알아내는 것인데, 적의 허점을 뚫고 들어가 적군을 무너뜨려야 이길 수 있습니다.
장군이 전쟁에서 이겼을 때는 그냥 우연히 이긴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긴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올림픽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상대방의 전략을 탐색하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훈련한 팀은 결국 우승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전략을 모르고, 돈 때문에 자기들끼리 파벌싸움을 벌이거나 하는 팀은 모두 예선에 올라가지 못한 채, 탈락하고 맙니다.
결국 전쟁이나 경기에서 이기려고 하면, 상대방과의 머리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자기 자신과의 게으름이라는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우리가 머리로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가 막히게 머리가 좋고, 우리의 약점을 샅샅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자신이 사탄의 편에 있는 줄도 모르고, 악한 꾀나 힘으로 공격하는 사람과 싸워 이기려면 엄청난 지혜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때는 너무나 힘이 없어서 전멸할 것 같은데, 한 순간 상황이 뒤집어지면서 이기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모른 채, 겉 멋만 부리려고 하고, 폼이나 잡으려고 하고,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결국 사탄에게 실컷 이용당하기만 하고, 가치 있는 일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복음 전하는 것이 전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모두는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끝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지, 예수를 믿거나 목회자라고 해서 제멋대로 날뛰면 *다른 사람들은 실컷 천국가게 해놓고, 자기는 지옥에 떨어질 수도*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청교도 목회자 리처드 백스터는 *열심히 설교하고, 잘 가르쳐서 다른 사람은 천국 가게 해놓고, 막상 자기 자신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지옥에 갈 목사가 수두룩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경기 중에 있고, 전투 중에 있으므로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야만 우리의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습니다*
1.사도 바울의 목표
고속도로에서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서 잠깐 방심하면, 엉뚱한 길로 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이런 길은 내비게이션도 혼동하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이 가라고 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갔다가 원하지 않는 길로 갈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에도 길이 너무나 많아서 길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안에 제자훈련도 있고, 가난한 자 구제도 있고, 선교도 있고, 종교 음악도 있고, 신앙 상담도 있고, 내적 치유도 있고, 원어 공부도 있고, 기도나 금식, 수도원 운동 등 길이 너무나도 많다 보니, 길을 잃기가 쉽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너무나 많은 은사와 가르침과 길과 성공이 있어서 목회자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가 많습니다. 즉 목회자들을 위한 목회 세미나가 많은데, 거기에 가면, 교회를 성장시키고, 부흥시킬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기도의 능력도 받고 싶고, 설교도 잘하고 싶고, 해외 선교사도 많이 보내고 싶고, 병을 낫게 하는 은사도 받기를 원합니다.
또 어떤 목회자는 교회를 수만 명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켜 존경과 명예를 누리고 있는데 자기는 왜 이처럼 교인이 늘지 않는지 답답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해서 부흥이 일어나게 했고, 여러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이 떠난 뒤에 지적으로 무장한 목회자들이 왔는데, 예루살렘 사도들의 제자였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에 대해 좋지 않게 말했는데, 사실 사도의 자격도 없는 자였고, 예수님의 진짜 제자도 아닐 뿐더러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자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돈을 받지 않은 것은 그럴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가 죽도록 수고해 세운 교회가 자기를 불신하고, 좋지 않은 말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들을 책망하고 공격할 텐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복음 전하는 자는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아야 한다*는 그들의 말이 맞다고 했습니다. 사보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은 자신의 권한을 쓰지 않음으로써 고린도 교인의 신앙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였다*고도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와도 원수처럼 대적하거나, 욕하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15절)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생활 원칙은 헌금으로 사는 것이 옳다는 지금 목회자들의 말이 맞다*고 말합니다. 즉 그는 고전9:9절)...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이나, 고전9:14절)...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맞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이 권한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인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아무리 자신을 희생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희생합니다. 그래서 어떤 어머니는 자식이 이미 성공했고, 부자인데도 모든 것을 아끼고 손수 농사를 짓고, 폐지까지 모아 돈을 모읍니다.
사도 바울은 9:15절)...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기업가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연예인으로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생명 하나하나를 살리는 것이 자기 목숨을 건 일이었기에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생활비를 받는 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전쟁터에서 폭탄이 터져 사람들이 폭탄 파편에 맞아 피 흘리며 쓰러져 있을 때, 군인들은 달려가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 한 명씩 살릴 때마다 정부로부터 돈을 얼마나 받고, 그 개인에게 돈을 얼마나 받느냐?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때, 그 사람에게 *돈이 있느냐?* 고 묻고, *돈이 없다*고 하면, 죽도록 내버려두었다면, 그는 악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매 순간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으며, 고린도에서도 굶어죽을 각오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다른 영혼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해서 *돈 때문에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죽는 것을 택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의 직업이나, 세상적 성공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한 목숨을 건 전투*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가 이 정신을 끝까지 고수할 때, 그는 순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큰 사고나 지진이 났을 때, 사고 현장 가까이에 있는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이때 의사는 없고, 수혈할 피도 모자라는데, 환자가 밀려들면, 전쟁터와 같을 것입니다.
옆에서 계속 사람이 죽어가고, 새로운 환자가 자꾸만 밀려오면, 환자를 눕힐 곳이 없어 복도에 눕히기도 하고, 수혈할 피가 없으면, 의사나 간호사의 피를 뽑아 수혈하기도 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치열한 영적전쟁*입니다. 즉 사람들이 마귀의 폭격을 받아 여기저기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잘려 나간 상태에서 *나좀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를 때, 목회자나 선교사는 그 가운데를 뛰어다니면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이것을 하나의 전쟁으로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죽을 각오로 복음을 전했고, 앞으로도 죽을 각오로 일할 거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돈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목회자나 선교사가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할 때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열정의 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파벌 싸움이 일어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행동이 나오고, 돈을 더 받으려고 다투게 됩니다.
16절)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과 취미로 하는 사람은 자세가 다릅니다. 즉 바둑이나 테니스, 골프 등 운동을 취미로 할 때는 잘해도 되고, 꼭 잘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이것이 곧 자기 생활이고, 생계이기 때문에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프로 선수들은 아마추어 선수가 흉내 낼 수 없는 실력과 굳은 각오로 경기에 임합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점프해서 잡을 수 없는 공을 잡거나, 프로 골퍼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공을 쳐서 홀 가까이에 갖다 붙이면,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은 일하는 것은 프로처럼 하지만, 돈 문제는 아마추어처럼 하면, 순수함과 실력을 겸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목회도 하나의 좋은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목회자로 크게 성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많은 젊은이가 지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회자가 되면, 교인들의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고, 책 읽을 시간이 많아서 지원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대개 실패하고 맙니다.
여기서 *부득불 할 일*은 자기 속에 불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설교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속에 불덩어리가 있어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아무리 사람이 적게 모이고, 보수가 적어도 설교 할 수 있으면,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17절)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본문을 보면 복음 전하는 것을 자의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 때는 모든 신자가 전도자였는데, 이들은 자원해서 전도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시고, 사람이 은혜를 받자 모두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집이나 밭을 팔아서 헌금으로 내고, 지팡이 하나 없이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자원해서 일하는 자들로써, 천국의 상(賞)을 받게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복음이 자신의 의무이고, 사명이며,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주님의 명령 불복종죄로 형벌에 처해지게 됩니다.
18절)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상(賞)은 이 세상의 성공이나, 대접을 받는 것보다 주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 앞에서 상(賞)받는 비결은 우리 인간이 보기에 성공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처럼 자기가 누릴 특권을 모두 다 누리고, 큰소리칠 것 다 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상(賞)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상(賞)받는 비결은 모든 세상 자랑이나, 특권을 포기하고, 오직 복음 하나만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Ⅱ.복음의 문화 적응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때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가치관이 붕괴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진짜 멘봉(mental collapsing)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세상에서 최고가 되는 것을 꿈꾸었는데, 그 자신은 *율법 지식으로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선행을 쌓을수록 하나님 앞에서 상(賞)이 많아진다고 생각했고, 유대인이 아닌 자나 율법을 모르는 자는 아무 가치가 없는 자이고, 멸망 받아야 마땅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모든 인간의 가치가 다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가치 있는 것은 사람의 영혼인데, 복음만이 이 영혼을 건지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소중한 한 생명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오직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굳이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보니, 모두가 시간낭비였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사도 바울의 복음 전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도 대상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인종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구원받기 위해 할례를 받을 필요도 없고, 유대교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에게는 완전히 매국노적인 행동이었지만, 실제로는 올바른 진리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도들도 사실은 갈릴리 사도로 베드로나 요한 등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유대인의 벽이 너무나 높아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려서부터 이방 지역에서 자랐고,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서 이방인 전도에 아주 유리했습니다.
19절)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사도 바울은 과거 유대교에 있을 때, 자신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까 유대교의 쇠창살 안에 갇혀 지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기존의 가치관과 잘못된 인생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깨달은 복음을 모든 문화와 사람에게 전하는 철저한 종의 원리를 채택했습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다 똑같다면 굳이 복음을 거절하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선교사로 가는 것입니다. 외국에 가면, 무한한 어장(漁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어른의 가치와 청년, 어린이의 가치가 똑같다면, 굳이 담임목사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은 오직 겉으로 보이는 자리나, 대접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죽어라 자리를 가지려고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지는 것이 중요하지, 높은 자리에 앉아서 폼 잡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20절)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인 척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자신이 유대인 혈통을 자랑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유대인에게 가장 강력한 진리의 수단은 구약 성경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어에 능통한 랍비였고, 그 해박한 구약 성경지식으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서 상당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여기서*율법 아래 있는 자*는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모두 할례 받고, 율법을 지키려고 했는데, 바울은 그들의 개종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불필요한 규정도 복음과 충돌하지 않으면, 함께 지켰습니다. 사실 바울은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설교했고, 안식일 집회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1절)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여기서 *율법 없는 자*는 순수한 이방인을 말합니다. 사실 율법에 젖어 있던 사도 바울이 율법의 규칙을 깨고, 다른 사람과 어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에게 굳이 율법을 지킬 것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도 자신을 맞췄습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약한 자에게는 약한 것을 인정했습니다. 또 안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안정했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에게는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학벌을 인정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못하면 기준 자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준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이지만, 옷은 여러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진리는 동일하지만, 표현 방식은 다양합니다.
즉 청소년을 얻으려면, 어른에게 하는 식으로 설교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복음 자체가 달라지면 안 됩니다.
Ⅲ.목표가 분명한 달음질
운동하는 사람은 올림픽이라든지, 체전이라든지, 큰 정기에 우승하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목표를 가진 사람이 친구들과 놀 것 다 놀고, 구경할 것 다 하면서 우승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예선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을 합숙훈련을 시키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스케줄을 짜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우리는 믿음의 경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죽자 살자 덤벼들어야 주님 앞에서 상(賞)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3절)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선수의 목표는 현역 선수로 뛰는 것입니다. 은퇴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굉장히 고민스러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에 참예한다고 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현역으로 뛰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은퇴란 없습니다. 제도상 교회나 선교지에 후계자 문제를 위해 은퇴하는 것이지, 복음 전하는 일은 영원한 현역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말씀 듣는 자들은 모두 다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는 건강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목회할 때, 이미 고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예수에 대하여 설교했다고 해서 밧모 섬으로 유배가게 됩니다. 밧모 섬은 나무가 없고, 물이 없는 곳으로 유명한데, 여름에는 씻을 수 없고, 겨울에는 난방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거기서 일 년 반을 견디면서 예수님의 묵시(계시록)를 보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밧모 섬에 유배됨으로써 모든 사역이 끝난 줄 알았는데,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당한 후에 풀려나서 에베소에서 많은 성도가 모인 가운데 다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올림픽 경기의 달리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24절)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당시 고린도에는 이스무스 경기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세계 육상 경기대회가 열렸는데, 그때 자메이카 육상 선수 우사인 볼트는 세계적인 인기 스타였습니다. 그의 달리는 모습을 보면,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 같았습니다.
단거리나 장거리 경기에서 우승하려면, 거기에 맞춰 철저하게 훈련하되 절대로 딴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경기에 임해서는 숨통이 끊어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합니다.
처음에 열심히 달리다가 나중에 숨이 차거나 힘이 빠진다고 천천히 뛰면, 꼴찌의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역시 늘 연주하는 곡일지라도 30분 미리 연습하지 않으면 실패한다고 합니다. 또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가 없는 곳에 가지도 않는 다고 합니다.
설교자에게 설교 준비와 영성과 도덕은 아주 중요하고, 생명과 같습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영감이 죽고, 열정이 죽으면, 그는 죽은 것과 같습니다.
운동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명성이나, 관록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훈련 량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훈련 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 개의 목표를 따르는 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목표가 정해진 사람은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25절)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당시 운동선수들은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절제하면서 훈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썩는 면류관이었습니다.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참아야 하고, 절제해야 하고, 자신을 혹독하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27절)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예수님은
마7:21절)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입으로는 *주여, 주여*하면서 자기 자신은 전혀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 좋은 일만 실컷 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남 좋은 일도 아니고, 모두 다 망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賞)을 받으려고 하면, 한 영혼이라도 더 건져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진리를 연구해서 그분의 진리를 더 밝히는 자가 상(賞)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말씀에 쳐서 복종시켜 자기 안을 말씀으로 채워 보물을 만드는 사람이 상(賞)을 받습니다.
찬송가 498장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성경을 통한 자기 진단*
Ⅰ.사도 바울은 평신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목회자나 선교사로 부름 받은 자들에게 어떤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가?
Ⅱ.사도 바울은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전략을 썼는데, 우리는 복음 전도나 선교를 위해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Ⅲ.사도 바울은 실컷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나서 자신은 버림당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목회나 선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리고 목회자들이 버림을 당한다면, 주로 어떤 문제 때문에 버림당한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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