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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사이공’ 연습광경 스케치
문예회관대극장 지하에 있는 연습실.
난 이곳에서 연극 연습광경을 여러 번 구경당한 적이 있다.
근데 아무리 연습실이나 좀 심한 것 아닌가~
벽과 천정에 방음 흡음판 장치가 하나도 없다.
배우 대사와 노래, 음향이 벽과 천정,
시각적 방해요소로 가운데 있는 두 기둥에 반사되어 亂破(난파) 돼버리고..
마루 바닥에다 형광등 조명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다.
최소한 벽과 천정에 계란판 정도의 흡음판이라도
부쳐놔야 해야 했고 가운데 두 기둥은 거울처리를 했으면 좋겠는데..
대학로 한복판에 있는 문예회관이라 공무원 꼴통들이
운영 관리하는 쾌쾌하고 묵묵한 관료행정이란 냄새를 여기서도 맡아야 하는가~
작고한 한국최고 건축가 김수근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태.
일반인이 쉽게 들어올 수 없다는 장점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대대손손 복지부동 유물보존 하듯
수십 년을 하루 같이 그렇게 해 왔을 것이다.
식당용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엄청 커 배우들 대사가 안 들릴 정도..
아무리 싸다는 맛에 연습장으로 쓴다지만 해도 너무한다.
개인적으로 문예회관 가면 먼저 눈에 띄는 그 경비복 차림새가 눈에 거슬린다.
문화예술을 한다는 곳에 상주하는 인간 복장이 꼭 그래야 하나~
가운데 다리.. 잠지 손잡이 잡고 반성한 뒤 후딱! 고쳐지길 바란다.
내가 연습실로 갔을 때는 군인들이랑 색동저고리 입은
댄서들이 춤추며 알만 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연습실 공기의 온도와 습도, 습기와 훈짐은 꼭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불케 한다.
비릿한 땀냄새로 얼룩져 있고 안경에 뿌연 김이 서릴 정도.
좀 지나니 베트콩 여간첩이자 댄서 창녀 ‘후엔’役 ‘강효성’과
파월 맹호부대 하사관 김문석 중사役 ‘서범석’이 사랑의 갈등을 때리는 게 보여 지고,
까만 옷차림 월남여자들이 희고 긴 천을 머리에 이고 군무를 춘다.
담은 정글전투장면, 군대장비들 리얼리티가 생생하다.
철모, 군장, 위장망, 탄띠, 수통, 대검, M-16소총, 군화, 군번줄, 계급장까지..
내가 옛날 군대 생활했던 70년대 후반 군바리 소품들이다.
군바리들의 짬밥 냄새가 팔팔 풍겨 온다.
어디선가 월남 꼬마가 등장하고 꼬마의 엄마도 등장한다.
베트콩과 교전 장면.. 국군들 거의 다 죽고..
살아남은 김 중사는 포로로 한풀이 섞인 폭행고문을 당한다.
이 대목은 영화 ‘플래툰’에서 보여 지는 그 장면과 어쩜 그다지 비스무리한지..
난 영화로 그걸 볼 때 왠지 모르게 눈물을 흘렸었다.
군인들 전투장면 연습 할 때는 여배우들 10여 인분이
식당용 선풍기 앞에 쪼로롱 앉아 구경한다.
김 중사는 포로지만 여간첩 후엔의 도움으로 베트콩 대장 후엔의 남동생
‘막드엉’으로부터 풀려나 살아오고 일계급 특진을 한다.
꼬마가.. 잠깐, 여기서 ‘꼬마’라는 말은 한국말이 아닌 ‘몽고말’이란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한국말인줄 알았으니..
꼬마는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른다.
김상사는 '이렇게 짧은 끝.. 이렇게 짧은 끝..'을 외치며 권총자살을 한다.
휠체어에 앉은 여자가 나와 '아빠.. 아빠..' 외치는데,
휠체어에서 엎어지더니 바닥에 나뒹군다.
남자가 아빠의 영정을 들고 나와 독백을 하며 아빠가 죽었음을 알려준다.
'∼♬ 월남에서 돌아 온 김 상사..'를 모두 천천히 부른다.
연습은 그렇게 끝나고 저녁 먹고 연습이 이어진단다.
작, 연출의 ‘김정숙’은 줄거리 따라가기가 아닌 안무 연습을 한다고..
난 연습광경을 유추해 느낌을 쓸 거니까
상관하지 말라고 말했고 계속 연습이나 구경하겠다고 했다.
괜히 신경 쓰면서 할까봐 아랑곳하지 말라고..
‘와이어-리스’ 착용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남자는 군장에 철모 쓰는 군인이니 귀에서 뺨으로 부착하고,
여자는 머리에서 이마에 부착할 걸 얘기한다.
격렬한 춤과 전투장면이 많으므로 허리에 찰 수 없다는 것과,
배우들마다 역할에 의한 춤과 연기와 동작이 다르기 때문에 착용위치에 대해,
각자가 면밀하게 요령 있게 연구할 것을 얘기한다.
처음 시작했던 '원 달라..원 달라..'에 이어 다시 안무연습을 한다.
몸이.. 몸매가 멋지고 아름다운 남녀 배우들이 많다.
춤의 난이도가 여느 뮤지컬보다도 높아 보인다.
어려운 동작이 많고 몸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유연한 배우가 많다.
뮤지컬배우는 전문무용수 보다 몸이 더 좋아야한다.
춤추며 노래하고 연기해야 하고 의상과 신발 등..
춤추는데 있어 무용수보다 엄청 안 좋은 열악한 조건에서 하기 때문인데,
그래 몸에 군살이 없을수록 유연함에 있어 유리해진다.
‘이-시스터즈’라고 여배우 3인분이 나와
'울렁울렁 울렁대는.. 울릉도 호박엿'을 아이스크림-콘을
마이크로 삼아 들고서 노래하며 춤을 추는데..
백댄서들과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트위스트 풍이 신나게 흥을 돋구어낸다.
담엔 베트남 민속춤을 연습하는데 참 다양한 볼거리다.
군가에서 가요로, 팝송에서 트로트로, 힙합, 랩에서 로큰롤까지..
난 브로드웨이 ‘미스사이공’을 비디오로 봤지만,
사랑얘기를 주제로 월남전의 비극과 참상을 감추고 미화해보려는..
양키사회의 정치군사적 의도가 강하게 배어 있는
대국민 홍보뮤지컬이란 걸 알아내고 부아가 치밀었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블루사이공’은 ‘미스사이공’과는 그 내용적 차원이 다르다.
전쟁의 비극과 사랑의 아픔과 참혹한 살육의 역사를 노래한다.
통일뮤지컬 ‘꿈꾸는 기차’와 동학뮤지컬 ‘들풀’에 이은,
월남전 뮤지컬 ‘블루사이공’은 순도100% 정품으로 명품인 국산품이다.
내수용보다 수출용 뮤지컬로 다듬어져 ‘세계문화예술시장’에서
인기 좋고 잘 팔리는 세계적인 명물이 되길 바란다.
‘블루사이공’은 파월참전용사면 무조건 봐야하고
60만 국군장병도 열외 없이 다 봐야한다.
군인정신에 있어 전쟁체험까지 이 보다 더 확실한 정훈교육이란 없기 때문..
국방부장관은 이 공연소식을 전군에 알리면서
따로 특별예산편성해서 모두 돈 내고 보도록 미션 조치 할 것을,
혜화동에 사는 이 민방위대원이 명령하는 바다.
2000-08-07
‘블루사이공’은 푸른빛 아닌 핏빛이다!
2000-08-11/짝재기양말
난 불행히도 행복하게 14년 전 베트남에 갔다.
전쟁을 하러 갔다 온 게 아니라,
비공식외교사절로서 베트남 체신사업의 진흥을 위해,
지금은 이름이 없어진 ‘사이공’ 시내에 있는
체신부 건물 1층 400평에 전자제품상설전시장을 세운다고 해서,
설계와 디자인의 기초를 잡아주러 갔다 온 것.
당시,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국교수립이 없던 상태.
대한항공 타고 태국 방콕까지 가서 이틀을 기다렸다가 기종을 모르는
쌍발군용 프로펠러 군용기를 타고 서울서 방콕까지 간
시간보다 훨씬 더 긴 6~7시간동안 사이공을 향해 아주 느리게 날아가야 했는데..
그런 거북이 비행기는 첨 타 보는 엽기적인 체험이 되었다.
기체 곳곳에 총알구멍이 뻥뻥 뚤려 있는 걸
청 테이프 비슷한 테이프로 부쳐놨는데 떨어진 게 많아 기내의
환기시스템은 열대의 자연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전쟁 때 쓰던 미군 비행기를 어찌어찌 훔쳐내 쓰는 것 같았는데 조종사 둘은
떠들며 술을 먹으며 노래를 부르며 조종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와 동행했던 통역사와 경호원은 기겁을 하며 놀라 떨고 있었고..
지상 100~200m 고도에서 휘청대며 날아가는 충격적 공포..
수시로 내리는 스콜(돌발 소나기) 땜시로
착륙과 이륙을 반복하며 가는 진짜 파격공포의 비행이었다.
사이공에서 업무에 관광차 3일을 돌아다니다
다시 그 망가진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가 대한항공으로 갈아타고 서울로 왔는데,
꼭 어디 전쟁터를 갔다오는 람보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세상에나..
2차세계대전 때 공수부대 낙하용으로 쓰던 C-47을 타고..
내 황당했던 베트남 출장기록은 뮤지컬 ‘블루사이공’을 볼 때마다 생각난다.
‘블루사이공’ 연습을 구경한 적이 있기에
시연회를 관극하는 내 심정은 남달리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연습했던 문예회관대극장 지하연습실 공기는
동남아 열대의 습도 80%이상 온도 33도로 베트남 사이공 그 자체였다.
땀으로 목욕하며 인내심 테스트에 안성맞춤으로..
저녁 7시 본 공연에 앞서 프리뷰 한다는 동숭아트센터.
인간들이 참, 무지막지하게 많이들 와 있다.
매표소에 군대용 위장막이 쳐 있고 로비로 내려가는 뱅글뱅글 골뱅이계단에도
위장막을 걸쳐 놓은 훌륭한 마케팅적 디스플레이의 연출~
로비에는 고엽제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사진들이 쪼로롱..
베트남에서 만들어낸 수공예품도 쪽 진열되어 있다.
근데 웬 인간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난 인파에 밀려 휩쓸려 극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방송국 카메라가 세군데 설치되어있다.
내 자리는 나열 146번인데 앞의 통로를 방송카메라와 컴퓨터가
막고 있어 내 자리는 통로가 되어 버린 꼴이다.
무대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자리라서 갈등 때리다
공연시작직전, 무대 맨 앞에서 두 번째 통로 쪽 자리로 인사이동을 했다.
큰 극장에서 공연 볼 때는 맨 앞에서 봐야 제대로 본다.
텅 빈 무대, 무대 가장자리는 정글이미지를 주는 추상적 설치물을 세워놨다.
푸른빛이 환상적으로 희미하게 비치고 무대바닥도 좀 높였다.
장중한 음악이 깔리면서 장엄하게 공연이 시작된다.
월남 여인들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고 음악에 블루사이공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 가수가 부르는데 객석통로를 통해 무대로 올라간다.
가수이미지는 씨니컬하고 새디스틱하며 히스테리컬한 분위기로 무대를 압도한다.
블루사이공을 연발..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
잠시 후 김 상사가 휠체어에 의지해 나오는데
어디가 아픈지 머리가 복잡한지 아주 심하게 괴로워한다.
망자들도 꾸역 꾸역 나오고 김상사 주변에 몰려들어
환자인 듯한 그를 더 심하게 괴롭힌다.
역시, ‘손병호’다!
연기상을 받은 배우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노래 부르던 가수는 김 상사를 희롱하면서도 한편 위로한다.
월남 파병의 노래가 나오는데,
초삘 시절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다.
60년대 초중반 교복 글고 교련복..
당시 살던 백성들 옷이 선보이며 치기와 선동의 극치도 보여준다.
이 장면은 꼭 북한인민뮤지컬 보는 듯한 느낌..
태극기와 베트남기를 요란하게 흔들면서..
우린 그때 그렇게 양키제국주의자들의 음흉한 장삿속에 함께 놀아나
젊은 피와 목숨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공해야 했다.
진짜 무식하면 용감한 것이 전국적으로 판을 치던 시절..
다시, 김 상사의 회상인데 이번엔 6.25전쟁 때 북한땅이다.
굴렁쇠를 갖고 노는 10살 어린 시절 김 상사의 ‘천진만만’한 모습.
빨갱이 얘기가 나오고 김 상사는 괴로움에 치를 떤다.
다소 무겁고 심각한.. 시작부터 여기까지..
김 상사를 중심으로 떠올리는 병상침대 회상여행은 계속 이어진다.
장면이 바뀌고, ‘원 달라..’ 노래를 화려하게 펼친다.
월남 창녀들과 군인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꼴리는 대로 군무를 춘다.
연습 할 때도 이걸 봤는데 연습 때 보다
노래와 춤의 속도가 느리고 늘어졌단 느낌이다.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한다면 좀 더 박진감 있고 현란할 것이다.
극 진행상 속도의 섬세한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커다란 다트게임 판에 속옷차림 벗은 여자를 세우고
다트 화살을 군인들이 던지며 게임을 한다.
전쟁터 와중, ‘파라다이스 바’의 광경은 한마디로 개판 5분 전이다.
퇴폐와 향락과 광란의 폭력을 실감 팍팍나게 보여 준다.
나도 베트남 갔을 때 사이공 시내에 있었던 그런 비슷한 곳을 가 봤으니..
한 여자가 무대에서 관능적이고 음탕한 춤을 춘다.
자세히 보니, 뮤지컬에서 내가 최고로 치는 배우 ‘강효성’이다.
역시, 타고난 연기로 연기상 받은 배우는 춤도 잘 춘다.
춤추는 걸 구경하던 발정난 군인 하나가 침을 흘리며
그녀를 능욕하려는데 다른 군인이 나타나 그 군인을 졸라 패버린다.
그러던 중 또라이 미군 하나가 권총 들고 나타나
난동을 피우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그 자리에서 월남 여간첩 ‘후엔’役 ‘강효성’과 맹호부대 ‘김문석’중사役 ‘손병호’는
그게 인연이 되어 그녀와 운명을 같이 하는 관계가 된다.
후엔의 집, 김중사를 데리고 온 후엔은
말이 통하지 않지만 애틋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후엔과 얘길 나누던 김 중사는 과거 회상에 빠지는데 다시 김 중사의 10살 때 장면.
김 중사 부모님이 빨갱이에게 잡혀 모진 해코지를 당하고 어린 김 중사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빨갱이는 아버지 앞에서 허공에다 총 쏘며 겁주고 김 중사는 그걸 회상하며 괴로워한다.
빨갱이의 총이 웬 M-16 소총인가~ 따발총이 돼야지..
리얼리티를 추구하려면 무기고증에 있어 정확하고 정밀하게 해야지..
월남파병용사와 6.25를 시퍼렇고 끔찍하게 경험한 이들이
‘블루사이공’ 이 대목을 보고서 어떻게 생각할까~
김 중사가 '내가 아버질 죽였다!'며 오열하고
그리 괴로워하고 있을 때 후엔의 남동생인 베트콩 ‘막드엉’이
칼을 들고 갑자기 나타나 김 중사를 죽이려는데..
후엔이 결사적으로 막고 세 사람이 뒤엉켜 몸싸움 하던 끝에 칼을 놓친 막드엉은
뜻을 못 이루고 사라진다. 얜, 사라지는게 특긴가? 툭하면..
김 중사와 후엔은 다시 서로 비참했던 가족 얘길 나눈다.
그러다 둘은 연정의 눈빛이 오고 가더니 키스하고 포옹하며 정사를 벌인다.
다음은 병영장면, 최지수 이병이 처량하게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데..
고참이 들어오고 고참이 입으로 편지를 쓰면 최 이병이 받아 적는다.
그러다 질질 짜며 전투현장에서 고엽제를 뿌려대니까
소이탄이 필요 없어져 훨 나아졌다고 떠든다.
진짜 더럽게 무식한 군인들하고는.. 소이탄은 말 그대로 싸그리 태워 죽이는 폭탄.
군인들 병영생활과 남자들 세계에서 나올만한 말이 나오고..
고엽제를 회충약에 비유하며 뭐든 다 말라죽게 한다는 얘기도..
일병이 벼 들고 나와 고엽제 뿌리는 것에 화내기도..
이미자의 노래가 나오는데.. ‘이건 우리 어머니 노래여..’
그러면서 최이병을 비롯해 전부다 따라 부른다.
다음 장면은 우리나라 시골 어디 같다.
아가씨 배우들이 나와 아줌마 연기를 능글맞게 넘 잘한다.
미제화장품 파는 아줌마가 샴푸를 가지고서
‘물 구리무’람서 상술로 바람 잡으며 새 각시에 새 가마 탄다며 뻥을 친다.
‘앵두나무 우물가∼♬’를 멋지고 신나게 부르는 사이,
객석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러다 돌연, 스타카토로 팍 암전되는데 암만 프리뷰지만 좀 심하지 않나~
현수막이 하나 내려오고 ‘백장미 파월장병 위문단’이라 써있는데..
무대 위에선 월남 전통춤을 추며 한 요염 한 섹시를 한다.
군인들은 객석 맨 앞으로 몰려 나와 무대에 턱을 괴고 넋이 빠져 그걸 구경한다.
다음은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를 부르며,
‘서영춘’役 사회자가 엄청 오바하며 사람들을 웃기려 애쓴다.
빨간 양말에 백구두를 신고 나와 서영춘이 흉내를 내면서 혀 짧은 성대모사까지 한다.
일등병이 올라가 바지가 찢어지도록 막춤을 추면서
엉터리 팝송을 부르는데 한 묘기하고 한 오바 떨면서 한 개그쇼를 한다.
어이가 없어진 서영춘이 쪽 팔려 뒤로 물러나 있는 정도.
참 재밌는 극중 쇼를 보여주는데 이 시스터즈까지 나오더니
뮤지컬 '블루사이공'에서 최고 신나고 흥겨운 노래 ‘울릉도 호박엿’을 다함께 불러 재낀다.
군인들은 흥분해 무대로 올라 댄서들과 뒤섞여 열나 춤을 춘다.
후엔과 김 중사가 기분 좋은 분위기를 즐긴다.
천정에서 수 십개의 연등이 내려온다.
‘내 안에 당신이 있어요∼♬.. 내 안에 사랑이 있어요∼’를 부르는데
노래가.. 가사가.. 목소리까지 참 듣기 좋다.
후엔은 김 중사에게 ‘케산전투’에 가면 다 죽는다고
만류를 하지만 명령에 죽고 사는 게 군인이라고 똥고집을 부린다.
둘이 그케 사랑의 갈등을 때리는 사이 한편에선 월남 여자들이 나와서 ‘용춤’을 추어댄다.
연습할 때는 하얀 긴 천을 가지고 그렇게 했던 것인데..
드뎌, ‘블루사이공’에서 명장면에 들어가는 ‘케산전투’.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잔뜩 겁에 질려 있다.
김 병장이 어쩌다가 부비트랩 건들어서 죽었다는데..
부비트랩은 총이나 폭탄 안 쓰고 죽이는 물리역학적 장치의 살인병기 총칭. 이 친절함~
겁을 젤 많이 먹은 막내 최 이병은 제 정신이 아니다.
베트콩에게 잡히면 산채로 뼈를 마디마디 분질러놓고 온몸 살껍질을
벗겨 버린다고 중얼대며 죽음의 공포에 치를 떤다.
공포와 긴장은 분대 전원에게 전염되고 분대장 김 중사도 갈등 때리고 있다.
월남소녀가 월남말로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데 넘나 귀엽다.
잠시 후 소녀의 엄마하고 만나는데 그때 군인들이 들이닥친다.
군인들은 그들을 베트콩의 끄나풀로 보고 폭력을 휘두르는데..
갑작스런 기관총 소리에 병사들이 하나 둘 쓰러진다.
영화 '플래툰'에서 그 장면과 비슷하게 베트콩들이 나타나더니 병사들을 확인사살한다.
이 장면에서 스모그가 너무 자욱해 무대상황을 명확히 볼 수 없다.
스모그 트는 양에 대한 셈세한 조절이 있어야 하겠다.
병사들이 다 죽었는데 유일하게 김 중사는 살아 생포된다.
천정에서 병사들 시체더미가 내려오고 베트콩대장 ‘막드엉’이 분노와 증오에
노래를 부르는데 반주가 너무 커서 노래 소리가 묻혀버린다.
--- 노래도 언어고, 음악도 언어고, 연주도 언어다.
뮤지컬에서 노래 부를 땐 어떤 사건의 강조이고 종결이자
메시지를 줄 때마다 노래를 부르는 게 상식이다.
그런 중요한 시점에 반주에 씹혀서 가사가 안 들린다면 감동이 전해지겠능가~
강남뮤지컬에서 최고 단골로 보이는 게 이런 결벽증이다.
업데이트 된 전체적 상황을 상징적 그림과 사운드로 들려주려는 뜻은 안다.
거칠고 컨추리할만한 정글 전투장면이지만,
‘막드엉’의 노래가사는 월남이 겪는 뼈아픈 역사현실을 보며,
미국, 일본, 프랑스, 중국 등 제국주의자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증오와 나라 사랑하는 한 맺힌 애국심이 징허게 담겨있다.
그런 노래의 말소리가 사운드에 묻혀서야 되겠는가~
‘막드엉’은 전쟁을 ‘놀이’라고 얘기하면서
잘린 군인의 팔을 들고 김 중사를 희롱하고 죽은 군인 심장을
칼로 도려내 씹어 먹으면서 김중사를 갖고 논다.
가지고 놀다가 김 중사를 칼로 찔러 죽이려는데 그때 등장하는 후엔,
전투복 차림으로 나오는데 허리엔 권총을 차고 있다.
김 중사를 죽이지 못하게 관계를 설명하며 결사적으로 막는데 냉담의 화신인
‘막드엉’은 ‘춤꾼답게 시도 잘 쓰는군..’이라 빈정댄다.
‘후엔’은 ‘사람이 없는 혁명이 어디 있는가..?’라고
절규하면서 ‘나, 이 사람 애기 가졌어 제발..’ 그럼서 처절하게 매달린다.
결국, 김 중사를 죽이지 못하고 또 사라져버리는 ‘막드엉’.
이어 부르는 후엔의 노래, ‘어쩔 수가 없었어.. 말할 수가 없었어∼♬’라고
부르는 통한의 사랑의 노래가 가슴 저미게 서늘한 푸른빛 감동으로 전해 온다.
아까부터 간헐적으로 무대측면에 들락거리는 배우들 모습이 거슬린다.
전체적으로 음악과 노래와 소리와 효과의 셈세한 조절을 우선적으로 손봐야겠다.
--- 미제 그것.. ‘미스사이공’에서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건..
극장천정이 열리고 월남전영화 ‘플래툰’ ‘지옥의 묵시록’에서
단골로 나오는 전투헬기인 UH-IC Iroquois(이로코이즈)가 무대에 내려앉는다.
그 엄청난 스펙터클한 장면은 머리털이 몽땅 뽑혀 날아갈 정도.
참고로 이 헬기의 주 날개 회전속도는 1초에 180번을 돌며
승용차 두 대 무게인 2톤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1400마력의 막강한 힘이 있는데,
난 이 기종 헬기를 군대에서 공수유격 받을 때 타 본 경험이 있다.
‘블루사이공’에선 여기서 바람이 오른쪽에서 부는걸 보니
식당용 선풍기로 대신 한 것 같은데 몇 개를 동원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지만,
지금 현재보다 바람이 더 엄청 세차게 불도록 했으면 한다.
헬기 프로펠러 굉음이 천지를 진동시키며 뒤집어엎을 정도 엄청나고 요란하게
서라운드 스테레오 음향으로 귀청 찢어지게 처리했으면 한다.
후엔의 도움으로 9사1생으로 살아난
김 중사는 일계급 특진을 하고 한국으로 귀향한다.
그 후 결혼하고 두 자식을 낳은 ‘김 상사’는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며 죽을 날 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딸도 마찬가지로 그 지랄 같은 병이 시달리는데..
그걸 보며 이 땅에 아직 안 죽고 고통스레 살아가는 전쟁의 희생양들을
떠올려 보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이제야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모두들 기다렸네∼'를..
첨 그 가수가 천천히 음미하듯 부른 2시간짜리 뮤지컬은 그케 끝난다.
역사와 시대의 제물이 된 김 상사라는 한 군인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철학을 담고 있는 뮤지컬 '블루사이공'.
극 속에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는 창작 뮤지컬로,
오락성 껍데기문화化 되어 가는 잡스럽고 저질스런 뮤지컬들과는
엄격하게 차별되어야 하고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난 이 작품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왜? 국산품이기 때문이고 나도 국산이니까..
불편한 몸으로 삼복더위에 비지땀으로 목욕한 작가 연출 ‘김정숙’과
극단 ‘모시는 사람들’ 식구전원에게 100분짜리 빨갱이 박수를 보낸다.
1996년 초연된 이 뮤지컬이 왜 상이란 상을 휩쓸었는지..
뮤지컬 대상 극본상 수상, 제20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작품상 수상,
1997년 백상예술상 연극부문대상, 작품상, 희곡상 3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특이한 것은 서울연극제가 뮤지컬에다 상 준 전과가
한 번도 없는데 이 뮤지컬이 상을 받자 당시 연극판이 한동안 술렁거렸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고들 하는데..
--- ‘블루사이공’은 한국에서 빚어낸 최고의 걸작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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