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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향연
--박방희의 시세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호피虎皮는 호랑이의 기상과 그 역사가 담긴 최고급의 가죽이고, 사람의 이름은 그의 지혜와 삶의 역사가 담긴 최고급의 이름이다. 호랑이의 가죽과 사람의 이름에는 하늘을 감동시킨 정평이 담겨 있는 것이며, 더 이상의 긴 말은 사족蛇足에 지나지 않는다. 짧고, 간결하고, 명료하게, 수천 년의 시간과 역사를 찍어 누르며, 수만 권의 책보다도 더욱더 풍요롭고 알찬 내용을 담보해내는 것이 모든 대사상가들과 대시인들의 오랜 소망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을 때, 그의 공산주의는 다 역설한 것과도 같고,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을 때, 그의 언행일치 사상은 다 역설한 것과도 같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외쳤을 때 인간의 자기발견을 다 역설한 것과도 같고, 랭보가 ‘이 세상에 흠 없는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외쳤을 때, 이 세상의 불완전한 인간을 다 용서하고 어루만져준 것과도 같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한용운,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는 김수영, ‘모두들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이성복, ‘무사한 세상이 병원이고 꼭 치료를 기다리는 무병無病이 끝끝내 있었다’라는 이상 등은 잠언과 경구를 통해서 그 이름을 남겼다고 할 수가 있다.
잠언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는 짧은 말을 뜻하고, 경구란 어떤 사상과 진리 따위를 가장 예리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말을 뜻한다. 이름이란 인간의 자기 보증수표이며 존재 증명이고, 또한 이름이란 잠언과 경구를 대표하는 그의 시집의 제목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의예지’를 역설한 공자와 맹자의 유교사상과 ‘무위자연’을 역설한 노자와 장자의 ‘도교사상’도 잠언과 경구의 형식을 띠고 있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 사상과 ‘무욕망과 무집착’을 역설한 불교의 사상도 잠언과 경구의 형식을 띠고 있다. 모든 사상은 시이며, 시는 잠언과 경구이고, 잠언과 경구는 시의 최종적인 형태를 뜻한다.
박방희 시집 {허공도 짚을 게 있다}는 잠언과 경구로 쓴 시집이며, 이 시집은 한마디로 말해서, 시간의 절약과 종이의 절약과 말의 절약 이외에도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의미를 충전시키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풍요로운 ‘말의 향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나는 말 많은 게 싫다. 한마디의 말, 한 문장의 말로 사물의 핵심을 찔러야 한다고 믿는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장검이 아니라 비수 같은 단검으로 승부를 보는 시, 그저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의표를 찌르는 언술로 진검승부를 하는 시, 단말마 같은 서슬 푸른 시에 나는 전율한다. 한 줄짜리 시도 한 쪽짜리 소설도 얼마든지 훌륭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 시는 대체로 짧고 간명하다. 조금 길다고 해도 걸림이나 거침이 없다. 풍자諷刺와 역설逆說, 그리고 위트와 유머의 시를 지향한다. 서정의 넋두리가 아닌 극서정으로 가는 시, 짧고 명료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를 선호한다.
----박방희, [발문跋文]에서
박방희 시인의 [허공도 짚을 게 있다}는 “장검이 아니라 비수 같은 단검으로 승부를 보는 시, 그저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의표를 찌르는 언술로 진검승부를 하는 시, 단말마 같은 서슬 푸른 시에 나는 전율한다”, “풍자諷刺와 역설逆說, 그리고 위트와 유머의 시를 지향한다. 서정의 넋두리가 아닌 극서정으로 가는 시, 짧고 명료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를 선호한다”라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넘어지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마라// 허공도 짚을 게 있다”([허공도 짚을 게 있다])라는 백절불굴의 용기와 이 세상에 대한 삶의 찬가로 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배터리가/ 나가면// 별에/ 접속하여/ 충전하는/ 사람.
----[詩人] 전문
한가로이// 풀 뜯으며// 흘러가는// 구름 양떼// 매~ 매~
----[하늘 목장] 전문
저녁놀을// 고추장 삼아// 맨밥을// 비벼 먹다.
----[청빈淸貧] 전문
위는 생生/ 아래는 사死// 지척 간의/ 죽음으로/ 질 때// 꽃상여로/ 제 주검을/
운구하는/ 꽃
----[꽃] 전문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고 즐길 수 있는 식성과 튼튼한 소화기관을 지녔으며, 그 무엇을 싫어하거나 좋아할 편식취향도 없고, 언제, 어느 때나 하늘목장을 경영하니 먹고 살 걱정도 없다. 사나운 비바람과 추위와 싸우다가 지치면 별에게 접촉하여 삶의 용기와 희망을 충전할 수 있으니 좌절하거나 실망할 일도 없고,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꽃으로 피어났다가 만인들의 축복 속에서 꽃상여로 나가니 그 어떤 후회와 회한이 있을 수가 없다.
아름다운 말도, 장식적인 말도 필요가 없고, 거창한 사상이나 구호를 앞 세울 필요도 없다. 서정시도, 서사시도 필요가 없고, 더, 더군다나 산문도, 소설도 필요가 없다. 한 시대와 한 문화 전체를 다 담아내고, 단 한 줄의 시구로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연출해낼 수 있으면 된다. 시는 사상의 꽃이며, 말들의 향연이다. 가장 간결하고, 가장 짧고, 가장 재빠르고, 가장 힘이 센 말들의 향연----. 이 ‘말들의 향연-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의 축제’를 연출해놓은 것이 박방희 시인의 [허공도 짚을 게 있다}라는 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이 모든 귀족 위에 걸작이 있다.
----[걸작傑作] 전문
작위爵位란 그 옛날의 황제가 제후들의 직급에 따라 내린 술잔을 말하고, 이 술잔들은 옥과 각과 금과 은과 동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작위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이 바로 그것이며, 이 작위들이 봉건군주제 사회의 귀족계급의 서열이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서민들 위에 남작이 있고, 남작 위에 자작이 있고, 자작 위에 백작이 있다. 백작 위에 공작이 있고, 공작 위에 황제가 있다. 만인평등과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의 타락한 형태이며, 인간과 인간의 차이와 계급차별이 없었던 사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청와대, 정당, 직장, 군대, 병원, 학교 등은 너무나도 분명한 계급사회이며, 이 계급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폭력적인 서열제도라고 할 수가 있다.
박방희 시인의 [걸작傑作]은 ‘인간 중의 인간’인 ‘시인’을 옹호하는 시이며, ‘촌철살인의 검법’으로 모든 계급사회를 전복시킨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이 모든 귀족 위에 걸작이 있다”는 것, 바로 이 시구에는 시인으로서의 무한한 자부심과 함께 장인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요컨대 시정잡배와도 같은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에 대한 풍자와 야유도 담겨 있고, 언어의 유사성에 의한 말놀이, 즉, 위트와 유머로서 최고의 걸작을 황제의 위치로 끌어올린 무한한 자부심과 함께 장인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영원하고, 귀족은 황제가 부여한 것이지만, 시인은 자기 스스로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선 사람이다. 걸작품은 아름답고 멋진 신세계이며, 시인은 신세계의 창조주이고, 모든 사건과 현상들을 스스로 가치판단하고 스스로 명명한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공자). 박방희 시인의 ‘말의 향연-촌철살인의 시’는 즐거움, 아니, 황홀함의 시이며, 예술품 자체가 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황홀함은 즐거움의 정점이며, 예술품 자체가 된 시는 가장 역동적이며, 백퍼센트 무결점의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별일 없느냐고요?// 별일뿐인 걸요!
----[천문대] 전문
일찍이/ 나한테/ 그처럼/ 환영받은 것은/ 없다// 언제/ 어디서든/ 맨발로 나가/ 맞았으니!
----[신에게] 전문
봄// 세상의/ 부스럼들이// 터지고/ 있네!
----[꽃] 전문
그건// 끝없는// 동어반복/ 同語反覆// 아니냐?
----[섹스] 전문
강은// 저문// 걸음으로도// 천리를// 간다.
----[강] 전문
죽은 새야말로 진짜 새이다// 永遠으로 날아갔으니…….
----[새] 전문
혁명가에게도/ 정치가에게도/ 민초에게도// 거부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거부巨富] 부분
[천문대]에서는 별일이 아닌 별볼 일 뿐이고, [꽃]에게서는 세상의 부스럼들이 다 터진다.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늘, 언제나 맨발로 나가 신을 맞이하고([신에게]), [섹스]는 끝없는 동어반복 행위이다. 죽은 새야말로 영원으로 날아간 진짜 [새]이고, [강]은 저문 걸음으로도 천리를 가고, 제 아무리 부자를 거부해도 [거부巨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시인의 말 솜씨는 장강의 유장한 흐름과도 같고, 때로는 대협곡과 대협곡을 건너가는 줄타기의 장인과도 같다. 자유자재로 말들을 섞고, 볶고, 뒤집는 솜씨는 제일급의 요리사와도 같고, 때로는 빛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모든 별들을 호령하는 우주의 총사령관과도 같다. 육체의 껍질을 벗고 영원으로 날아가는 새와도 같고, ‘죽음의 신’을 충복으로 거느리며 언제, 어느 때나 꽃상여를 타고 영원불멸의 삶을 사는 신과도 같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가장 힘이 센가?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말의 향연’을 주재하는 사람이며, 따라서 시인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은 거침이 없고, 그 어떤 장애물도 모른다.
시인의 말은 약속이며, 시인은 그 약속으로 그의 걸작품을 제시한다.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도 그의 영혼이 살아 있고, 단 하나의 군더더기도 없는 걸작품은 이상적인 낙원이며, 모든 인간들에게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약속한다. 동시대의 민중들과 백성을 알아야 그들을 인도할 수가 있듯이, 박방희 시인의 ‘촌철살인의 검법’은 “세상의 술 가운데서/ 가장 독한 술”은 [심술]이라고 그것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술에 취하면 스탈린과 히틀러와도 같은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고, 사적인 이기주의와 독단주의에 빠지게 된다. 심술은 “사시사철/ 입으로 피는/ 설화”([설화])처럼 끔찍하고, 부처는 없고 가짜 중과 가짜 신도들만이 있는 [표절]처럼 공허하고, 이 세상의 그 모든 곳에다가 [오물]을 남긴다.
모든 사상과 이념과 종교는 오물 중의 오물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사상과 이념과 종교들 속에는 “심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의/ 변은 구리다//뭐든 속에/ 오래 넣어두니까!”라는 [보수주의자의 변], “진보주의자의 변은/ 시원시원하다// 하지만/ 자주자주/ 설사를 한다”라는 [진보주의자의 변]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보수주의자들은 변화해야 할 때에도 변화할 줄을 모르는 바보들에 불과하고, 진보주의자들은 지나친 자기 확신과 과대망상증으로 그 무엇이나 탐식하는 소화불량증 환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사상과 이념과 종교에는 심술, 즉, 사적인 이기주의와 독단주의가 들어 있으며, 그것에 빠지면 그 어떠한 상대도 인정하지를 않게 된다. 믿음은 광기가 되고, 성실은 맹목이 되며, 그 결과는 무자비한 피비린내와 대립과 갈등의 분열일 수밖에 없다.
박방희 시인은 ‘도덕철학’, 즉, ‘무욕망-무집착’으로 내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며, [함께라면]이라는 ‘사랑의 찬가’를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너와 나
우리
함께라면.
----[함께라면] 전문
박방희 시인의 [함께라면]은 그의 걸작품이고, 약속이며, 모든 ‘심술의 때’를 다 벗어버리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이상낙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고 부식이나 간식이 아닌 주식과도 같은 라면, 이 라면의 이름에다가 민심民心과 국력國力을 결집시킬 수 있는 집단명사, 즉, ‘함께라면’을 명명한 그의 솜씨는 천하제일의 명명의 힘이라고 할 수가 있다. 문체를 보면 그가 제일급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고, 명명의 힘을 보면 그가 전인류의 스승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다. 모든 시인들은 명명의 대가이자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사상의 신전을 짓고, ‘말의 향연’을 연출해낸 전인류의 스승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함께라면]이고,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다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적인 낙원도 [함께라면]이다. 마르크스와 소크라테스와 데카르트와 랭보가 살다가 갔던 곳도 [함께라면]이고, 공자와 맹자와 노자와 장자가 살다가 갔던 곳도 [함께라면]이고, 한용운과 김수영과 이성복과 이상 등이 살고 있거나 살다가 갔던 곳도 [함께라면]이다. 천국, 극락, 에덴동산, 도솔천, 올림프스, 아틀란타 등도 [함께라면]의 영토이고, [함께라면]은 영원한 하나이며, 그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이상낙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사시사철 벌과 나비들이 날아오고, 모든 식물들이 저절로 자라나고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 언제, 어느 때나 젖과 꿀이 흐르고, 일을 해도 되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너와 내가 다툴 일도 없고, 언제, 어느 때나 시를 짓고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함께라면’ ‘허공도 짚을 게 있다.’
시인이란 ‘저녁노을을 고추장 삼아 맨밥을 비벼먹는’ 사람이고, ‘강은 저문 걸음으로도 천리를 간다.’
잠언과 경구. [걸작], [함께라면].
박방희 시인은 언제, 어느 때나 ‘말의 향연’을 연출해내는 시인이며, 영원한 제국의 창조주이다.
넘어지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마라,
허공도 짚을 게 있다!
----[허공도 짚을 게 있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