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행이나 생활이나 한결이 속한 것은 신구의 삼업의 드러남입니다. 이 삼업을 뿌리로 두고 살펴가며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삼업을 다스리는 삼밀법을 염두해 두고 이해하는 것으로 삼아주세요.
홀로 수행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이 두려움과 공포심입니다. 이런 과정을 극복하기를 반복하면서 절대적 깨달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제가 오랜 동안 토굴생활을 참 많이 했어요. 혼자있는 시간이라는게 좋은 것이 아니에요. 산에서 거나 어디에서 거나 주기적으로 찾아와 스며드는 것이 두려움 공포입니다. 특별한 모양없이 오기도 하고 그 방식은 6근으로 6경으로 6식으로 그 존재룰 드러내는 것입니다. 소리나 모습 또는 기분 느낌 향기 맛 생각으로 실체가 없음에도 찾아 옵니다. 이런 공포 두려움으로 토굴 생활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스스로 알고 두려움과 맞 서는 경험했고 이겨내지 못하고 떠나는 다른 수행자들의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수덕사. 정혜사 선원에 지낼 때 전월사 계시던 스님이 수행을 하면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그곳에서 못지내고 나왔지요. 그래서 내가 그곳에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대중 처소에서 지내는 이유가 이런 이유도 포함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심리학적으로 약한 분들에게는 때론 독이 될 수 있거든요. 혼자라는 사실은 내적 우리라는 말로 표현 설명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적 시간과 공간울 지닌 공동체이며 커다란 중심이란 것이 개체들의 내면에서도 똑 같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나다. 그래서 홀로 지낸다는 것은 내적 자아들이 사회집단화 되어 그 실체화 됨으로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대화를 하고 현상을 보고 행동도 합니다. 그리고 감정과 이성적 판단으로 혼자만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선택해야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망설임은 올바른 선택 기회를 가지기 위함입니다. 결코 결단력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잘못 선택 하는 것보다 천천히 안정됨를 유지하며 가는 길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망설임을 표현할수 있다면 행복한 단어가 될수있을 것입니다.
1.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있는 강아지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는 강아지가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할 수 없다. 오직 점점 다가서서 자신을 해치려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의 가슴 소리가 느껴지면 두려움과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서는 절대 극복 될수 없는 방법으로 상상으로 커지는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극복에 올바른 시도를 할 수 있다면 해봐야할 것을 마지막이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는 것을 권합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천안 광덕 안심대에 머물때 아랫집 지우 아빠가 학대 받던 개 한마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개는 두려움과 공포로 빡살말라 가늘고 뼈 골격이 살결 따라 보일 정도였지요. 아무도 접근할수 없는 공격성 까지 드러내었고 밥을 줄 때도 접근이 어려우니 긴 막대를 이용해 밀어 놓는 과정으로 생명 유지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지유아빠가 내게 사연울 말하였고 나는 처사님에게 어떻게든 데리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 묶어 놓으라 했습니다. 그다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조금씩 다가서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종일 곁에 머물러 바라보고 조굼씩 간격을 좁혀가며 그렇게 하여 몇일 만에 그 개와 살결을 닿울 수 있었고 결국 내 품안에 안겼습니다. 그렇게 아랫집 식구들과도 두려움 없이 지내게 되어 다시 아랫집으로 가게 되어 새끼도 낳고 그 자손이 여러대룰 거쳐 그집에서 지내었습니다. 두려운과 공포의 극복운 상대가 적이 아님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치는 개와 사람 동물 식물에 까지 같은 것입니다. 공포의 대상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그 상황은 변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두려움과 공포는 마음에서 계속 뿌리를 두고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두려움과 공포심의 모든 것은 사그러져 버리는 유령같은 허상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자 보호자가 될 것입니다.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공포와 두려움울 지닌 개가 할 일이었습니다. 그것울 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 마주하고 바라보는 시간에서 한발짝 한발짝 그렇게 다가서서 안전함이 느껴지도록 하여 상대를 터치하고 이를 허락함으로 품에 안아줌으로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하여 개 한마리가 내품안에서 편안해지고 아랫집 식구 모두 자연스럽게 터치하고 안기며 그 개는 아랫집에서 대룰 이어가며 지내게 된 것입니다. 문을 닫아 둔다면 결코 해결 할 수 없는 것이라 사실과 멀리서는 극복 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때 바른 지혜의 방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2. 피해자의 가해자와 가해자의 피해자 그리고 오해에 의한 피해자와 가해자 오해에 의한 가해자와 피해자 이모든 구조가 단순한 이분적 원리가 낳은 언어적 함정 또는 한계적 벽이라는 이치에 속한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야헐 언어가 추가 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와 가해자아면서 피해자 또한 피해자가 아니고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 그렇게 언어적 묘사가 추가 되고 아무 문제 없음에도 피해자와 가해자로 어떤 프래임 틀에 갇혀 버려 그런 것인줄 믿음으로 발생되는 결과물이 진짜 가해자와 피해자 노룻을 서로 교차하며 잔행 되어갈때 초기 설정된 프래임에 갇힌 피해자와 가해자 논리는 완벽하게 증명 되는 것처럼 사회적 정당성으로 가면속에서 쾌재를 부르짖게 됩니다. 우리가 그속에 속한 사례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허공은 모둔 것을 기록하여 과보로 나타내 보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리라. 감출 수 없는 것이 인과의 법칙이나니. 후일 만상이 증명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