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질병 연구를 위해, 보다 완벽한 표준 인간게놈 지도를 만드는 과업에 도전하고 있다.
유전학자들에게는 남들에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작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지 10여 년이 지났고, 여러 번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체 염기서열에 아직 수백 개의 갭(gap)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질병과 관련된 것도 많다. 이제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완벽한 인간유전체의 염기서열이 탄생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름하여 플래티넘 게놈(platinum genome)이다.
"그건 마치 유럽 지도에 노르웨이가 빠진 것과 같았다. 노르웨이의 피오르(fjords)가 유럽 지도에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누군가가 나서서 피오르의 모습을 지도에 담고 있다"라고 영국 케임브리지 인근에 있는 유럽 바이오인포매틱스 연구소(European Bioinformatics Institute)의 이완 버니 박사(컴퓨터생물학)는 말했다.
독특한 세포 덩어리(cellular growths)를 이용하여 작성된 플래티넘 게놈지도는 (본래의 인간게놈 지도에는 없었던) 새로운 DNA 시퀀스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시퀀스들이 자폐증이나 루게릭병(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등의 질병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00년, 빌 클린턴 전(前) 미국대통령은 유력한 과학자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인간 게놈지도의 초안을 만들라'고 독려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완료된 것으로 공식 선언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맹점이 하나 있었으니, "인간 표준(reference) 게놈지도의 완성률은 99%가 넘었지만, 방법론의 한계 때문에 100%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퀀싱 장비는 염색체를 한꺼번에 분석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DNA의 복사본들을 여러 개 만든 다음, 그것들을 짧은 조각으로 절단하여 분석한다. 조각별 분석이 끝난 다음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각 조각들의 중첩되는 부분을 인식하여, 마치 바늘로 꿰매듯 이어붙여 전체적인 염기서열을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게놈의 대부분에 대해 유효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유전체 속에 포함된 30억 개의 문자(A, C, T, G)는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체의 일부 지역에서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염색체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전자 주위에 길고 반복적인 시퀀스가 존재하는 경우 컴퓨터 알고리즘이 혼동을 일으킬 수 있고, 여러 사람들의 DNA가 섞여 있을 경우 혼란은 가중된다. 따라서 기존의 짜깁기 방식으로 작성한 게놈지도에는 갭(gap)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은 갭을 메우려면, 과학자들에게 한 가지 버전의 염색체만을 갖고 있는 인간세포를 공급하여 불일치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생식세포(정자와 난자)다. 정자와 난자는 염색체를 한 개씩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자와 난자는 분열하여 복제본을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유전학자들은 다른 세포, 즉 포상기태(hydatidiform moles)에 눈을 돌렸다. 포상기태는 정자가 유전물질을 상실한 난자와 수정될 때 생기는데, 정상적인 수정란이 그러하듯 게놈을 복제하고 분열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 생기는 세포 덩어리는 - 임신 3기에 제거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 모든 염색체가 동일하다는 특징이 있다(☞ 아래 첨부그림 참조).
포상기태에서 유래하는 세포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90년대로, 그 결과 CHM1이라는 세포주가 탄생했다. 11월 10일 『Nature』에 기고한 논문에서, 워싱턴 대학교의 에반 에이클러 교수(유전체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CHM1의 게놈 조각을 이용하여, 공식 인간게놈지도에서 누락된 50개의 '특별한 갭'을 메웠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그밖에도 많은 갭을 줄이는 데 성공했는데, 그중에는 루게릭병(ALS), 취약 X 증후군(Fragile X syndrome: 자폐증과 유사한 증상을 초래하는 신경퇴행성질환)과 관련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연구진이 발견한 '표준 인간게놈(reference human genome)에서 누락된 DNA 문자'의 수는 총 100만 개라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플래티넘 시퀀스는 단 하나의 게놈에서부터 조립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과학자들이 '이제 더 이상 갭은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위싱턴 대학교의 리처드 윌슨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번 달 초 『Genome Research』에 CHM1의 전유전체를 시퀀싱한 초안(draft sequence)을 발표했다(http://genome.cshlp.org/content/early/2014/11/03/gr.180893.114). 한편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있는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社(Pacific Biosciences)의 과학자들도 CHM1의 게놈을 대상으로 유사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끊기지 않은) 길다란 DNA를 이용하여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시퀀스보다는 갭이 적다고 한다.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월 게놈지도 초안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들의 방법론은 플래티넘 게놈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속도를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하나의 게놈을 대상으로 유전체지도를 작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예상보다 훨씬 더 높아 보인다"라고 멘로파크 소재 퍼스날리스社(Personalis)의 다이애나 처치 박사(유전체학)는 말했다. "인간 표준게놈은 지속적인 향상(constant improvement)을 거듭하고 있으며,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10~20년 내에 누군가가 나타나 대업(大業)을 이룰 것이다"라고 버니 박사는 말했다.
<첨부그림 설명>; 완벽한 인간게놈 지도를 작성하라
(갭이 없는) 완벽한 인간게놈 지도를 만들기 위해, 유전학자들은 포상기태(hydatidiform moles)에 눈을 돌이고 있다. 포상기태는 정자가 잘못된(핵을 잃은) 난자에 들어갈 때 생겨나며, 생존할 수 없다.
① 정상 임신: 각각 23개의 염색체를 지닌 정자와 난자가 만나 46개의 염색체를 형성하고, 인간 배아가 발생한다.
② 포상기태: 수정란이 오직 정자의 유전물질만을 보유하고 있다. 이 수정란은 46개의 염색체를 지니지만, 정상 수정란과는 달리 (한 쌍의 염색체를 이루는) 두 개의 염색체가 동일하여, 염기서열을 분석하기가 용이하다. |
※ 원문정보: Mark J. P. Chaisson, John Huddleston, Megan Y. Dennis, Peter H. Sudmant, Maika Malig, Fereydoun Hormozdiari, Francesca Antonacci, Urvashi Surti, Richard Sandstrom, Matthew Boitano, Jane M. Landolin, John A. Stamatoyannopoulos, Michael W. Hunkapiller, Jonas Korlach & Evan E. Eichler, "Resolving the complexity of the human genome using single-molecule sequencing", Nature (2014) doi:10.1038/nature13907(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aop/ncurrent/full/nature13907.html) ※ 출처: Nature 515, 323 (20 November 2014) http://www.nature.com/news/platinum-genome-takes-on-disease-1.163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