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탈영토화를 위한 탈주, 그 여정
김연화론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역사는 실제 있었던, 일어났던 사실 하나하나를 그대로 말한다. 반면에 문학은 실제로 일어났을 수 있는,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를 쓴다. 그것은 추측이나 상상, 아니면 사건의 자초지종을 보고 당연히 이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추리와 당위성에 의거한 서술을 말한다. 문체상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그럴듯하게,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것이 문학이다. 따라서 문학은 역사보다 훨씬 진지하며 철학적인 진리성에 가까운 것을 추구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그녀 수필의 문학성이란, 한 편의 작품을 문학적으로 만들어가는 구조적인, 형상화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연화 수필은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화 작업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내심에 투영된 감정이나 정서가 세련되게 문학적 방식에 의해 표현된 것이다. 이것이 문학으로서 수필이요, 예술로서 수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문학가와 철학자는 다르지 않다. 문학이 보다 깊은 철학일 때 우리는 세계인과 만난다. ‘가방’ 때문에 김연화는 짐연화라고 불린다. 그녀는 비움으로 더욱 견고해지는 자신의 단단한 삶을 수필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탈영토화를 위한 수필이 세련된 문학성의 향기로 해서 세포 속으로 스며들어 온다. 기행수필의 진수를 맛보면서 필마의 기운이 주는 뿌듯한 감동을 경험하기 바란다.
Ⅱ.
김연화 수필의 중요한 내적 특성으로 들 수 있는 것이 탈영토화를 위한 탈주성이다. 김연화 수필의 상당수 작품들이 여행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것으로, 심리 치료, 구원 구제의 문학이라는 특성에 기초하여 결말 구도가 탈주를 통해 문제 해결의 구도로 설정되는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만족, 자기 비하, 시기심, 열등감, 우울증, 열패감 같은 한두 가지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피해의식의 부정적인 경험은 잘못된 세계관을 형성하고, 파괴적이고 비관적인 고정관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김연화는 이런 경향성을 잘 파악하고, 안식의 문학, 영혼의 문학인 수필의 목적을 제대로 살려서 독자로 하여금 이런 부정적 사고로부터의 탈피를 도와주려고 한다. 내출혈의 독백이 그 증거고, 단서다. <나무 그늘>은 이런 화해 구도를 가진 대표적인 수필이다.
복어독 같은 독소가 뿜어져 나오는 나를 살려내야 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매일 밤 사채업자가 집 안을 들락날락하는 고단한 일상에서 아이들은 메말라 갔고 나는 야위어 비틀어지고 있었다. 아들은 풀리짖 않은 속병으로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하고, 강한 척 식구들은 위로하던 어린 딸은 깊이 숨어 번득이는 두려움으로 밤마다 눈을 감고 엄마품을 찾아다녔다. 난 노란 쓸개즙을 게워내며 십오 층 아파트 아래를 깊은 심연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곷없는 칠레가시 같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가시를 솎아야 했다. 큰 나무 그늘이 절실했다. 오로지 생활과 싸누느라 누르고 눌러만 왔던 스크레스가 일본행으로 불길같이 뻗쳤다. 처연히 떠나리라. 카드의 마지막 남은 액수를 뽑아내서 일본행 배표와 일본철도 일 주일 권을 끊었다. 주먹밥과 김 몇 장, 조금의 밑반찬과 보온병 하나, 수저 세 벌이 가방에 들어있었다.
-<나무 그늘> 중에서 -
위의 인용문은 발단부 첫 문단으로, 작가가 생활의 중압감을 드러낸 것이다. 결말은 치유로 마무리된다. 가족들이 사체업자가 들락날락하는 일상에서 힘들어 하자, 그녀는 이런 환경에서 탈주를 계획하고 일본으로 떠날 짐을 싼다. 김연화는 이런 수필의 치료적 특성을 잘 활용하여 떠남으로써 에세이테라피 효과를 구축하고 있다. 체험을 통한 자기 수양과 용서의 미학으로 반성적 성찰을 구축함으로써 수필을 영혼을 치료하는 데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수필을 통해서 작가는 삶의 온갖 억압 기제 속에서 틀어박혀 새로운 사고나 도전을 거부하며 가족들이 살아가게 할 순 없다는 것이다. 수필가는 인류의 교사여야 하고 영혼의 치료사인 까닭이다. 일단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삶을 건설적으로 변화시킬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한다. 희생자라는 사실만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피해의식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스스로를 부정적이고 인생의 실패자로 전락시킨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바람직하지 못한 일상은 탈주로 해결한다.
또한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한다. 짐을 싸는 탈주는 이런 '피해자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 여행이 큰 나무 그림자를 만드는 일의 시작이었다.’는 결말부 문장은 여행이 구원과 힐링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필을 선택한 이상, 더 이상 피해의식의 덫에 빠져 아웃사이더나 실패자로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즉 김연화 수필은 결말의 화해의 구도를 통해 독자에게 다가감으로써 자신의 고통과 심리불안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책임회피와 보상심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역할극을 하는 것이다. 삶의 문학이자, 인간학인 수필은 화해 해결 구도를 통해 독자들이 타인과 화해하고 세상과도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수필 <나무 그늘>에서 드러나는 김연화 작가의 생각이 그렇다.
사람마다 고통을 대하는 모습이 다를 터이다. 내 눈이 아프다며 아침마다 바위덩어리만한 눈곱을 밀어내고, 여기저기 머리 주름 사이로 검은 피가 몰려다니며 아픔을 호소하고, 시시로 때때로 심장이 고통스럽다며 비명을 질러대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반년이 지나자 몸이 아니고 정신이 못 참겠다며 정신줄을 들었다 놓았다 흔들어댄다. 겨울밤 전깃줄 사이로 흐르는 바람처럼 정신줄이 운다. 떠나야만 했다. 고통을 배가시키는 하이에나는 삼각형 못 마땅한 눈꼬리로 떠나는 나를 쏘아보고 있다.
- <북해도> 중에서 -
김연화 수필의 가장 강한 특징은 손맛의 유려함이다. 존재의 집인 언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그녀는 문학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구축한다. 그녀는 참신한 발상과 비유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아픔을 호소하는 몸의 신호를 예사로 표현하지 않는다. 수필 <북해도>는 구조면에서 처음, 중간, 그리고 끝이 잘 갖춰져 있어 명료성을 준다. 특히 주제의식의 상상화를 돕는 발단부 묘사는 매우 역동성이면서 시청각적 이미지의 보고다. 발단부의 전개예고 기능을 중시하는 작가의 인식은 수필 감상의 흥미를 더한다. 무엇보다도 김연화 수필을 읽는 매력은 날카로운 관찰을 통한 깊은 명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겨울밤 전깃줄 사이로 흐르는 바람처럼 정신줄이 운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소리를 회화화하여 현실의 삶에 투사시켜 내는 작가의 저력으로 그녀의 작품은 예술적인 향기를 풍긴다고 하겠다.
전깃줄에 대한 정신줄의 은유나 비유 등의 수사법에 의해 그 이미지가 다양하게 전달된다. 이 수사적 장치 형성은 독자로 하여금 연상과 상상의 세계로 빠지게 한다. 여기서 작자는 ‘바위덩이만한 눈곱을 밀어내고’ ‘검은 피가 몰려다니고’ ‘정신이 못 참겠다며 정신줄을 들었다 놓았다’ ‘고통을 배가시키는 하이에나는’ ‘삼각형 못 마땅한 눈꼬리로 떠나는 나를 쏘아 보고 있다’ 등의 비유를 통해서 관념을 감각화시킴으로써, 독자는 상상과 연상에 의해서 고통을 전깃줄의 울음소리로 구체화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물화된 보조관념을 통해 작자가 숨긴 이면적 상징물에 도달함으로써 작품을 미학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이 같은 물화에 의한 의미의 전달과 이해의 과정이 왜 필요할까? 가장 빠르고 정확한 표현은 직접적 설명일 것이다.
문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문은 이런 형태를 따른다. 그렇지만 김연화는 빠르고 정확한 의미 전달만이 아니라 그 전달의 효율성을 따진다. 얼마만큼 감동적이냐가 성패를 가르기에 그래서 수사적 장치를 최대한 활용한다. 감동이 없다면 문학이 아니다. 그런데 설명적인 글은 감흥을 주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아무런 흥미 유발이 안 되기 때문이다. 독자에게도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고통을 배가시키는 하이에나는 삼각형 못 마땅한 눈꼬리로 떠나는 나를 쏘아보고 있다.’는 묘사로 그녀는작품을 음미하며, 문장을 소화하며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도록 독자를 돕는다.
부지런하지도 않으면서 늘 바깥세상이 궁금하다. 익숙한 길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한다. 강에는 물안개가 피었는지, 골골이 안개가 꿈처럼 흘러 다니는지, 이 새벽을 못 참아내고 그예 벌떡 일어선다. 파라호에는 물안개 대신 일엽편주 두둥실, 물에 떨어진 두 개의 해가 있다. 삼차산업의 장이 열리고, 맞은 산 넘어 사악한 음모의 소리가 가슴을 후비면서, 오소소 소름 돋는 아카시아향이 불안한 마음을 부추긴다. 털어내고 싶다. 그만 혼란한 정신을 간추리고 싶다.
- <사람을 만나다> 중에서 -
김연화 수필이 주는 맛이 어찌 손맛뿐이겠는가. 향기 또한 가득하다. ‘익숙한 길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하는 사람’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수필의 제재를 통해 그녀가 여행 매니아임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는 ‘털어내고 싶다. 그만 혼란한 정신을 간추리고 싶다.’ 라는 표현에서 일상을 바로 세우고 싶다는 그녀의 염원과 도전정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겠다. ‘파라호에는 물안개 대신 일엽편주 두둥실, 물에 떨어진 두 개의 해가 있다.’는 진술을 통해 독자는 스스로의 상상력에 의해서 작가의 내면세계의 깊이를 그려 나갈 수 있다. 여기서 작가는 언어적 진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유를 풀어내면서 문맥 속의 본래 의미를 발견해 나갈 때의 감동은 작자가 직접 설명으로 전해 준 경우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즉 <사람을 만나다>에서 사실적 묘사를 따라가다가 그 뒤에 숨겨진 작가가 안고 있는 삶의 무게를 독자 자신이 상상력으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마치 땅 속에서 보석을 발견했을 경우와 같다. 사실 이 작품의 두 번째 단락에서 ‘붕어섬에는 물이 들려주는 바람소리가 있다. 왜가리가 개구리 잡아먹는 소리, 개구리 죽어가는 소리, 미루나무에 아침이 걸리는 소리, 등등 여러 가지 소리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표현들을 통해 작가의 내면에 들끓는 무거운 생각들이 작가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과 감동은 매우 크다. 이 이상 감동적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Ⅲ.
김연화는 상상력을 통해 미의식을 추구하고, 구성적 메타포의 존재론적 의미화를 통해, 창조적 생성의 탈주선을 그리며 ‘선비되기’를 희망하는 열린 의식의 작가인 것이다. 수필을 씀으로써 자기를 위무하고, 나아가 수필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구원하려는 구도적인 자세로 인해 그녀의 수필은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다. 문학보다 깊은 철학적 사유와 창조적 사상 그리고 선비되기의 정신 속에 교육의 참된 의미와 인생의 가치를 조망하고 있다는 것을 김연화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직 좋은 수필 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초보 수필가들에게 또는 어떻게 하면 감동이 생기는지 알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김연화의 수필집을 길라잡이로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