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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매우 값진 흔적 마5:10-12, 갈6:11-18
클로비스 채플 목사의 ‘두 척의 외륜선’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배가 멤피스를 출발하여 미시시피 강을 따라 뉴올리언스로 향했습니다. 빨리 가는 배가 느린 배를 보며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느린 배가 약이 올라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두 배는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점차 한 배가 뒤로 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배는 연료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목적지까지 가기에는 충분했지만 경주를 하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배는 화물을 꺼내 물에 던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 배는 경주에는 승리했지만 수송해야 할 화물을 다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1등을 하기 위하여 남 보다 앞서기 위해서 더 소중한 화물을 버리고 있는 것처럼 더 소중한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버리지는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화물선의 우선순위는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화물을 운반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찮은 것을 얻으려고 경쟁하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한다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천성을 향하여 가는 성도들은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간직한 믿음, 주께서 맡기신 사명, 하늘 소망, 면류관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매우 값진 흔적을 지니고 삽니다. 사순절 주간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매우 값진 흔적”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가 지녀야할 매우 값진 흔적은,
1.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흔적입니다.
서신서 본문 갈6:17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말합니다. 여기 ‘흔적’은 ‘스티그마’라는 용어로 낙인을 말합니다. 소나 짐승이 나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해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했습니다. 짐승뿐 아니라 옛적에는 사람에게도 낙인을 찍었습니다. 죄수들, 전쟁포로들, 노예들, 탈영자들에게 낙인을 찍었던 것입니다. 이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 신분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이 낙인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말을 사용하여 자기 몸에 예수의 낙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습니다. 그 십자가 사랑 때문에 죄인의 괴수인 자신이 용서받고 구원받은 하늘 백성이 된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자신의 정과 욕심,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은 이후로 세상의 야망이나, 자랑이나, 영광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몸에 지닌 자랑스러운 흔적은 할례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 받은 것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표식으로 알고 최고의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부정한 자요, 멸망 받을 자라고 여겨,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게 된 바울은 할례를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본문 15절에서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든지, 안 받든지 그것은 구원받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곧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일로 인해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할례가 자랑이었습니다. 몸에 문신을 하면 일반 사람들은 부끄럽게 생각 하지만 조폭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주님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기며 새로운 사람으로 삽니다. 청송 감호소와 서울 구치소에서 교도관 생활을 오래 하셨던 박효진 장로의 간증에서 그 분은 생일이 세 번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생일은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육의 생일이 있고, 또 한 번은 청송 감호소에 있을 때 “너의 몸이 거룩한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을 읽고 지금까지 신앙과 삶이 따로따로였던 이중적인 신앙을 바로 잡은 날이고, 세 번째는 서울 교도관으로 있으면서 윤도영이라는 사형수가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죽음조차 의연하게 맞이하는 것을 보고 받은 충격으로 순교적 결단을 한 날을 또 다른 생일로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흔적을 가지고 사는 성도가 됩시다.
2.예수님 십자가 발자취 따르다 생긴 고난의 흔적입니다.
복음서 본문 막5: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수훈 중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팔복의 말씀을 보면 마치 계단을 오르듯 더 높은 단계의 수준으로 올라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의 복’은 맨 위에 있는 정상의 복입니다. 주님을 닮은 장성한 신앙의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복입니다. 세상에 핍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성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성도, 긍휼히 여기며 사는 성도, 화평을 도모하며 사는 성도들도 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나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선택하는 일은 머뭇거려 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들은 기뻐하면서 기꺼이 고난의 길을 갑니다. 당장은 힘들고 어렵지만 큰 상급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본문 11-12절에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서신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합니다. 당시 바울은 안팎에서 협공을 당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이름으로 공격을 받았고, 같은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짜 사도라는 비난 속에 온갖 모함과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뇌와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것입니다. ‘나를 괴롭게 말라 왜냐하면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가진 흔적들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목록들 가운데 고후 11:23-27에 보면 “저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했습니다. 그는 이런 고난을 받으면서 생긴 상처를 예수님의 흔적이라고 표현하면서 훈장처럼 자랑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 3:14 이하에서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했고, 벧전 4:12,13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죄악 된 세상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살려고 하면 반듯이 악한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창세기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의 제사는 열납이 안 되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똑같이 열납 되지 안았다면 가인의 미움을 받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요일서 3:12에서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했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미움과 박해를 받으신 것도 주님의 빛으로 인해 자기들의 어두운 죄악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까닭도 성도의 의로움 앞에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장성한 믿음 가지고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 따르다 생긴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삽시다.
3.예수님을 닮은 아름다운 모습의 흔적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거룩한 스티그마는 후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 충만을 받은 후 주와 복음을 위해 기쁨으로 고난을 받으며,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 닮은 모습으로 순교의 길을 갔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닮았다는 것은 예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길을 가는 자들은 영광스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주님의 동역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 속에는 이미 하늘나라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느 스코틀랜드 사람에게 왕이 하늘나라에 가기를 기대하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아닙니다. 저는 이미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고 사는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에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사람이 된 것을 확신하고 살아갑니다. 맥스 비어봄의 소설 『행복한 위선자』는 비양심적인 악인 로드 조지 헬의 이야기입니다. 야비한 마음을 가진 그의 얼굴만 보아도 사람들이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아름답고 청순한 미어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얼굴이 저렇게 무서운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없어.”하며 거절하였습니다. 헬은 그녀를 꼭 아내로 삼고 싶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게 보이는 가면을 쓰고 구애에 성공하여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위선을 감추고 참을성 있고 너그럽게 보이려고 주의하였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끊임없이 나쁜 성질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비밀을 알고 있던 옛 친구가 찾아와서 아내가 보는 앞에서 헬의 가면을 무자비하게 벗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가면을 벗겼을 때 거룩한 얼굴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매일 그렇게 실천하며 살았더니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서신서를 기록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주님 닮은 자로 살기를 힘썼습니다. 자기의 옛사람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기며 말씀에 순종하여 오직 복음의 신실한 일꾼이 되기를 힘썼습니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간다.’고 말하며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3:17)고 권면합니다.
마음에 주님을 사랑하며 닮기를 소원하면 나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사랑하면 바뀝니다. 모습도 바뀌고 성품도 바뀌고 생각도 바뀌고, 태도도 바뀝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면 얼굴에,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집니다. 주기도문에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모든 사람들이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우리 가정에, 우리 모임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며 삽시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비극과 불행은 고통스러운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난 자체가 귀한 일은 아니지만, 고난을 통하여 만나는 주님의 은혜는 최고의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고난 자체가 자랑은 아니지만, 고난을 통하여 받은 은혜는, 그리스도의 흔적이며 영광입니다. 아무리 부족함 없는 환경이라도 은혜 없는 삶은 만족함이 없지만, 은혜 있는 광야는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며 하루하루가 감사요, 축제의 날입니다. 좁은 길을 걸으며 항상 기뻐하는 것은 주님의 성령이 함께 함께 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닮은 아름다운 모습의 흔적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사순절 주간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매우 값진 흔적”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가 지녀야할 매우 값진 흔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흔적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발자취 따르다 생긴 고난의 흔적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아름다운 모습의 흔적입니다. 아멘.
<2023. 03. 08.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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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