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롯과 뻬노이
필리핀 노점에서 수북이 알을 쌓아놓고 팔거나, 주택가를 돌며 “발롯, 발롯”을 외치며 팔러 다니는 모습을
간혹 봅니다. 모두 오리 곤달걀인 발롯(Balot)을 판매하는 겁니다. 그런데 곤달걀은 뭘까? 곤달걀을 알려면
우선 무정란과 유정란에 대해 알아야 해요. 무정란이란 암탉이 수탉 없이 낳은 계란이며, 아무리 정성을 다해
도 병아리가 부화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늘 먹는 계란이 바로 무정란이죠. 반면 유정란은 약 23일 후에는 병
아리로 부화됩니다. 암탉과 수탉이 동침한 산물이 바로 유정란입니다. 한국에서는 유정란을 병아리로 부화시키
다 문제가 생긴 알을 골라내 곤달걀이란 이름으로 일부 식용하는데, 이런 이유로 곤달걀은 병아리가 되다가 만
알을 뜻합니다. 재래시장에서 아저씨들이 막걸리와 함께..... 그런데 이마져도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따끈한 발롯에 소금과 식초를 뿌려서 먹습니다. 익숙해지면 맛도 상당히 좋답니다. 사진에 싼미겔이 2번 등장
하는 실수를.........
필리핀의 발롯은 곤달걀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리 알은 달걀보다 크고 표면이 매끄럽고 파르스름한 색깔이
납니다. 이 오리 알을 약 15일간 부화시키다 물에 삶으면 발롯이 됩니다. 문제가 생긴 달걀을 일부 먹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오리 알로 발롯을 만들기 때문에 값이 비쌉니다. 한국은 오리 알을 고혈압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필리핀은 정력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초저녁에 발롯 몇 개와 싼미겔 너덧 병을
들고 침실에 들면 아들을 낳는다는 농담을 자주합니다. 여기서도 싼미겔(산미겔)이 등장하네요. 이런 이유
로 길거리 등에서는 밤이 되어도 발롯을 파는 겁니다.

한밤중에 먹는 발롯은 정력제.
처음 발롯을 드실려면 비위가 좀 있으셔야 할 겁니다. 부화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오리의 부리와
깃털 등 대부분의 몸체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기 힘든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오리 1마리를 먹는 것이라며 적극 권하기도 합니다. 진저리를 치고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면서요.
발롯을 먹는데도 나름 요령이 있습니다. 우선 따뜻한 것을 골라야 해요. 아무래도 식으면 냄새가 더하고
맛도 떨어지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발롯은 항상 따뜻하거나 뜨겁게 해서 팝니다. 알의 숨구멍이 있는
뭉뚝한 부분을 이빨을 이용해 조그만 구멍을 내고 내부에 있는 국물을 먼저 마신 다음 윗부분의 껍질을 벗
겨내고 왕소금을 뿌리거나, 비위가 약한 경우에는 노점에 준비된 양념식초(Sukang Anghang)을 약간 뿌려서
먹으면 됩니다. 사실 소금과 식초를 함께 뿌려 먹어야 더 맛있어요. 국물은 구수하면서도 약간 퀴퀴하고
누린내도 납니다. 꼭 발롯을 먹어보고 싶다면 알을 절대로 쳐다보지 마세요. 알의 상태를 보고나면 10중
팔구는 못 드실거예요. 소금과 식초를 듬뿍 뿌리고 한입에 넣고 그냥 씹으시기만 하면, 바로 발롯을 1개,
필리핀 사람들 말에 따르면 오리 1마리를 드신겁니다. 씹다보면 의외로 고소하고 흰자 부분의 오돌오돌한
씹는 맛까지 느끼게 되실겁니다. 입에 모인 털은 퇙 ~ 하고 뱃어내세요 ! 헛구역질을 하시거나 헛구역질
+ 웩을 하시는 한국분도 뵈었죠. 알아서들 드셔 보세요 ~~~

엄연히 많은 필리핀 사람들과 일부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멀쩡한 음식인 발롯을 먹지 못할 음식 또는 먹을 수 없는 음식, 먹으
면 큰 일 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시면 곤란요............
여담입니다만 세계인이 선정한 혐오식품 10위 안에 한국음식이 2가지나 포함되어 있다는 거 아세요. 뭘까요?
영양탕은 금방 연상하실텐데, 혹시 혐오식품 1위는? 산낙지 (살아서 꿈툴대는 낙지)가 세계인의 혐오식품 1위랍니다.
이해가 되세요? 식생활도 역사와 함께하는 해당국과 국민들의 문화일진데, 자신의 잣대로 순위를 정하는 모습이 왠지 비호감
을 증폭시킵니다.

발롯을 먹을 수 없다고 혹여 자책하시는건 아니죠? 비위가 약해서 발롯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뻬노이
(Penoy)가 만들어 졌습니다. 오리 알을 약간만 부화시켰거나 그냥 알을 삶아서 파는 것이 바로 뻬노이 입니다.
당연히 먹는데 전혀 부담이 없고요, 발롯과 구별하기 위해 뻬노이 알에다 선을 그어 놓았습니다. 사진처럼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노점에서 뻬노이를 구하기가 쉽질 않았는데, 현재는 발롯과 뻬노이를 대등하게 파
는 노점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필리핀 사람들도 세대가 바뀌면서 나름 혐오스러운 발롯 보다는 먹기에 부담
없는 뻬노이를 선호하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는 오리 알이 비싸고 귀한 편이니 필리핀에서
발롯과 뻬노이를 맘껏 즐겨보세요. 따뜻한 발롯은 1개에 11~12페소, 뻬노이는 발롯보다 1페소가 쌉니다.
재미있으셨어요? 글/사진 싼미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