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슬픔으로 굴곡진 나오미와 룻의 삶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룻기 2장은 룻이 나오미의 친족인 보아스를 만남으로 전개된다. 시어머니와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에 대한 소문은 아마 베들레헴 마을에 다 알려졌던 것 같다. 이방 여인이었지만 신실하고 품성이 고운 룻에 대한 칭찬이 사람들 사이에 자자했을 것이다.
어느 날 룻은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추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삭을 주우러 나갔다. 고대 사회에서는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추수를 마치면 떨어진 이삭을 주어서 끼니를 대신하는 관습이 있었다. 룻은 양식이 떨어지자 시어머니를 공양하기 위해 자신이 발 벗고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고 추수 장으로 나갔다. 이런 경우 종종 여인들은 거친 종들 사이에서 이삭을 줍다가 욕을 먹거나 매우 곤란한 처지를 만나기도 했다. 이방 여인인 룻은 아직 젊고 여린 여인이었으므로 사람들의 눈에 금방 들어왔다. 그때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자신의 추수하는 곳에 나왔다가 룻을 보게 된 것이다.
죽은 남편을 고국에 묻고 시어머니를 따라서 타국으로 온 가난한 이방 여인 룻과 베들레헴의 귀족 보아스는 어쩌면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두 사람 같아 보이지만 보아스와 룻의 관계는 마치 천군의 지휘관이신 예수님과 죄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의 관계와 비슷하다.
(룻 2: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룻 2: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보아스가 룻에게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또 다른 데서도 있었다. 그것은 그의 출신과도 연관이 있다. 그의 어머니도 이방 여인이었는데 바로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 살몬의 아내가 된 라합은 보아스를 나았고 보아스는 이방인 출신 어머니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터라 이방인이었던 룻이 더 측은하고 마음이 갔을 것이다.
(룻 2: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룻 2: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 2: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보아스는 점심을 먹을 때도 룻을 불러서 일꾼들 사이에 앉아서 떡을 초에 찍어 먹도록 허락했으며 일꾼들에게는 룻이 곡식단 사이에서 줍도록 허락하고 심지어 곡식을 거둘 때 조금씩 곡식을 뽑아서 버리도록 해서 룻이 이삭을 많이 줍도록 도우라는 은밀한 명령까지 내렸다. 그렇다 예수님이 기구한 우리를 위해 눈치채지 못하게 나타내는 사랑이 얼마나 많은가? 룻은 가끔 떨어진 곡식 뭉텅이를 만나면 이게 무슨 횡재냐고 속으로 속삭였겠지만 알고 보면 이것은 일부러 제공된 은혜였으며 당사자도 모르게 베풀어진 사랑이었다. 그날 제법 많은 이삭을 주워온 룻을 보고 나오미는 누구의 밭에서 이삭을 주웠는지 물었고 룻은 그날의 일을 소상히 시어머니에게 고했다.
(룻 2: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여기 “기업을 무를 자”란 단어 “גָּאַל(가알)”은 “구속하다 속량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로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표상하기에 매우 적절한 단어다. 이렇게 룻기에는 예수님의 표상으로 다윗의 조부요 예수님의 조상인 보아스(뜻, 민첩한), 곧 사랑에는 재빠르고 민첩하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 예수님이 그려져 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 오늘도 새 생명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룻기를 묵상하면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삶은 고단하고 전망은 여전히 어두울지라도 우리 곁에 가까이와 계시는 주님 우리도 눈치채지 못하게 인생의 횡재를 준비하시는 주님 그 주님을 오늘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여전히 우리의 삶이 어두울지라도 우리의 기업 무를 자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하루를 살게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