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왜 사느냐? 먹기 위해서 산다. 먹지 않으면 당장에 죽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폼 잡기 위해 산다. 폼 잡는 다는 것? 그것도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본능적 생존 방식이 아닐까? 남보다 우월함을 과시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하고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려는 인간의 본능적 생존 욕구.
마틴 스콜세지는 이 영화 <좋은 친구들>에서 1970년대 미국 조직폭력배들의 비열하고 더러운 행태들을 통해 인간의 생존 본능을 지독할 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영화 전편을 통해 수시로 등장하는 음식을 요리하고, 그 음식들을 먹고, 그 음식들에 탐닉하는 장면들과 죽이고 뺏고 패고 협박하고 마약 거래하는 장면들이 마치 비빔밥 재료들이 이리저리 섞여 음식이 만들어져 가듯 교묘하게 버무려져 가며 영화의 줄거리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이 역시 스콜세지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의 표현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듯한 내레이션과 헨리(레이 리요타)와 헨리 부인의 시선을 통해 좋은 친구들- 두목 폴리와 냉정하면서도 난폭한 깡패 지미(로버트 드니로), 그리고 쉴 새 없이 떠들고 종알대는 사이코 토미(조 페시)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 보인다.
그들은 모두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아주 나약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들은 약하기 때문에 모여 패밀리를 만들고 저희들끼리 똘똘 뭉쳐 사회에 대응해 나간다. 얕잡혀 보이는 것이 싫은 토미는 누구라도 자신을 깔보는 것 같은 눈치만 보이면 미친 듯이 앞 뒤 안 가리고 살인을 벌인다. 아주 냉정하고 강할 것 같은 지미도 예외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크게 턴 건수가 들통날까봐 스스로 좋은 친구라 부르던 동료들을 하나하나 죽여 나간다. 자신에게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두목 폴리조차 자신의 안전을 위해 헨리와 선을 긋자 헨리는 결국 자신의 생명 보전을 위해 자신의 좋은 친구들을 밀고하고 증인 프로그램을 요청한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초췌해져가는 헨리의 몰골이 그 답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3.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