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景福34 제68차 文化遺産踏査(5); 國立古宮博物館 常設展示(4)
(139) 王妃와 宮中女性
(140) 朝鮮時代 女性들의 化粧文化
(141) 머리손질도구 보관함[朱漆梳函]-영친왕비 분합[英親王妃 粉盒]-영친왕비 머릿기름 합
[英親王妃 靑華白瓷 辰砂 唐草粉盒]-영친왕비 빗[英親王妃 櫛](왼쪽부터 시계방향)
(*梳: 얼레빗 소 *櫛: 빗 즐 *盒: 합 합
=머리손질도구 보관함[朱漆梳函] -20세기 초
머리손질에 필요한 빗, 빗솔, 빗치개, 뒤꽂이 등을 넣어두는 化粧用具인 빗집으로 鏡臺와
함께 머리맡에 두고 사용하였다.
=영친왕비 분합[英親王妃 粉盒] – 국가민속문화재 제265호 -20세기 초
분과 분첩을 보관하는 唐草紋 塵沙 靑華白磁 盒으로 英親王妃가 사용하던 것이다.
=영친왕비 머릿기름 합[英親王妃 靑華白瓷 辰砂 唐草粉盒] – 국가민속문화재 제265호
-20세기 초
머리를 치장하기 위하여 머릿기름을 담아두었던 합이다. 靑華白磁 粉盒과 함께 경대에
보관되어 있었다.
=영친왕비 빗[英親王妃 櫛] -20세기 초
얼레빗은 빗살이 굵은 半圓形의 큰 빗으로 반달모양으로 생겨 月梳라고도 한다.
크기는 다양하며 빗살도 성긴 것과 촘촘한 것이 있다. (*梳: 얼레빗 소)
(142) 드림댕기[唐只](앞)-영친왕비 첩지머리[英親王妃 疊紙] (*只: 다만 지 *疊: 거듭 첩)
=드림댕기[唐只] -20세기 초
禮裝用의하나로 봉황장식 비녀를 꽂은 후 鳳簪의 좌우에 둘러 앞쪽으로 늘어뜨려 사용한다.
(*簪: 비녀 잠)
도투락댕기(큰 댕기)와 짝을 이루어 사용하며, 자주색 천에 金箔으로 장식하고 양 끝에는
眞珠 등으로 장식했다.
=영친왕비 첩지머리[英親王妃 疊紙] -국가민속문화재 제265호 -20세기 초
英親王碑가 사용하던 첩지머리로, 첩지는 조선시대 王妃를 비롯한 內∙外命婦가 머리를
치장하던 裝身具의 하나이다.
宮中에서는 첩지를 통해 왕실 여성의 신분을 구별했다.
*內命婦: 조선시대 궁중에서 봉직한 嬪·貴人·昭儀·淑儀 등을 통틀어 일컫는 女官의 명칭.
*外命婦: 조선시대에 여성에게 사용한 封爵으로 왕족이나 문관∙무관의 어머니와 아내에게
자식과 남편의 품계에 따라 부여되었다.
*영친왕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英親王 一家 服飾 및 裝身具類)
333점(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은 2009.12.14 국가민속문화재 제265호로 지정되었다.
宮中 女性의 머리모양새
조선시대 王族 女人과 일반 宮女들의 머리모양에는 차이를 두었다.
평상시에는 王妃나 內人 모두 가르마 가운데 쪽을 진 첩지머리를 하고, 身分에 따라
裝飾을 다르게 했다.
王妃를 비롯하여 王子妃, 王孫妃는 金∙銀 장식의 龍∙鳳凰 疊紙를 착용했다.
특별한 儀式이 있을 경우에는 첩지 대신 花冠이나 족두리로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143) 자수 붓주머니[刺繡 筆囊]-자수 붓주머니[刺繡 筆囊]-자수수저집[刺繡 飯匙囊]
=자수 붓주머니[刺繡 筆囊] (*繡: 수놓을 수 *囊: 주머니 낭)
玉色 紋緞 바탕에 안감은 홍색 문단을 사용해 만든 붓을 넣는 주머니로, 王子가
사용하던 것이다. (*緞: 비단 단)
앞면에 수놓은 ‘壽八千春秋’는 長壽에 대한 念願을 나타낸다.
=자수 붓주머니[刺繡 筆囊]
紅色 花文緞으로 만든 붓부머니[筆囊]로, 주머니 앞면에는 十長生紋과 ‘卍’字를,
뒷면에는 ‘壽如南山’과 ‘福如北海’ 글자를 수놓았다.
=자수수저집[刺繡 飯匙囊] (*匙: 숟가락 시)
紅色 無文緞의 수저집으로 十長生紋을 수놓아 壽福, 富貴, 康寧의 소망을 표현했다.
뒷면 왼쪽에는 ‘百年壽外更康寧’을, 오른쪽에는 ‘萬事間中兼富貴’의吉祥語文을 수놓았다.
(144) 영친왕비 자수 귀주머니[英親王妃 刺繡角囊] –국가민속문화재 제265호 -20세기 초
英親王妃가 사용하던 양쪽 귀가 角이 진 형태의 귀주머니이다.
귀주머니 상단에는 ‘壽’와 ‘福’字를 수놓고, 뒷면에는 蓮花紋 위에 ‘福’자, 아래 부분에는
‘亞’자를 수놓았다.
*英親王妃; 李方子 女史
日本 國王 메이지[明治]의 조카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梨本宮守正] 親王의 딸로
태어나, 히로히토[裕仁] 王世子의 妃로 간택되어 王妃修業을 받던 중 1916년 일본에
볼모로 잡혀와 日本 陸軍士官生徒 된 英親王(懿愍皇太子)과 정략적 약혼을 하고,
1920년 皇太子妃가 되었다. (*懿: 아름다울 의 *愍: 근심할 민)
1921년 아들 晉을 낳았으나 사망하고, 1931년 아들 玖를 얻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으나,
1945년 日本의 敗戰으로 日本王族에서 제외되어 거처와 재산을 몰수당하고, 고생 끝에
1963년 意識不明 된 病席의 英親王과 함께 귀국하였다. (*玖: 옥돌 구)
1962년 韓國國籍 취득 후 英親王의 遺志를 받들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身體障碍者
再活協會 副會長 등을 지내고 精神薄弱兒 교육·肢體不自由者들의 生計維持를 위한
기술교육 등 育英事業에 정성을 쏟으면서, ‘내 祖國도, 내가 묻힐 곳도 韓國"’이라는
신념으로 봉사하였다.
1989년 4월 昌德宮 樂善齋에서 悲運의 일생을 마치고, 경기 南楊州市 金谷洞
洪陵과 裕陵(사적 207호) 인근의 英親王墓所에 合葬되었다.
저서로 <지나온 세월>, <세계는 하나>, <세월이여 王朝여>를 남겼으며, 서울특별시문화상,
赤十字博愛章 金章, 5∙16 민족상, 국민훈장 모란장, 小波賞 등을 받았다.
(145) 밀화 쌍가락지[蜜花 雙指環]-자마노 쌍가락지[紫瑪瑙 雙指環]-호박 쌍가락지
[琥珀 雙指環] -20세기 초 (복제) (*瑪: 차돌 마 *瑙: 마노 노 *琥: 호박 호 *珀: 호박 박)
(146) 영친왕비 진주 두루주머니[英親王碑 珍珠 狹囊](왼쪽)-자수 향주머니[刺繡 香囊]
-20세기 초 (복제)
=영친왕비 진주 두루주머니[英親王碑 珍珠 狹囊] –국가민속문화재 제265호 -20세기 초
英親王碑의 두루주머니로 주머니 속에는 高級 香이 들어 있다.
=자수 향주머니[刺繡 香囊]
純宗이 찼던 夾囊과 비슷한 점으로 보아 英親王의 것으로 추정한다.
(147) 영친왕비 대삼작노리개[英親王碑 大三作 佩飾] -1922년경 (복제)
산호, 쌍나비, 佛手를 主題로 해서 만든 노리개 3점을 하나로 꿰어
옷 위에 착용하는 노리개이다. 가장 크고 화려한 大三作 노리개는
宮中에서 大禮服에 착용하였다. (*佩: 찰 패)
노리개
치마허리나 저고리 고름에 차는 裝身具이다. 王室을 비롯한 上流層과 平民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되던 장신구로 신분과 지위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가 달랐다.
궁중에서는 계절에 따라 노리개의 종류를 다르게 했는데, 봄∙여름∙가을에는 구슬과
玉 노리개를 차고 겨울에는 瑪瑙와 향노리개를 찼다. (*瑪: 차돌 마 *瑙: 마노 노)
(148) 宮殿 寢殿 內部空間
조선시대 궁궐의 王과 王妃의 寢殿은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고,
그 주변으로 퇴가 둘러싸고 있다.
내부의 房들은 장지문으로 연결해 공간의 면적과 형태를 可變的으로 사용했다.
(149) 西 온돌방; 반짇고리(왼쪽부터)-수방석[繡方席]-쇠뿔장식밀대와 실패[華角 線軸]-
영친왕비 붉은 칠 바느질함[英親王碑 朱漆函]-촛대[燭臺]-나전문갑[螺鈿文匣](뒤)
(150) 東 온돌방; 붉은 칠 서안[朱漆 書案]-영친왕비 경대[英親王碑 朱漆三段鏡臺]
(151) 수라상[水剌床]
(152) 宮中에서 사용한 여러 가지 그릇
(153) 宮中에서 사용한 여러 가지 그릇
(154) ‘黃’자를 새긴 백자사발[白磁陰刻 ‘黃’銘 鉢]-백자 주전자[白磁注子]
=‘黃’자를 새긴 백자사발[白磁陰刻 ‘黃’銘 鉢]
경기도 廣州郡 일대에 설치된 분원에서 제작된 ‘黃’자를 새긴 白磁사발이다.
=백자 주전자[白磁注子]
별도의 무늬가 없이 푸른 빛이 도는 白磁釉藥을 全面에 칠해서 구운 순백자주전자이다.
=뒷줄; 백자청화복자무늬접시[白瓷靑華 福字文 楪匙]-백자청화복자무늬접시
[白瓷靑華 福字文 ‘上室’銘 楪匙] (*楪: 마루 접 *匙: 숟가락 시)
*分院; 조선시대 京畿道 廣州郡일대에 설치된 司饔院의 官營沙器製造場. (*饔: 아침밥 옹)
본래 官御用 도자기는 전국에 있는 瓷器所와 陶器所에서 만들어 歲貢∙別貢으로 올라오는
土産貢物로 충당되었으나, 15세기 후반부터는 上品瓷器의 토산공물 산지인 京畿道
廣州郡일대에 官營沙器製造場을 세워 司饔院 밑에 두고 奉事(從8品)가 관할하며 官과
宮中에서 필요로 하는 도자기를 직접 충당하게 하였다.
司饔院은 임금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과 大闕 안에서의 음식제공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쓰는 御用 및 宮中用 그릇을 만드는 일도 관할하였다.
본래 分院은 사기를 만드는 과정에 필요한 연료확보를 위해 나무가 많이 자란 장소를
옮겨 다니기 위해 경기도 廣州 일대 6개면에 조선 말까지 분원에 딸린 분원시장은
退村面 ·實村面 ·草月面 · 都尺面 · 慶安面 ·五浦面 등이었다.
18세기 전반에는 교통이 편리한 慶安川(牛川) 강변인 지금의 광주시 南終面 分院里에
分院을 고정시켜두고 나무를 옮겨 쓰게 되었다.
(155) 백자청화 용무늬병[白磁靑華 雲龍文甁](왼쪽)-백자청화 박쥐구름무늬 침 그릇
[白磁靑華 蝙蝠紋 唾壺] (*蝙: 박쥐 편 *蝠: 박쥐 복 *唾: 침 타)
=백자청화 용무늬병[白磁靑華 雲龍文甁] -19세기 후반
구름 속을 노니는 龍을 그린 병이다. 굽바닥에 靑華로 ‘雲峴’이라고 쓰여있어 雲峴宮에서
사용하던 것을 알 수 있다.
=백자청화 박쥐구름무늬 침 그릇[白磁靑華 蝙蝠紋 唾壺] -19세기 말
=뒷줄; 백자청화수복무늬사발[白瓷靑華壽福文鉢]-백자청화 모란무늬항아리
[白瓷靑華 牡丹文壺]
(156) 은제 연잎모양 식기[銀製蓮葉食器] -20세기 초
(157) 은제 바리[銀製鉢] -20세기 초 (*鉢: 바리때 발)
(158) 은제도금 주전자[銀製鍍金 酒煎子] -20세기 초 (*煎: 달일 전)
王室잔치나 王의 御眞을 모신 璿源殿에서 儀禮를 올릴 때 사용하던
주전자이다.
앞면에는 태양 속에 사는 三足烏와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를 새겨
도금하고, 바깥 바닥에 ‘十室’ 銘文이 있다. (*璿: 구슬 선)
(159) 법랑향로[琺瑯 香爐] -淸 나라 -20세기 초
(*琺: 법랑 법 *瑯: 옥돌 랄)
(160) 법랑향로[琺瑯 香爐] -淸나라 -20세기 초
(161) 법랑꽃병[琺瑯 花甁] -淸나라 -20세기
(162) 주칠합[朱漆盒] -朝鮮 (*漆: 옻 칠 *盒: 합 합)
왕실에서 사용하던 목재 주칠합으로 주칠을 하고 뚜껑 상단에는 金色 龍으로 장식했다.
朱漆은 일반 私家에서는 사용을 규제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으며, 주로 王室에서
사용하였다.
(163) 칠기합[漆器盒](왼쪽)-주칠 원형소반[朱漆 圓形小盤]
=칠기합[漆器盒]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칠기합으로 뚜껑 위에는 王을 상징하는 龍과 鳳凰 무늬를, 옆면에는
꽃무늬와 나비∙ ‘囍’字文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囍: 쌍희 희)
=주칠 원형소반[朱漆 圓形小盤] -조선 –高宗 18년(1881)
전체적으로 黑漆을 하고 床板의 중앙은 朱漆을 했다.
상판의 뒷면에는 ‘신사큰젼고간대듕소십오듁(‘사’와 ‘대’는 ‘아래 아’로 표기)’이라고
새겨있어 ‘辛巳年’인 1881년 大殿곳간으로 납품된 大∙中∙小 소반 150벌 중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164) 宮闕 내 生活道具, 宮中廚房 (*廚: 부엌 주)
(165) 궁중주방[宮中廚房]
=앞줄(왼쪽부터); 주칠나전호족반[朱漆螺鈿虎足盤]-주칠쌍룡문원반[朱漆雙龍文圓盤]-
원반[圓盤] (*螺: 소라 나 *鈿: 비년 전)
=가운데 줄; 소반[小盤]-주칠용각육족소반[朱漆龍刻六足小盤]-주칠원반[朱漆圓盤]-
은제 솥[銀製 釜]
=뒷줄; 밥상보자기[食紙褓]-수라간 현판[水剌間 懸板-소반[小盤] (*褓: 포대기 보)
(166) 궁중주방[宮中廚房]
(167) 王室 文房具
(168) 연잎 모양 큰 벼루[荷葉硯] (*硯: 벼루 연)
澄泥石으로 만든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연잎 모양의 벼루이다. (*澄: 맑을 징)
벼루의 몸체는 연잎 모양으로 조각하고, 뚜껑은 나무로 만든 뒤 윗면에 자개를 붙여
용 무늬와 구름무늬를 표현했다.
(169) 필기구[筆記具]
연적[硯滴](앞). (뒤)벼루[硯]-붓[毛筆]-필통[筆筒] (*滴: 물방울 적)
(170) 연적[硯滴]; 백사자 모양 연적(위에서 시계방향)-백자무릎모양 연적- 백자해태모양 연적-
백자물고기모양 연적-백자청화 산수문 연적
(171) 王室文房具
(왼쪽부터) 비단 바른 장[冊欌]-등잔[燈盞]-책상[書案]-붓[毛筆]-필통[筆筒]-
주칠벼루함[朱漆硯函]-사방탁자[四方卓子] (*欌: 장롤 장)
(172) 붓[毛筆]-필통[筆筒]-주칠 벼루 함[朱漆 硯函]
(173) 책상[書案]
(174) 등잔[燈盞] (*盞: 잔 잔)
(175) 明成皇后의 한글 便紙와 詩箋紙 (*箋: 기록할 전)
明成皇后(1851~1895)의 한글 편지는 皇后의 일상적인 모습과 親庭인 驪興 閔氏 집안에
보낸 개인적인 부탁, 당시 정치적 상황과 개인의 생각 등을 기록하였다. (*驪: 검은 말 여)
宮女들이 代筆한 편지나 簡札文도 당시의 궁궐사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한글 宮體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왕실에서는 書簡을 보낼 때 화려한 色相과 다양한 종류의 무늬로 장식된 편지지와 봉투를
사용하였으며, 이를 詩箋紙 또는 花箋紙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전하는 시전지들은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淸나라에서 제
작된 것이다.
(176) 명성황후의 한글편지와 봉투[明成皇后 書簡∙封套]
明成皇后의 한글편지로 皇后가 직접 쓴 것과 尙宮이 代筆한 것이 전한다.
주로 가까운 姻戚에 보낸 것으로 화려한 色紙에 그림을 그리거나 목판에 무늬를 새겨
찍은 것을 사용하였다. (*姻: 혼인 인)
(177) 尙宮의 한글편지[尙宮 書簡]
明成皇后를 모시는 尙宮이 皇后의 지시나 委任을 받아 쓴 것이다.
閔氏 一家에 소식을 알리거나 궁궐에 필요한 물품을 요청하기 위하여
宮女들이 작성하였다.
(178) 시전지[詩箋紙] -20세기 초
시전지는 ‘글이나 편지를 쓰는 작은 쪽지’를 뜻하는 것으로 중국 淸나라 末期 시전지를
전문적으로 제작∙판매한 상점에서 수입한 것이다.
色紙에 옛 器物, 花草, 人物, 風景 등을 장식했다.
(179) 純宗皇帝와 純貞孝皇后의 御車
(180) 순종황제 어차[純宗皇帝 御車] -등록문화재 318호 -1층로비에 전시
大韓帝國의 마지막 황제 純宗(재위 1907~1910)이 타던 승용차로 미국 GM사가
1918년에 제작한 7인승 캐딜락 리무진으로 배기량 5,153cc, 8기통 V형엔진이다.
2001년부터 昌德宮 御車庫에 보관∙전시해오다가 2007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겼다.
우리나라 1호 자동차는 高宗이 1903년 수입한 포드A형 리무진이나 이듬해 러∙일전쟁 때
사라져 純宗과 純貞孝皇后의 御車가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승용차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少數만 남아 있는 車種으로 그 稀少價値로 인해
자동차 역사상으로도 중요한 유물이다. (*稀: 드물 희)
(181) 순정효황후 어차[純貞孝皇后 御車] -등록문화재 319호 -1층로비에 전시
純宗의 妃 純貞孝皇后(1894~1966)가 타던 승용차로 英國 다임러사가 1914년에 제작한
문이 4개인 7인승 리무진으로 배기량 3,309cc, 4기통 I형엔진이다.
2001년부터 昌德宮 御車庫에 보관∙전시해오다가 2007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겼다.
순종황후어차는 순종어차와 함께 국내에 남아 있는 승용차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역사성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당시에 제작된 다임러 차량 가운데 少數만 남아 있는
稀少價値로 자동차 역사상으로도 보존 가치가 크다.
-景福34 제68차 文化遺産踏査(6); 國立古宮博物館 常設展示(5)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