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는 아들이 아빠에게 부탁한 의외의 일
애착 인형을 잘 보살펴달라는 아들... 그 따스한 마음을 늘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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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기간 떨어져서 생활할 아들에게 힘내라고 꼭 껴안아 주었다. 녀석의 가슴이 팔딱팔딱 급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군대에 근무할 동안 아빠 건강하시라는 녀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에 물기가 촉촉이 젖어있는 듯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녀석의 이런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내 어린 시절 초가집 처마에 튼 참새 둥지를 급습해서 움켜쥔 참새의 여린 가슴팍이 떠올랐다. 보드라운 가슴 털과 맞닿은 나의 손바닥으로 따스한 온기와 함께 빠르게 방망이질해대는 새의 심장이 너무도 선명하게 전해져 왔었다. 수십 년 전 참새의 가슴을 다시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돌아서는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눈길이 마주치면 내 감정의 도미노가 연달아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정쩡한 채로 잘 다녀오라는 외마디만 남겼다. 그리고 한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 입영심사대를 향해서 멀어지는 짧은 뒷머리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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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소 가는 길 훈련소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정문까지 걸었다. 한낮의 햇살은 따가웠다. |
ⓒ 선금종 |
훈련소 주변에서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녀석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아빠, 저 없는 동안 털숭이를 잘 보살펴주세요."
그리고는 옅고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가를 배려하는 녀석의 마음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대답 대신 환한 미소로 응답해주었다. 털숭이랑 나름의 이별의식을 하고 왔고 그런 사실을 마음에 곱게 담아두고 있다는 것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들에게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인 셈인데, 그와 동시에 낯선 상황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털숭이'는 내가 해외건설현장에 근무할 당시에 첫 휴가를 나오면서 두바이 공항 면세점에서 사서 선물로 주었던 강아지 인형인데, 털이 보송보송하게 많이 나 있는 털투성이 강아지란 뜻으로 아들 녀석이 지어준 이름이다. 녀석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인연을 맺었으니까 햇수로 14년째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털숭이 이후로 세 개의 인형이 차례로 식구가 되었지만, 그리고 털숭이는 오랜 풍상에 후줄근한 모습이 되어갔지만 아들은 14년을 한결같이 털숭이와 함께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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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인형들 털숭이를 비롯하여 아들이 아끼는 인형들은 변함없이 녀석의 침대를 지키고 있다. |
ⓒ 선금종 |
적대를 연대로 바꿀 수 있다면
이젠 인형들 대신 소총과 철모가 녀석의 곁을 차지할 것이다. 인형과 소총을 만지면서 느낄 판이하게 다른 질감을 애써 떠올려 보았다. 또 그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서로 겹치는 공통분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에 대해서도 헤아려 보았다.
오래 전 내가 군대생활을 시작할 때 생소한 금속붙이들을 대하면서 느꼈던 이물감을 아들도 마주하고 있을까. 인형을 대했던 감성이 차가운 소총에 익숙해지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군대라는 조직은 생래적으로 대결과 적대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세상엔 연대와 배려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만큼 반목과 질시도 똑같은 분량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 자율에 의해 일상이 굴러가는 만큼 타율에 의한 강제가 삶의 큰 부분을 끌어간다. 옆에 있는 동료의 몸뚱이가 엄동설한 연탄불이 되기도 하지만 한낱 끈적거리는 열 덩어리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다. 아들이 이런 간격들을 메꿔 나가는 과정이 순탄했으면 좋겠다.
내 의식의 흐름 속에서는 최근 보도된 서울 화곡동의 죽음들과 군대가 품고 있는 젊고 푸른 힘이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리고 총을 잡은 젊은이의 손길과 눈길이 두 가족의 외로운 죽음에 겹치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서울 화곡동 주택가 한 골목에서는 한 달 간격으로 각각 다른 건물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부패가 꽤 진행된 상태였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던지 병이 데려간 죽음이었던지 상관없이 죽어가는 순간에 타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또 도움을 청하지도 못한 채로 외롭게 죽어 갔다는 얘기다. 이들은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살면서 부딪히는 가장 낯선 상황은 바로 죽음일 것이다. 낯선 만큼 두려운 것이다. 그런 죽음의 무게를 혼자 짊어져야 하는 고독사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고독사의 경우 '누구도 애도해주지 않는 죽음'이 되기 십상이다. 내가 몸담은 공동체가 죽음 앞에 버려진 외로운 이웃들을 껴안아 줄 여력은 얼마나 있을까.
고독사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해 가고 있다. 그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적용하고 있는 지자체도 생겨났다. 화곡동 가족의 경우도 '위기 가구'로 분류되어 1년에 두 번 지자체의 대면관리를 받아왔다. 그렇지만 두 번의 '점검'이 이들의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6개월의 공백이 이들에게 극단의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데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1년에 두 번이 아니고 네 번이었으면 외로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추가로 발생하는 두 번의 '관리'는 누가 해야 하는가.
나는 총을 잡은 젊은이들의 생명력을 떠올렸다. 그 젊은이가 총 대신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상황을 그려보았다. 적대를 연대로 바꾸어 놓는 상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