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1. 11 주일예배설교
환난 날의 산성이신 하나님(나훔 1:7)
Ⅰ. 서론 - 우리는 무엇을 ‘피난처’로 삼고 있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상관없이 우리 인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하지 않는 어려움과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통스러운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며,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인생에 먹구름이 끼고 전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환난의 날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환난의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을 피해 가는 것도 아니고, 착하게 사는 사람을 비켜 가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환난이 닥쳤을 때 지혜롭게 대처하고 안전하게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이 사람들이 여기에서 실패하여 결국 환난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생에서 환난의 날을 경험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피난처로 삼아야 할까요?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그 해답을 찾고 참된 평안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Ⅱ. 본론
사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말씀은 언뜻 보면 굉장히 무겁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앗수르와 그 수도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선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정복한 민족의 가죽을 벗기고 해골을 산처럼 쌓아 올렸던 포악한 제국이었습니다. 앗수르는 광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의 한복판에서 곧 침몰할 작은 배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풍이 지난 뒤 고요하고 잔잔해진 바다처럼 평안을 주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나훔 1장 7절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환난 날에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1. 선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나훔이 메시지를 전할 당시의 배경을 잠시 살펴봅시다. 약 100년 전,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했을 때 그들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다시 교만해졌고, 전보다 더 악독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고, 급기야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시지만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의 악행을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훔 1장 2절과 3절은 하나님을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 ‘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변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이 ‘거룩한 공의’를 가지신 선하신 분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왜 심판하시느냐?”고 묻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세상을 심판하실까요? 그것은 공의로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함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공의가 없는 사랑은 방관에 불과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억울함을 당한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 가해자의 악행을 덮어둔다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폭정과 억압 아래 신음하던 자기 백성의 고통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의의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훔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세상 권력이 아무리 강하고 견고해 보여도, 선하신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세상의 악인들의 불의함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악인이 승리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십니까?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환난 날의 산성(피난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의 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나훔은 1장 7절에서 하나님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여기서 ‘산성’은 히브리어로 ‘마오즈’라고 합니다. 이는 ‘요새’, ‘피난처’, ‘강한 힘’을 의미합니다. 고대 전쟁에서 성벽이 없는 마을은 적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바위 산 위에 세워진 견고한 요새 안에 들어가면, 밖에서 아무리 화살을 쏘고 칼을 휘둘러도 안전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성이 되어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환난을 겪지 않게 해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환난 날에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은 옵니다. 폭풍도 불어옵니다. 그러나 그 폭풍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감싸 안으신다’는 뜻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 우리는 우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산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지만, 우산 안은 젖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산성이 되신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세상은 경제적 불황으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을 산성으로 삼고 그분께 피한 자들은 그 품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환난의 날에 견고한 산성되시는 하나님께 피하므로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3.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훔 1장 7절 하반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를 줍니다.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여기서 ‘안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속속들이 알듯, 남편과 아내가 깊은 신뢰 속에 서로를 알듯, ‘친밀한 관계 속에서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권력자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환난 중에 비틀거리며 하나님께로 도망쳐 오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심지어 여러분보다도 여러분을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아픔과 눈물을 알고 계시며, 여러분의 말 못 할 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앗수르라는 거대한 세력 앞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에게 피하기만 하면, 내가 너희를 보호하겠다. 내가 너희를 알고 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내 수단과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연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힘이요 방패요 구원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무릎 꿇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피할 때, 하나님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시며 반드시 도와주시고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하시므로 승리하는 복된 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Ⅲ.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준엄한 심판’의 소식이고, 환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위대한 복음’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마치 니느웨처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힘을 과시하며 달려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도덕은 무너지고, 정의는 실종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앗수르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심판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처럼, 악한 세상의 권세는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환난의 날에 나는 지금 무엇을 의지하며 어디로 피하고 있는가?”
여러분! 세상이 주는 가짜 산성에 속지 마십시오. 돈이라는 성벽은 언젠가 무너집니다. 명예와 권력이라는 성벽도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이제 결단합시다. “오직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되시며,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한 진정한 산성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 대신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품을 열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산성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결코 두려움이 없고, 참된 평안이 넘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인생에서 어떤 환난이 닥쳐와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선하신 하나님, 환난 날에 나의 산성이 되시며,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당당하게 살아가시며 참된 평안과 승리를 경험하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