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는 삼강령과 팔조목의 윤리를 제시하였다. 팔조목은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이다.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물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격물(格物), 앎을 이룬다는 것이 치지(致知), 마음이 발하는 바를 성실하고 진실되게 하는 것이 성의(誠意), 몸을 관장하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정심(正心)이다. 몸을 닦아나가는 것이 수신(修身), 집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제가(齊家),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치국(治國),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계를 이루는 것이 평천하(平天下)이다.
명명덕
‘밝은 덕(明德)을 밝힌다.’는 뜻으로, 덕(德)이란 득(得)의 뜻으로, 얻는다는 말이다(논어). 인물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아 얻은 것의 본질이 맑고 밝으니 명덕이라 한 것이다. 이처럼 맑고 밝은 덕이 기품(氣稟)과 인욕(人欲)에 구애되고 가리어져, 때로는 혼미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명덕의 본체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일러 명명덕이라 한다.
친민
백성과 친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친(親)을 신(新)으로 해석하는 주희(朱熹)에 의하면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 된다. 신(新)은 혁신(革新)의 신이요, 민(民)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을 지칭한다. 신인(新人)이라 하지 않고 신민이라 한 것은 민(民)이 인민(人民)을 총칭하는 정치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명덕(明德)은 사람마다 똑같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덕성(德性)인데, 나(我)의 명덕만을 밝힌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나의 주위에 있는 동족과 동포가 물욕에 가리고 구습에 젖어서 그 고유의 명덕을 밝힐 줄 모르고 있을 때, 또 알아도 의연히 개혁하려 하지 않을 때, 측은하게 여기고 그들을 새롭게 이끌어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요 마땅히 그러하여야 할 상도(常道)인 것이다.
지어지선
지선은 사리당연(事理當然)의 극(極)이다. 명덕을 밝히는 것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 지선에 이르러 머무를 때에 나(我)와 지선이 하나가 되어 지선이 내 마음에 있는 것이 명덕이 되고, 명덕이 사물에 나타난 것이 지선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요, 지선은 지선이 되어 나와 지선이 무관하게 된다. 그리하여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표적(標的)이 될 수 없게 된다. 『대학』에서 말하는 지어지선은 내가 지선에 이르러 머무르는 것이지 남에게 지선에 이르러 머무르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된 자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 머무르고, 부모된 자는 자식을 사랑하는 데 머무르고, 임금된 자는 백성을 어질게 여기는 데 머무르고, 신하된 자는 임금을 공경하는 데 머무르며, 나라와 나라가 국교를 맺을 때에는 신의에 머무르는 것 등이 바로 지선에 머무르는 것들이다. 지선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지선에 이르러야(至) 한다.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면 반드시 이르기를 구하여야 하며, 이미 이르렀을 때에는 그 이른 것을 고수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이 참다운 머무름인 것이다.
격물(格物)
격(格)은 '이를 격'이니 격물이란 사물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사물(事物)의 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물에 다가가야한다는 뜻이 격물(格物)이다.
치지(致知)
사물(事物)에 다가가서 앎을 이루는 것이다.
성의(誠意)
성(誠)은 진실되고 성실함이고, 의(意)는 마음이 발(發)하는 것이니 마음이 발하는 바를 성실하고 진실되게 하는 것이 성의(誠意)이다.
정심(正心)
뜻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가진다면 그로 인해 마음도 바르게 할 수 있다. 몸을 관장하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정심(正心)이다. 희노애락등의 특정한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수신(修身)
몸을 관장하는 마음을 바르게 하면 자연히 몸을 닦아나갈 수 있으며 천자(天子)에서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修身)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특이할만한 것은 대학의 팔조목에서 수신과 정심을 통합하여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몸을 닦는 것과 마음을 바로하는 것이 직결되어있음을 보여준다.
제가(齊家)
제가(齊家)는 집을 가지런히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효(孝) 제(弟) 자(慈)의 도리로 집안의 화목과 질서를 바르게 하는 일이다.
치국(治國)
제가(齊家)의 도리인 효(孝) 제(弟) 자(慈)를 미루어 보면 이것이 곧 임금을 섬기고(事君) 어른을 섬기며(事長) 무리를 이끄는(使衆) 국가적 도리이다. 이 도리를 써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곧 치국(治國)이다.
평천하(平天下)
평천하(平天下)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 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의 도리 효(孝) 제(弟) 자(慈)를 미루어 알 수 있다. 효(孝)는 노인을 노인으로 섬기고(老老), 제(弟)는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고(長長), 자(慈)는 외로운 이를 불쌍히 여기는 (恤孤) 것이 곧 평천하(平天下)의 방법이다. 이렇게 천하에 효(孝) 제(弟) 자(慈)가 일어나 평천하(平天下)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혈구지도(絜矩之道)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