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신곡 외 1편
서이교
지하방에 비가 자주 내렸다
동생은 팔을 지느러미처럼 흔들며
물을 건너다니고
나는 빗방울을 세다가 입술이 무거워지곤 했다
안개 숲에 켜진 가로등 불빛처럼
언니는 젖은 눈으로
모자이크 놀이를 하자며
주워다 놓은 타일과 망치를 꺼내왔다
모서리들이 늘어났다
맞는 부위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와
다르게 부서지는 조각들
지하방은 부서지는 소리로 축축했다
언니는 얼룩진 벽에 스케치를 하고
동생은 큰 조각들을 더 잘게 부수고
나는 언니가 그려놓은 선을 따라 조각을 이었다
무슨 모양을 만드는거에요?
높은음자리표를 만들자꾸나
비는 더 거세졌고
양동이는 비트박스를
문은 콘트라베이스를
튀어 오른 물방울들은
공중을 잡거나 부서지며 허밍을 했다
동생은 드럼을 치고 나는 지휘를 하듯
세상에 없는 곡을 연주했다
불빛이 울먹이듯 무대를 비추고
누렇게 뜬 벽면이 깨진 조각들로 빛났다
음악이 그림이 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음자리표를 보며 좋아했고
언니는 자주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무성한 문
뒤척이는 눈으로 천장에 피어 있는 꽃을 본다 인디에게 아침을 주고 흘러드는 마음을 들고 창가에 선다 구상나무가 몸에 찍힌 눈발자국 보란다 2월 여름 가지끝... 사라진 발자국, 나무는 그리움을 어느 계절에 두나
보인과 보는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무 집을 나와 테이블에 앉는다 스테들러 연필의 깍인 자국을 만지며 그가 인도에서 보낸 사계노트를 꺼내 겨울을 편다 후글리 강가에 시린 강물을 열고 몸을 닦는 사람들 있다 식은 커피로 목줄기를 닦고 강줄기 옆에 '문이 무성해'라고 쓴다 보고 쓰고 닦고 마시고 만지고 머무는...
넘겨진 계절에 박힌 바람의 냄새를 맡다가 여름을 펼쳐 나즈막히 블루라고 부른다 마린보이의 정원은 다색의 블루로 가득하고 빈디를 찍은 여인들 허공을 만지며 발바닥을 두드린다 보이지 않는 음들의 부추김, 보이는 보는 가능 불가능 ‘이 불’을 꺼내 쓰고 신발이 없어도 괜잖아 마음 닿는 곳 열리니까, 덧붙인다
인디가 발꿈치를 따라다니다 거울옆에 앉는다 어제도 오늘이었고 내일도 오늘이 될거라는 생각에 흘러내린 머리를 말아 올린다 왼쪽 눈썹이 잘 그려졌다고 생각하며 문을 나서자
사방에 놓인 문들이 나를 향한다
서이교
1964년 전라남도 순천 출생, 본명 서미숙.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23년 <문학뉴스& 시산맥> 신춘문예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