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이 이 말을 듣고는
문득 걱정스럽게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반갑지 않은 말투로 말하였다.
"음양이라는 것은 한 기운이 죽고 사는 것인데,
그들이 둘로 나뉘었으니 그 고기가 잡될 것이야.
오행도 제 바탕이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 그들을 구태여 자(子), 모(母)로 가르고 심지어는 짜고 신맛까지 들여서 분해하였으니,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거야.
육기(六氣)도 제각기 행하는 것이라서 남이 이끌어 주기를 기다릴 것도 없었는데,
이제 그들이 망령되게 '재성(財成) 보상(輔相)'이라고 일컬으며 사사롭게 자기 공을 세우려고 한다.
그러니 그런 고기를 먹다가는
너무 딱딱해서 체하거나 구역질 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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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鄭)땅의 어느 고을에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선비가 살고 있었으니, 북곽선생이라고 불렸다.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한 책이 만 권이요,
구경(九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지은 책이 일만 오천 권이나 되었다.
천자가 그의 의(義)를 아름답게 여기고, 제후들이 그의 이름을 사모하였다.
그 고을 동쪽에는 아름다운 청춘 과부가 살았는데, 동리자라고 이름하였다.
천자가 그의 절개를 갸륵하게 여기고, 제후들도 그의 어진 마음을 흠모하였다.
그래서 그 고을 사방 몇 리의 땅을 봉하여,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하였다.
동리자는 이렇게 수절 잘 하는 과부였지만,
다섯 아들을 둔 것이 저마다 다른 성을 지녔다.
어느 날 밤 그 아들 다섯 놈이
강 북편에는 닭 울음소리 강 남쪽에는 별이 반짝이네
방안에서 소리가 나니
모습이 어찌 북곽선생과 아주 비슷한가? 하였다.
형제 다섯 놈이
번갈아 문틈을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선생에게 "오랫동안 선생의 덕을 연모하였습니다.
오늘밤에는 선생님께서 글 읽으시는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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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곽선생이
옷깃을 가다듬고 꿇어앉아서 시를 읊었다.
병풍에는 원앙새가 있고, 반딧불은 반짝이네
가마솥과 세발솥은 무얼 본따서 만들었나 흥겨워라
다섯 아들이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예기}에 이르기를 '과부의 집 문에는 함부로 들어서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북곽 선생은 어진 이거든(그러니 이런 일이 없을거야.)."
"내가 들으니, '이 고을 성문이 헐어서 여우가 구멍을 내었다'고 하던데."
"내가 들으니,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조화를 부려 사람 흉내를 낸다.'고 하던데,
그 놈이 반드시 북곽 선생을 흉내 낸 걸 거야."
그들이 서로 이렇게 의논하였다.
"'여우의 갓을 얻은 자는 천금의 부자가 되고,
여우의 신을 얻은 자는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으며,
여우의 꼬리를 얻은 자는 사랑 받아서 누구든지 그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우리가 저 여우를 잡아 죽여서 나누어 가지는 게 어떨까?"
그래서 다섯 아이들이 한꺼번에 어머니의 방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북곽 선생이 크게 놀라서 달아났는데, 남들이 혹시라도 제 얼굴을 알아볼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한 다리를 비틀어 목덜미에 얹고, 도깨비처럼 춤추며 도깨비처럼 웃었다.
문 밖을 나가 뛰어가다가, 그만 벌판 구덩이에 빠졌다.
그 속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붙잡고 올라와 목을 내밀고 바라보니, 이번에는 범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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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구역질하다가,
코를 막고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며 "에이쿠, 그 선비가 구리구나."하고 혀를 찼다.
북곽선생이 머리를 조아리며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와,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았다.
고개를 쳐들고 이렇게 여쭈었다.
"범님의 덕이야말로 참으로 지극하십니다.
대인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은 그 걸음을 배웁니다.
남의 아들된 자들은 그 효성을 법으로 사모,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합니다.
그 거룩한 이름이 신룡(神龍)과 짝이 되어, 한 분은 바람을 일으키고 한 분은 구름을 일으키시니,
저처럼 하토(下土)의 천한 신하는 감히 그 바람 아래 서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