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는 나의 시_ 불길 속의 마농 / 강인한
불길 속의 마농
강인한
어지러워요 저 불길
당신의 사랑은 너무너무 높아서 어지러워요
저 불길을 누가 좀 잡아줘요
어려요 저는 어리고 당신은 높으신 분
말 많은 당신을 누가 사랑해요
사랑해요
잊어버리세요 저것들
거렁뱅이들의 소동쯤 당신의 거대한 배짱으로
밀어버려요 불도저로 밀어버려요
까짓 양복점 직공의 항변쯤 눈감으면 그만
벗어 놓은 제 브래지어로 차라리
눈을 가리세요
보지 마세요 듣지도 마세요
무시해버려요 말짱 미친놈들만 박테리아처럼
박테리아처럼 우글거리는 이 도시의 공기는
담배보다 해롭고
구할이 외상이에요
타네요 이 시디신 공기
악질의 근성 근대식의 멋진 연애가
아주 잘 타네요
늦잠 자던 산타클로스가 저봐요
뛰어내리네요 나비처럼 사뿐히
불길 속을 뛰어내리네요 자꾸만 자꾸만
어지러워요 어려워요 어려요
절 놓아주세요
닥치는 대로 부수고 닥치는 대로 세우는
미끈한 당신의 폭력
한 번 두 번 세 번이나 속고 또 믿어요
믿을 수 없어요
놓아주세요 절 좀 놓아주세요
이렇게 높은 창틀에 올라서면
저는 여왕이에요 난초 열끗이에요
뛰어내릴 테요 금리처럼 단호히 내릴 테요
아주 잘 타네요 저 불길 잘 타네요
함부로 말씀하시면 곤란해요
누가 듣고 있어요
이 도시는 빈 놋그릇처럼 울려요 날마다
꽝꽝 울려요 하늘도 땅도
울려요 어지러워요
어디서 오셨나요 당신의 유니폼이 겁나지만
뭘 드시겠어요 총을 들고 버티겠어요
저는 당신의 포로 그래요 마농예요
주간지에서 절 보셨다구요 아이 기뻐요
밤이 되면 전활 걸어주세요
저기 오빠가 달려와요
절 죽이러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어요
어지러워요 막 타네요 저 불길
농축된 당신의 욕망이 프로판가스처럼
치솟아 오르면서 타네요
세계에서 제일 쓸쓸하고 화려한
돈 돈 돈자천하지대본이 타네요
어지러워요 어지러워요 저 불길
붙잡아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 1972. 1 )
■ 절망의 겨울, 암울한 시대의 판화
말도 안 되는 것을 말이라고 들이대던 시대였다. 1960년 4월 학생 의거로 민주주의의 희망을 보던 그 짧은 시기의 설렘을, 흥분을 생각하면 야릇하게 가슴이 떨린다. 외국 기자들은, 이승만 독재에 억눌려 살면서도 끽 소리 못하고 죽어 사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실정을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야유하였다. 그렇게 말할 것이 억눌려 살면서도 선거 때가 되면 돈 몇 푼, 고무신 한 켤레에 양심을 팔고서, 불법을 자행하는 여당을 지지하곤 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그러나 4. 19 혁명이 있었다. 눈물겹게도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꽃을 피운 사건이었다. 민주당 정권은 이 시기에 우리나라 경제개발 계획도 세우고 내각 책임제를 운용하였다. 물론 약간의 과도기적 사회 혼란이 있었다고는 하나 국가의 기반이 흔들릴 만큼 위험한 지경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데타의 음모가 이 때부터 싹트고 있었음에 이르면 할 말이 없다.
1961년 5월 이른바 5. 16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해방 전 해에 태어났기에 나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일제치하에서 학교에선 매일 아침 조회 때마다 「황국신민서사」라는, 일본 천황에 충성을 바치는 다짐의 글을 앵무새처럼 외워야 했다고 한다. 군사정권이 맨 처음 시행한 것이 그와 비슷한 「혁명공약」을 매일 아침 외우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다시 쓰레기통 속으로 처박히고 무려 30 년간 보류되었다.
가장 먼저 군사정권이 손본 것이 대학이었다. 대학 신입생 정원을 종전의 사분의 일 혹은 오분의 일로 대폭 줄이고, 각 대학별로 치르던 입시제도를 단숨에 바꿔 전국적인 '국가고시(지금의 수능시험)'를 시행하였다. 그 합격자 수도 전국 대학 신입생 정원의 1. 5 배를 초과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가에서 대학 신입생 선발권을 장악한 이것이 교육 망국의 연원일 것이었다.
사회가 안정되면 민간에 정부를 이양하고 군인은 다시 본연의 군으로 돌아가겠다던 '혁명공약' 마지막 조항은 한갓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서 대통령에 취임하던 그 날 그 통치자의 말이 생각난다. "이 나라에 나같이 불행한 군인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 행복의 절정에서 한 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고, 입에 발린 거짓말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그는 거짓말의 달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행한 군인'을 추앙하는 군인이 1979년 12월에 또 다시 나타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70년 이른 봄, 정인숙이란 미모의 젊은 여인이 죽었다. 편의상 위키백과에 실린 글을 옮겨 본다.
정인숙 살해사건은 제3공화국 당시의 의문사이다.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부근의 강변3로에 멈춰서 있는 검정색 코로나 승용차에서 권총에 넓적다리를 관통 당해 신음하고 있는 한 사내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이미 숨진 한 젊은 여인이 발견되었다. 부상당한 사내는 정종욱(당시 34세), 숨진 여인은 정인숙(당시 26세)으로 두 사람은 남매 관계로 밝혀졌다.
나중에 정인숙의 집에서 발견된 정인숙의 소지품에선 정관계 고위층의 명함 26장이 포함된 33장의 명함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해졌고 언론 보도가 수사를 대신하게 되었다. 언론은 정인숙에게 숨겨진 아들(정성일, 당시 3세)이 하나 있고, 정인숙이 당시 정관계 고위층 전용이라 할 수 있는 고급 요정 '선운각'을 드나들었다는 걸 밝혀냈다.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듣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절대권력이 악취를 내뿜으며 부패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세 살 난 사내애를 안고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미모의 젊은 여인의 사진 한 장. 그 아기의 귀가 영락없이 최고 권력자 누구 귀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파다했다. 그러나 훗날 그 똥물을 뒤집어 쓴 것은 정일권 총리였다.
그녀가 죽기 불과 두 시간 전 어느 연예기자가 정인숙을 보았노라 했다. 그 기자의 글을 보면 권력에 의한 죽음의 냄새가 느껴진다. 남산 중턱 타워호텔 18층의 나이트클럽에서 그녀는 세 번 네 번 밴드에게 똑같은 곡의 연주를 부탁했다고 한다.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릴리스 미'라는 노래. "나를 좀 놓아주세요. 떠나갈 수 있게 놓아주세요.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내게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답니다. 당신의 입술은 차갑지만 그이의 입술은 따뜻합니다." 라는 내용의 가사. 그녀는 일찍이 대학시절 메이퀸(오월의 여왕)으로 뽑힌 적도 있다고 하였다.
「불길 속의 마농」이라는 이 시는 정인숙을 서정적 자아로 내세워 쓴 시. 습작 노트를 보니 1972년 1월 22일에 완성시킨 작품이다. 한 달 전 1971년 12월 25일에는 명동에 있는 대연각호텔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났었다. 불길이 치솟고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호텔 객실 창문에서 숨막혀 괴로워하던 끝에 뛰어내려 죽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 모든 현장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다. 사망 167명. 끔찍한 화재 사고였다.
그 전 해인 정인숙 살해사건이 있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6가 평화시장에서 열악한 노동현장을 견디다 못해 전태일이란 한 청년이 분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사건은 모든 신문에 겨우 1단 기사로밖에 취급되지 않았었다. 언제나 그랬다. 중요한 국내 뉴스는 외신기사를 통해 전해지거나 기사의 행간에 숨어 있기도 했으며 기껏해야 1단 기사로 나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다방에서 수류탄을 들고 인질극을 벌인 무장 탈영병 이야기도 있었고, 불도저처럼 부수고 세우고 하는 밀어붙이기 식의 서울시 행정이 있었고, 도색잡지라 할 만한 주간지가 길거리에서 잘 팔리던 시기…….
이 시는 이와 같은 시대 상황을 복합적으로 모자이크하여 쓴 것이었다. 대통령의 재선만을 허용한 헌법을 뜯어고쳐 '3선 개헌'을 전격적인 날치기 수법으로 통과시킨 건 1969년 9월이었다. 당시 절대적인 통치자는 절대로 헌법을 고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음에도 그게 몇 번째 거짓말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만들겠다." 고 국민을 우롱하던 그의 말도 나는 지금 똑똑히 기억한다. 정말 암울한 시대, 엄혹한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의 연속이었던 시대, 그게 제3공화국 시절이었다.
졸시 「불길 속의 마농」은 1972년 봄 《현대시학》의 '특집/ 60년대 50인집'으로 발표된 작품이다. 그리고 바로 그 해 몇 달 뒤에 이른바 '10월 유신'이 자행된다. 마농은 아베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에서의 여주인공 이름. 시작 노트에 이 시에서만은 모든 문장부호를 뺄 것이라는 다짐의 메모가 보인다.
유신 독재의 시기 대통령 선거란 장충체육관에서 여당 성향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만이 모여서 한 사람밖에 출마하지 않은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코미디에 불과하였다. 그 유신독재의 말기인 1979년 6월에 쓴 다음의 시는 1980년 4월호 《현대시학》에 발표되었다.
은빛 서걱이는 강변에
바람 부는 갈밭, 검은
달이
애드벌룬처럼
기나긴 쇠사슬 끝에 매여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갈대는 여기저기서
단칼에 허리가 꺾인다.
허리 아래 드러난
복두장이의 피묻은 너털웃음이
비비꼬여 달아난다.
쇠사슬을 절컥이며 절뚝절뚝 달아난다.
검은 달이
쇠사슬에 꿰어 올린 강물 속에
앙금으로 남은 귀엣말
시퍼렇게 녹이 슬려 인양된 뒤.
―졸시 「검은 달이 쇠사슬에 꿰어 올린 강물 속에」전문
'유비통신'이라는 말이 있었다. 유언비어, 곧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파되는 방식의 소문 통신이라고나 할까. 신문에 보도되는 사실보다 사람들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이 더욱 더 진실에 가까운 그 절망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도 상당히 많이 있다. 입만 열면 고도 경제성장만을 하느님처럼 칭송하면서 한편으로는 재벌기업들의 폭리라든가, 최고 권력자 주변인들의 국가 정보를 통한 개발지역 땅 투기(오늘의 부동산 투기의 근원), 인권 탄압, 바른 말을 하는 이들을 빨갱이라고 덮어씌우고서 죽여 버려도 할 말을 못하던 그 추악한 이면은 굳이 눈감고 보지 않으려 하면서…. 어쩌면 다시 그런 시대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역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와 경계》2009년 봄, 창간호(MB정부 2년)
첫댓글 마농은 아베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에서의 여주인공 이름.
세계에서 제일 쓸쓸하고 화려한 돈 돈 돈자천하지대본이 타네요 어지러워요 어지러워요 저 불길 붙잡아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강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