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움] 롤리팝, 그 잎새 03.
단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그바람에 이마가 부딪혀 책상이 두쪽으로 갈라질듯한 괴음이 퍼지는 책상.
정말...차라리 유환이 나았을법 한 시작이다..
" 그래도 너 앞자리라 좋다 우리 은연이~ "
내 두손을 흔들어보이며 인사를 하는 주아지만... 지금 그럴기분이 아니다 주아야..
" 하.. 정말 망했어 정말... "
그나저나 둘이 학생회라고했지.. 유환 걔는 언제 학생회가 된거람.. 정말 그 날 이후로 환이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많아졌다. 다 걔의 탓이기는 하지만..
" 담임이 영어라니.. 정말 지옥이다 "
누가 한주아네 어머니가 미국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놀릴법하겠다. 그러길래 오빠가 하시는 공부좀 따라하지..
주아네 오빠는 공부는 못하는 편이었지만 주아와 7살터울이라 10년정도 미국에 살아서인지 영어를 꽤 하는편이었다. 결국 꿈을 통역사쪽으로 잡고 취직해 몇년째 일하는중이시다.
" 그니까 한주아 이참에 영어 좀 하는건 어때? "
" 내가 한도아따라서 통역사 되느니 번지점프하고 떨어져서 다시 태어날란다. "
비유도 참 자기같이 한다 정말.
나의 대화에 관심이없는듯 휴대폰을 만지던 단호가 갑자기 실소를 터뜨리고는 도형에게 걸어간다. 저거 지금... 또 나 놀리는건가?
" 야 쟤가 그 아침에 강단호야? 멀리서 볼땐 몰랐는데 잘생겼다? "
" 잘생겼으면 나랑 제발 자리 좀 바꿔줄래? "
" 에헤 그건 좀 아닌거 같다 내 짝도 좋거든~ "
어느샌가 또 옆자리 남자애와 친해져서 수다를 떨고 있는 주아. 정말 누가 미국 혼혈아니라고 저런 친화성이랑 개방성은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다. 물론 남자에게만.
도형과 이야기를 마쳤는지 다시 자리에 앉는 단호, 이런아이와 1년동안... 한반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벌써부터 걱정스러울 뿐이다.
" 무슨 첫날부터 이동수업을 하라는거야? "
인문계 고등학교중 상위권에 속하는 우리학교. 이동수업도 거희 없고 축제도 없는편에 속해 널널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원한것인데..
입학 첫날 소문을 들어보니 꼬박꼬박 이동수업을 다 하는것도 모자라 소풍도 왠만한 고등학교보다 자주나가며 일년에 한번씩 수련회에.. 축제는 봄가을 체육축제와 겹쳐서 한다. 그나마 실푸라기 처럼 잡고있던 희망인 날씨조차.. 누가 날짜를 정했는지 무슨 일정이 있는 날에는 절대 비 한점도 오지 않는다.
" 난 좋은데~ 수업을 안하잖아 호호. "
2학년부터 나뉘어진 문과와 이과로 인해 주아와 같은반이 된것이라고는 하지만.. 어째 저런애와 같은반이 되버린것이 나의 꿈을 이과로 정한것에 후회가 밀려온다.
" 체육이잖아.. 누가 정했는지 시간표한번 더럽다 정말.."
월요일 첫교시가 영어에 두번째 교시는 체육이랜다... 세번째교시는 얼마나 대단한것일지.
" 왜~ 봐봐 날씨도 이리 화창....."
하다며 두팔을 벌려 뛰어가던 주아가 갑자기 힘차게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를 맞고는 자리로 돌아온다. 첫날에 시간표는 더럽고.. 날씨조차 말을 안들어오네.. 아마 공부를 하고 싶다는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 아.. 정말 화난다 은연.. "
" 체육복 안 갈아입어? "
" 어어.. 난 이대로 오늘 쭉 지낼거야 귀찮아. "
손을 절래절래 젓는 주아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향했다.신나는 마음으로 체육복을 갈아입고 교실로오니 마침 시작종이 울린다.
" 뭐야 왜이리 교실이 비어있어? "
" 방금 소나기였나봐 날씨 완전 화창해졌던데? "
" 아... 뭐야 또 오겠지.. "
신이난 주아와 반대로 절망의 그림자가 나를 가리는것이 느껴진다. 또 다시 체육복을 갈아입으면 늦을테고.. 안 갈아입자니 첫날부터 규칙을 어긴다며 눈 밖에 나겠지..?
" 저 문 잠그지 말아줘!! 주아 먼저가서 나 보건실 좀 들른다고해줘!! "
" 응? 알았어! 빨리와야된다? "
전자의 두 이유보다는 첫날부터 아픈애로 찍히는게 훨... 낫겠지?
급한마음에 앞뒷문을 확인도 안하고 와이셔츠를 벗어재꼈다. 안에 많은것을 껴입기 싫어하는 편이라서 끈나시를 갖춰입어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옷을 갈아입기 거려하는편인데.. 오늘만큼은 너무 다급했다.
하지만 왜 오늘따라... 운이 나를 따라주지 않는 것일까..
" 아... 아악!! "
" 시끄럽게.. 뭐야 ."
휴대폰을 만지며 교무실이라도 다녀온듯 프린트물을 양손에 들고는 교실로 들어오던 강단호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내 딴에는 몸을 가린다고 엑스자로 가린것인데.. 볼것도 없다는듯이 인상을 찡그리고 쾅소리와 함께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강단호..
그래.. 아침에 저걸 만나고나서부터 오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기분이야.. 강단호 완전싫어!!!
" 후...아 정말 불쾌해.. "
문을 나서며 혼잣말로 중얼거린것이 들린듯 교실로 들어서며
" 볼것도 없는게. "
하는 말을 내뱉어 버리는 강단호다.. 지금 저거.. 굉장히 실례라는것을 알고 지껄이는말인가. 물론 내가 먼저 실례를 하긴 했지만... 들어올때 노크라는것도 모르냐는 말이야!
창피함과 불쾌함에 하루는 양호실에 누워 살아볼까 생각도 했지만... 정말 첫날부터 아픈애로 찍히는것은 1년동안 치명적인 약점이기에..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 아.. 점마들 오네. 가은연. 강단호 맞나? "
체육선생님인듯 익숙한 초록색의 아디다스 세줄 점퍼에 검정 츄리닝바지를 입고 긴 막대기를 들고 서있는 전형적인 남 선생님. 왜인지 수업시작전에는 운동장을 돌라는 말을 꺼낼것같은 오로라를 풍긴다.
그나저나 나 혼자왔는데 강단호는 무슨..
" 엑!! "
뒤를 돌아보고는 괴음을 질러버렸다. 30센티가 채 안되는 거리에서 대답을 하며 어느샌가 바로 뒤에서 나를 쫒아오던 강단호.. 무슨 소리 소문도 없고 인기척도 없담..
" 뭐야. "
또 한번 인상을 찡그리고는 맨 뒷줄로 가 서는 강단호다. 어쩔수없이 강단호의 옆에 서 버린 나.. 다음으로 들리는 말은 나에게 절망을 줄 뿐이다.
" 체육시간. 시작하기전에 1번이 번호순으로 두줄씩 세워놓는다 알았나!! "
구수한 사투리를 남발하며 나에게 충격적인 규칙을 전수하는 초록색쌤.. 설마 2번이 강단호라는 극적인 전개...라니 역시 나의 불길한 예감은 오늘따라 강하게 작용하는구나.
"대답안하나 1번이..가은연! 알았나!! "
" 네...네에... "
" 목소리가 와이리 겨들어가노. 우나 니? "
정말 울고싶습니다 선생님... 누가 반좀 바꿔주세요 제발...
눈물을 머금고 선생님께서 반 강제로 시키시는 체육부장일을 맡으려는 찰나에
" 쌤!! 저 완전 체육부장 하고싶은데요?! "
지도형의 구세주같은 말이 나를 가로막는다. 정말.. 너는 강단호와는 다르게 친해질 수 있을것같은 느낌이야 지도형.. 굿굿.
" 아.. 마, 니 체육 잘하나? "
" 네! 완전 자신있슴돠!! "
딱봐도 남자들끼리의 언어로 로우킥 한방이면 부숴질것같은 다리를 가져놓고.. 무슨 체육을 잘 한다는걸까. 남자들은 다들 그렇긴 하지만 지도형은 키도 일반학생들보다 작고 체구도 작은편에 몸무게는 나보다 덜 나갈듯 여리여리해보인다.
" 오호라, 함 보자? 임마 니 이름이 뭐고? "
" 지 도형 입니다! "
자신의 이름을 말해놓고 자랑스럽다는듯이 선생님옆으로 가 서는 도형. 군데군데에서 귀엽다는 말이 터져나온다. 우리집에서 지금쯤 깨어났을법한 유성이보다는 덜 하지만 귀여운 앳된 외모를 지닌 도형. 여자들에게 인기있을법한 외모다.
" 인사시작. "
" 차렷!! 경례!! "
" 아따 잘하네? "
도형이를 향해 피식웃음을 짓고는 나의 예상과 같은말을 내뱉어버리는 우리의 초록이쌤..
" 내 수업시간전에는 항상 운동장 3바퀴 돈다. 실시! "
" 에에...?!"
" 뭐하노 퍼뜩 안갔다오나? 5바퀴뛸라고? "
" 아닙니다! "
고개를 내 저어가며 가장 먼저 출발하기 시작하는 도형. 곧바로 나를 제치고 강단호가 뒤를 이어간다. 이봐..줄 좀 맞춰주시지?
" 아우... 진짜 힘들어 죽겠네.. "
유성이에게 가끔 끌려 다니는 것 빼고는 운동할 시간도 여유도 없는터라 말그대로 저질 체력의 소유자이다. 중학교때 나와 비등하던 한주아는 연예인 팬클럽회장이되어서는 한동안 사생팬짓까지 하다보니 체력에 완강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눈에 틔는 머리색과 외모로 인해 사생팬짓은 그만둔지 꽤 됬지만 곧바로 마라톤급의 계주선수오빠에게 사랑에 빠져 마라톤 동아리에까지 들어버렸던 주아..
역시 나를 제치고 단호의 뒷자리까지 따라가버린다.
" 어 뭐야? 왜이리 잘 뛰어 노랑이? 하하 "
" 노랑이라니 첫날부터 눈앞이 노래지고 싶구나 너? 호호 "
어느샌가 지도형과 친해져서는 하하호호 담소를 나누며 맨앞을 달리는 둘이다. 단호는 그런 둘을 제치고 일등으로 들어와 버렸고 난 역시나 예상대로 꼴찌를 해버렸다..
" 닌 번호를 1번 달아놓고 와 꼴찌를 해쌌는데? 니 남아서 공정리해라 가은연이- "
정말...되는일이 더럽게도 없구나 가은연.
" 강단호 진짜 닌 우사인볼트냐 언제 들어왔데 "
" 니가 느려진거야 지도형. "
" 다음주에 내기할래?! 내가 느려지다니 허! "
이게 다 저 속편한 강단호때문이야...너 때문!!
마음속으로 삿대질 한다는게 행동으로 옮겨져 검지손가락을 곧게 펴며 단호를 가르켜버렸다. 뭐하는 짓이냐며 턱짓을 하고는 도형과 운동장으로 가버리는 단호.
내가... 저것때문에 운동장 공정리를 해야한다니...
" 도와줄까 은연?"
"그럼 고맙지. "
수업이 끝나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주아는 도형을 따라 골대에 골 넣기에 바빴고 강단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옆에서 비소를 띄며 나와 골대를 번갈아보고있다. 도와주기는... 넌 조용히 반에 들어가는게 도와주는거다 한주아..
" 으아악 너네는 무슨 공을 분리해놓냐!? 이게 무슨 분리수거야?!"
괜한 1학년 애들에게 성을 내며 공정리를 마추니 어디선가 날아와 나의 뒷통수를 강타해버리는 공이다.
" 후...야 누구야!! "
" 아. 미안. "
대충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도형과 주아를 따라 건물로 들어가버리는 단호.. 그래... 적.어.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구나...
강단호를 없애지않으면 하루하루가 오늘같을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나쁜생각을 품어가며 교실로 가던중... 올것이.. 온것같다..
" 누-우나!!!"
우리집에서 곤히 잠들어있어야할 반유성이가.. 누구것인지 모를 학교교복을 입고는 우리학교에 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