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에 다가가는 아버지, 당신을 추억하고 닮아가는 법
《가족식사》 임동헌 지음|랜덤하우스중앙|254쪽|값 8,500원
《아버지와 나》 존 휴즈 지음|연진희 옮김|바다출판사|144쪽|값 8,500원
《고통과의 화해》 스펜서 내들러 지음|이충웅 옮김|이제이북스|240쪽|값 10,000원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행위, 사진을 모으는 행위는 기억이나 추억을 주워 담는 행동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지나간 찰나를 간직하고픈 욕망. ‘사진쟁이’에겐 그만큼 그립고, 아깝고, 아쉬운 것들이 많다.
《민통선 사람들》 《기억의 집》을 쓴 임동헌은 사진을 향한 애정이 각별한 작가다. 소설 《기억의 집》에선 사진작가를 등장시켰고, 기행산문서 《길에서 시와 소설을 만나다》에선 아예 직접 사진기를 들고 나섰다. 그는 인화지에 앉은 피사체를 요리조리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셔터 누르는 일을 즐길 줄도 안다. 또한 웬만한 사진작가 이상으로 피사체를 잘 읽고 빛을 계산한다. 그만큼 간직해놓고 추억하고픈 게 많은 까닭이다. 한편 그는 ‘엔티크 콜렉터’다. 그렇다 해서 거창하게 몇 백 년도 더되는 세월을 산 고가의 엔티크를 소장한 갑부는 아니다. 오래된 라이터, 시계, 만년필을 갖고 다니며 물건들이 뿜어내는 아로마에 흡족해하는 소박한 의미의 콜렉터다.
그런 그가 최근 “아버지의 유산을 챙겼다”며 새로운 추억의 매개물을 갖게 됐음을 고백했다. 암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삶을 추억한 《가족식사》를 펼치니 소설가 임동헌은 아버지가 생전에 입었던 와이셔츠 한 벌을 골라 입고, 앨범 속 젊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평범한 ‘아들’로 돌아가 있다.
《가족식사》는 솔직한 고백록이다. 투병기도 아니요, 암 치료 비법서도 아니요, 눈물을 질질 짜게 만드는 휴먼스토리도 아니다. 아버지의 고통조차 기록해야 그나마 맨정신으로 잠들 수 있었다고 토로하는 아들은 이 책에 기대 몸에 밴 추억 더듬기를 한 번 더 시도한다.
추억으로 남은 ‘식사’의 중심엔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자식들과 어머니가 없다면 중심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투병중임에도 “맥주 한 병 시켜서 한 잔씩만 나눠 마실까?”란 말을 서슴없이 던지던 아버지도 유별나지만 ‘가족식탁’을 제법 밥상다운 밥상으로 만들어주는 건 천연덕스러운 아이들만치 솔직한 아들이다. 아들은 “난 불효자입니다”란 흔한 말을 던지며 효자가 되지 않는다. 외려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들놈도 엄청나게 고단합니다”란 말로 시골집에 전화 한 번 드리지 못했던 우리네 자식들의 솔직한 변명을 대신해준다. 아버지만을 돌보면 좋으련만 이 시대의 자녀들은 낮이 되면 다시 정장을 잘 차려입고 직장인으로서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가족식사》의 소설가 아들은 철원과 서울, 병원과 직장을 오가면서 늘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생각하지만 일터에 돌아와선 다시 글을 쓰고, 읽는 일에 열중한다.
그렇다고 《가족식사》의 아들이 아들노릇과 직장인 노릇의 이중생활을 고통스럽게 추억하는 건 아니다. 아들은 한탄이나 반성보단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하면 어머니가 잠을 설치시겠지”라며 자의적인 판단을 해놓고 전화를 미뤘던 때도 있었노라고.
그런 아들이 글로 적으며 추억하는 아버지는 또 어떤가. 나라님 앞에서도 꿋꿋하고, 저승사자가 눈앞에 다가와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만큼 배포가 컸던 아버지. 아들은 아버지가 몰고 다니던 르망 자동차를 몰며, 남겨진 옷가지를 챙기며 그를 다시 만난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란 의미로 옷 속에 담배 한 갑을 넣고 다녔고, 구질구질한 꼴을 보이기 싫어 병상에서도 늘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아버지다.
《가족식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들이 기저귀를 찬 아버지를 화장실에 모시고 가서 눈물을 흘리는 부분이다. 아들은 남성성을 상징하는 자신의 뿌리가 어린아이의 그것마냥 변한 것도 모른 채 힘없이 서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린아이의 얼굴을 발견한다. 우린 한 남자가 쉽게 굽힐 줄 모르던 자신의 생을 마감하며 태어났던 모습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들을 지켜볼 수 있다.
아들이 유산이라 부르며 챙겼던 물품은 아버지가 생전에 입었던 일곱 벌의 셔츠와 돌아가시기 전 입에 물었던 거즈. 추억을 좋아하는 아들을 아버지가 계셨던 과거로 데려갈 것들은 참으로 많다. 아들은 아버지가 떠나기 전 입에 댔던 요구르트를 보며, 좋아하셨던 막내 조카를 보며 그를 추억할 수 있다. 그래도 행여 잊어나 버릴까 “아버지 옛날 모습도 보고 싶고…”라며 슬쩍 아버지의 앨범도 챙겨본다. 그 사이 꼭 맞는 와이셔츠를 입으며 자신이 아버지와 닮아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화가, 애니매이션 제작가, 영화학 강사로 활동한 존 휴즈의 추억에도 아버지의 얼굴이 있다. 존 휴즈가 아버지를 추억하는 방법은 막 그려놓은 듯 거친 느낌이 묻어나는 그림을 통해서다. ‘환쟁이’라며 그를 홀대했던 아버지를 유명한 화가가 되어 그림으로 추억한다니 이보다 더한 복수도 없다. 그러나 실상 《아버지와 나》를 펼치면 아들은 복수 대신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소설가 임동헌이 아버지를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될 병을 앓은 것처럼 화가 존 휴즈도 아버지를 그리지 않으면 안 될 마음의 병을 안고 있었는진 모를 일. 그러나 책날개에 아버지와의 사진부터 걸어놓은 걸 보니 그 역시 이 책으로 마음의 병을 씻고 아버지와 화해를 해보겠다고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자식은 ‘숙명’으로 만난다. 피는 그만치 진하고 질긴 것이라고 자식과 티격태격하다 왕래를 끊었던 부모들은 노년이 돼 자식 품에 안겨본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이 방면에 소질이 있던 아들을 ‘환쟁이’라 홀대하던 존 휴즈의 아버지도 비슷한 경우다.
《가족식사》의 아버지가 굽힘없이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였던 것처럼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 역시 젊은 시절 루터파 교회의 목사로 열정적인 선교활동을 펼쳐온 인물. 아들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정열적으로 설교를 하고, 농구팀 코치로까지 활약하는 아버지를 낯설게 바라보며 성장했단다.
아들의 도움 따윈 받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대게 된 건 일흔을 넘긴 이후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서부터다. 심각한 기억력 감퇴와 누구도 당해낼 재간 없이 센 고집 때문에 아버진 요양원과 병원을 나올 위기에 처한다. 존 휴즈에겐 이제 “누가 아버지를 돌보나?”란 현실적인 숙제들이 던져진다. 흥미롭게도 존 휴즈는 《가족식사》의 아들마냥 어느 때보다 솔직해진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남김으로서 어깨를 짓누르던 짐들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낚시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다. 《가족식사》의 아버지가 귀저기를 차고 누런 똥을 싸면서 어린아이의 얼굴을 닮아갔다면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는 “너는 내가 건강해지는 게 싫지?”라는 철없는 질문으로 자신의 늙어감 곧 아이로 돌아감을 알린다. 아들은 묘비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를 닮은 자신의 손 그리고 곧 자신도 걸릴지 모를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아버지를 추억한다. “왜 아버지와의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았던가”란 후회도 함께 놓여있다.
‘추억’하니 우리네 삶이 충만해진다. 투병으로 세상과 멀어지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아들들은 아버지와 만나고 화해하며 자기 자신의 얼굴과 마주한다. 소설가 임동헌과 화가 존 휴즈에게 추억이란 곧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이 되었던 셈이다.
한편 암과 알츠하이머병이란 투병기에 유독 관심을 갖는 독자가 있다면 외과병리학자가 쓴 《고통과의 화해》를 권하고프다. 질병, 노화, 죽음의 과정 속에서 인간이 질병과 어떻게 싸워나가고 화해하는가를 환자들의 다양한 사연을 빌어 보여주는 책이다.
출저 : 출판저널 11월호 김청연 기자의 특별한 책읽기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