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등지고 세상을 가르친 연암] 정병경
ㅡ재능의 달인을 찾아나서다ㅡ
나에게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 연암 박지원과 선귤당 이덕무,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인물은 한양대 정민 교수이다. 대면한 적은 없지만 이름만 떠올려도 온정이 느껴진다. 마음이 공허할 때 명사들의 명문장으로 양분을 취하고 있다. 눈으로 읽고 스치기보다 정민 교수처럼 베끼는 습관이 있다. 장마와 폭염 때 내게는 독서의 계절이다. 습기 머금은 먹향을 음미하며 빗소리를 가락으로 여긴다.
북학파 거두인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쓴 주인공이다. 세심한 성격과 문장력은 조선시대 학자의 본보기로 일컫는다. 후학으로 이름이 알려진 박제가와 이덕무, 유득공 등은 규장각 고문해설자로 활약하게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서자 출신이다. 정조로부터 학식을 인정받아 등용된 인물로서 학자들의 교감이 되는 모범인이다. 300년간 막힌 서얼들의 벼슬길이 열린 것은 연암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력을 인정받으면서도 관직에 나서지 않은 연암이다. 50세에 선공감 감역 관직(종9품)을 받게 된다. 안의현감 4년과 면천군수와 양양부사로 승진하지만 70의 고령에 접어들어 기량을 다 펼치지 못한다. 연암을 곁에 둔 정조가 세상과 이별하니 마치 하늘이 꺼지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16세에 이보천 딸과 결혼한 연암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장인의 추천으로 처숙인 이양천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40세 되는 해에 스승이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어 또 한 번의 시련을 겪게된다. 처남 이재성과 교우관계로 한 시대를 이어가며 학문에 몰두한다. 절친한 친구이자 선배 홍대용은 서구 과학사상에 매료됨을 곁에서 보며 서로 교학상장이 된다.
연암이 스승에게 쓴 제문 일부를 읽어본다. "스승은 저에게 산문散文은 한유韓愈의 뼈로 만들고, 시詩는 두보杜甫의 살갖을 갈아 만들어 재주 없는 사람을 가르쳤습니다."(하략) 구구절절한 제문에는 제자의 마음을 오롯이 담았다. 스승으로부터 학식을 이어받아 날로 우일신이다.
정철조와 이서구, 유득공과 서상수 등이 그의 집에 자주 찾아와 학문을 공유하며 지식도 넓히게 된다. 연암의 문장력을 높이 평가한 홍대용이다. 그는 53세(정조7년)에 숨을 거두게 되어 아쉬움이 더한다. 이 때 연암은 47세에 접어든다. 궁핍한 시절의 친구들이 점점 사라지니 허전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가장 아끼는 맏누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연암고을에 은거하며 호를 연암燕巖이라 짓는다. 누이에게 남긴 제문을 몇구절 들춰본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 때 갓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 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잖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어뜨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을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이하생략)
인정스럽고 마음이 따뜻한 누이를 아끼며 정을 준 동생 연암이다. 측근을 떠나보내며 쓴 제문이 많다.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면서 배려심과 관용을 갖춘 통찰력의 달인이다. 연암이 펴낸 글을 읽다보면 독서삼매경에 빠지게된다. 구태의연한 삶보다 남의 것에 대해 흉내내지 않고 자신만이 지닌 색깔을 창조해낸다. 옳고 그름의 분별력이 확실한 인물이다. 까마귀를 모델로 쓴 글에서 예리함과 판단력을 발견한다. "까마귀는 과연 검기는 검다. 그러나 누가 다시 이른바 푸르고 붉은 것이 깃든 줄 알겠는가? 물은 검기(玄) 때문에 비추고, 칠(漆)은 검은 (黑) 까닭에 거울이 된다. 형상(形) 있는 것에 태(態)가 없는 것은 없다." 연암의 글에서 옮긴 것이다.
글을 읽다보면 사물의 내면에 숨겨진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인간미가 있고 조선의 문장가로서 만인에 귀감이 되는 위대한 사상가이며 대문호이다. 무언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를 추억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의 정신력을 이어받고싶다. 연암을 비롯한 학자들의 명문장 덕분에 장마와 폭염도 지혜롭게 이겨내고 있다.
2024.08.06.
첫댓글 장마와 폭염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학자들의 명문장을 만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