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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가 밤이 늦어 길을 잃었다. 산중에서 초가를 발견해 찾아가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초가에는 처녀 혼자 살고 있었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둘은 혼인을 약속했고, 다음 날 선비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떠나며 백 일 뒤에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선비는 일 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아들을 낳고도 기도를 하던 처녀는 지쳐 죽고 말았다. 과거에 급제한 뒤 돌아온 선비 역시 죽은 처녀를 안고 울다 숨을 거두었다. 훗날 처녀가 낳은 아들이 자라 부모의 애틋한 사연을 듣고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이때부터 갸륵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해서 미라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라골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이송천리에 있는 자연마을이다. 미라골, 또는 미라곡(美羅谷)이라고도 불린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 해가 저물어 칠흑같이 캄캄한데 길까지 잃고 말았다. 산중이라 하룻밤 묵어갈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던 선비의 눈에 저 멀리 반짝거리는 작은 불빛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선비는 뛰어갔더니 자그마한 초가집이 나타났다. 선비는 울타리 밖에서 조심스럽게 주인을 불러보았다. “이리 오너라.” 인기척이 없었다. 조금 더 목소리를 돋우었다. “이리 오너라.” 이윽고 조심스럽게 방문이 열리더니 웬 처녀가 나오는 것이었다.
처녀는 선비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옆으로 비껴서 물었다. “밤이 깊은데 무슨 일이십니까?” 선비는 조심스럽게 부탁해 보았다. “과거를 보러 가는 나그네입니다. 밤은 깊었는데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묵을 데가 마땅치 않아 그러니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겠습니까?” 처녀는 혼자 사는 집인데다 방도 한 칸뿐이라 어렵다고 거절했다. 다른 집을 알아보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 선비는 사정사정했다. 선비의 처지가 몹시 딱해 보였던 처녀는 망설임 끝에 승낙을 했다. 처녀를 따라 방으로 들어온 선비는 비로소 처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등잔불 아래 마주한 처녀는 몹시 아름다웠다. 첫눈에 반해버린 선비는 용기를 내어 처녀에게 혼인해줄 것을 청했다. 처녀 역시 선비에게 호감을 느꼈던 까닭에 혼인을 약속했다.
다음 날, 선비는 과거길에 오르며 처녀에게 단단히 약속했다. “내 백 일 뒤에 꼭 과거에 합격해서 돌아오리다. 그때 정식으로 혼례를 치릅시다.” 처녀는 선비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백 일이 지나고 이백 일이 지나고 일 년 가까이 되도록 선비의 소식은 꿩궈 먹은 자리였다. 처녀는 선비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매일같이 기도하기를 잊지 않았다. 선비가 떠나고 열 달이 되어 처녀는 아들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기도에 전념하던 처녀는 몸이 점점 쇠약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몸과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던 처녀는 너무 지쳐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때마침 과거에 급제한 선비가 처녀의 집으로 돌아왔다. 기쁜 소식을 한시바삐 전하고 싶었으나 처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선비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뒷산 바위 아래 쓰러져 있는 처녀를 발견했다. 선비는 처녀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소식을 전하지 않은 자신의 무심함을 후회하며 몇 날 며칠을 울다가 선비 역시 죽고 말았다.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처녀와 선비의 시체는 바위로 변하였는데 지금도 삿갓바위란 이름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고 한다. 처녀가 죽을 무렵 낳은 아들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잘 자랐다. 성장한 뒤 부모의 애틋한 사연을 알게 된 아들은 근처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부모의 넋을 위로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후 그곳은 선비와 처녀의 자손들이 선대를 기억하며 대를 이어 사는 갸륵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해서 미라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단행본
경상북도교육위원회. 경상북도 지명유래총람. 대구: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84.
웹페이지
두산백과, "이송천리",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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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처녀와 선비의 이야기
선비와 처녀의 자손들이 선대를 기억하며
대를 이어 사는 갸륵하고 아름다운 마을
이라고 해서 "미라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동받고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