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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밝은인터넷세상만들기 운동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한승환
“진짜 죽은 담에 아부지랑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니?”
“응. 거긴 배도 아이 고프구 아픈 데도 없는 그런 데란다.”
“그래두 비는 왔음 좋겠다.”
소년은 나지막이 읊조린다.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같은 실화입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팝콘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눈물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영화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였습니다.
네 시간 동안 아들을 업고 강을 건넌 탈북자가 있었습니다.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강인한 여인의 눈이 저에게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왜,
왜,
꼭 보여주어야만 믿느냐고...
이 영화는 한국의 수치입니다. 이 영화는 한국의 거울입니다.
누굴 기다렸나요.. 아직 기다리나요.. 지친 두 눈감을때 우는 가슴 멈출 때 끝까지 기다리던 그 사람 누군가요..
메마른 눈이 감기면 세상 놓아지나요.. 그대 마른 입술에 꿈에서도 부르던 그 사람의 이름 그 무엇인가요..
우리는 하나죠.. 그 이름 하나죠.. 모르는 사이라 말하지 않을게요
이미 그댄 나의 이웃이요, 형제요, 모두죠. 다함께 울어요 Cry with us..
그대 흐르는 눈물 내 볼을 따라 흘러요. 내가 흘리는 눈물 그대 마음 적시듯 그 오래 전부터 우린 하나였죠..
우리는 하나죠. 그 이름 하나죠.. 모르는 사이라 말하지 않을게요
이미 그댄 나의 이웃이요, 형제요, 모두죠. 다함께 울어요 Cry with us..
지쳐 쓰러져서 의지할 곳 없을 때 가쁜 숨소리나마 외면당할 때
그대 내손 잡아요.. 우리 함께 걸어요.. 함께 소망하는 내일을 위해...
우리는 하나죠 그 이름 하나죠.. 모르는 사이라 말하지 않을게요
꼭 잡은 손 이제 놓지마요 그 누가 뭐라해도 처음부터 우린 하나 함께하는 우린 하나 영원히...
이미 그댄 나의 이웃이요 형제요 모두죠 처음부터 우린 하나 우리 함께 해요, Cry with us..
언제까지 우린 하나 Cry with us..
크로싱이 북한 실상에 대한 폭로로써의 역할을 다한 작품의 시작이라면, 여기 또 다시 북한 주민들의 믿기 힘든 실상들을 폭로하고 그들의 아픔을 호소하고자 하는 실화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고 더 심한 비극과 아픔, 고통들이 북한주민들 가운데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남한이란 작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갇혀 북한의 실상을 여실히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막연하게 굶주림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아는 선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뒤로 이어지는 참혹한 오늘날 북한의 실상들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북한 수용소
빵과 순결
《영화후기》
제목: 이들은 나의 부모 형제, 나의 분신입니다.
후기 작성자: 천사나무 2008-07-09
영화가 끝난 후,
이리도 가까이 내 동포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는데
우리의 무기력함에 부끄러움과 죄송함으로
영화보는 내내 내 마음은 중국으로 날아가
이들을 어떻게 하면 대량 탈출시킬 수 있을까
이제 더이상 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부모형제, 친구,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제목: 최고였습니다. 가슴이 이토록 아픈적은....너무나 필요한 영화!!
후기남긴이: 북한사랑
이 영화를 통해 북한을 향한 마음이 더욱 커져갑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두고 와서 밤낮 기다리며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가까운 우리 반쪽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실정입니다. 이 영화는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입니다. 영화 보는 내내 가슴이 너무도 아파왔습니다. 그 느낌을 잊지 못해서 이렇게 글로 남깁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 차인표의 131일 간의 기록중에서......
2007년 5월16일
다음날, 우리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300 키로 정도 떨어진 사막의 게르(몽골 천막)에 여장을 풀었다. 나는 영화사의 H 피디와 게르를 같이 쓰기로 했다. 게르의 조그만 나무문으로부터 왼쪽의 침대에 내가 자리를 잡고, 중앙에 양철로 된 난로와 장작더미 건너편으로 H 피디의 침대가 있었다. 2007년 5월16일, 이날 저녁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덟 시간이 넘게 사막을 가로질러 도착한 사막 한 복판의 텅 빈 게르촌에는 크로싱 제작팀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공동 샤워장의 더운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상당히 오래 걸리긴 했지만, 샤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개운한 몸으로 저녁 8시30분경 일행들과 식당에 모여 밥을 먹는데, 밥이 먹히지를 않았다.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한 일행들에게 미안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먼저 일어나 게르로 돌아왔다. 좁은 게르 안에는 이미 종업원이 피워 놓은 장작 난로가 활활 타서, 마치 찜질방에 온 것 마냥 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등골부터 소름이 오싹 끼치더니 심장까지 떨리면서 오한이 났다. 처음 경험하는 심한 오한이었다. 더 생각할 겨를 없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그 위로 담요까지 눌러 덮었다. 조금 있으면 가시리라 생각했던 오한은 두꺼운 이불과 담요 속에 있는 나를 계속 괴롭혔다. 약 1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를 품고 있던 양철 난로는 그 열기가 정점에 이르러 겉 표면까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얼굴로 오는 열기가 너무 뜨거워 돌아누웠다. 외부에서 전해지는 이 열기와는 상관없이 내 몸은 심하게 떨렸고, 세포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한기에 곧 심장이 얼어붙어 버릴 것만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H 피디가 안경너머 걱정스러운 눈으로 달달 떨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난로에 장작을 계속해서 집어넣었다. 난로가 뜨거워지다 못해 폭탄처럼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구토가 시작되었다. 세 번인가, 네 번 이어졌다. 구토가 나올 때 마다 나는 맨 발로 게르밖의 어둠속으로 뛰쳐 나갔다. 밖으로 나갈 때 마다 엄습하는 한기 때문에 구토를 다 마치지 못하고 다시 침대로 뛰어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내 안의 오물들을 빼내면서,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 밤하늘에 별들이 보였다. 쏟아질 듯 가깝게 내려온 수많은 별들이 거대한 양탄자처럼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대자연의 거대함과 찬란함이 잠시 동안 한기를 잊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떤 생각이 쏜살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그랬구나. 그들은 이렇게 죽어갔겠구나” 맞다. 몽골 사막을 헤매다 얼어 죽어 간 수많은 탈북자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바라 본 풍경도 바로 저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빛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어찌할 수 없는 오한을 느끼며 사막 어디에선가 누워 한참을 떨다가, 조용히 마른 두 눈을 감았을 것이다. 침대에 돌아와 다시 눕자, 터질 것 같은 심장 속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만함을 버려라. 겸손해라. 너를 버리고 나를 받아라.” 그날 이후,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사흘째가 되자 정말 배가 고팠다.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겨우 사흘을 굶었을 뿐인데, 나는 세상에서 제일 배고픈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득 그들과 조금 더 가까워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농담
1차 한국촬영을 마친 우리는, 2007년 7월 말경 중국으로 건너갔다.
탈북자들이 공안에게 쫓기는 장면을 촬영하던 날은 참 더웠다.
무더위에 지쳐 살살 뛰는 중국 공안들에게 현지 코디가 이렇게 주문했다.
“실제로 한명이라도 잡는 사람을 제일 먼저 쉬게 해주겠습니다.”
촬영이 시작되자 모두들 전속력으로 뛰었다. 하루 종일 뛰고, 달리고, 또 뛰고, 계속 달렸다.
정신없이 달리는 데, 탈북자들이 핀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핀볼은 한때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던 게임이다. 상자 안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대기를 잡고 있다가 핀볼이라 불리는 조그만 쇠공이 굴러 오면 있는 힘껏 공을 튕겨내는 게임이다. 작대기가 세게 때릴수록 공은 멀리 굴러간다. 튕겨진 공은 이리 저리 굴러다니며 상자 안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 부딪히는 데, 벽에도 튕겨내는 장치가 되어 있어 다가오는 공을 계속해서 밀어낸다. 공은 단 한순간도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그렇게 굴러다니던 공이 구멍에 빠져 사라지고 나면 게임이 끝난다.
뙤약볕아래에서 혀를 쭉 빼고 멍멍이처럼 헥헥 거리던 나는 내 옆을 지키던 탈북자출신 사투리선생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웃고 돌아서는 데 그의 납작한 뒤통수가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넌 뛰다가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뛰면 되잖아. 다 뛰고 나면 호텔로 돌아가서 배불리 먹고, 잘 거잖아. 우리는.. 아무리 뛰어도 돌아갈 곳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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