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터는 미국사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현대의 역사와 문화를 주도하는 나라가 미국임으로
미국 이야기를 하고, 다른 나라 이야기도 참고로 올리겠습니다.)
내 컴의 자료가 날아가버려서 ----
미국사(1) - 코카콜라 이야기
우리가 문학 사랑방에서 공부하는 내용들이 19세기 말에 다다랐습니다.
소위 현대라고 하는 시대는 거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듯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 지를 보겠습니다.
물론 유럽 등의 세계도, 우리나라의 변화도 보겠습니다만,
1865년에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사회가 변화하는 여러 조짐이 보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매약 선풍이 불었습니다. 아마조 의사가 부족하여, 약으로 해결하려는 풍조 때문이 아닌가고 합니다. 코카콜라가 태어나는 배경도 맞물려 있습니다.
1886년에 조지아 주의 출신으로 애틀란트로 가서 의시 개업을 하는 늙은 의사 존. S. 팸버톤(1831-1888)도 뒷 마당에 솥을 걸어놓고, 이것저것을 조합하여 끓이고 있었다. 이때는 코카인의 인기가 아주 높았다고 한다.
프로이드도 코카인은 우울증 치료제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때 애틀란트에서 금주법이 발효하였다(1885-86에 실험적으로 실시하였다고 한다.) 코카인이 든 제품이 날개가 돋힌 듯이 팔려나갔다. 코카인을 함유한 코카의 잎이 등러갔고, 결정적인 요인은 탄산수로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가슴이 탁 터지는 시원함이 ---
그러나 무엇보다도 코카콜라의 성공 요인으로 광고효과를 꼽는다.(광곤는 매스컴의 영향력을 의미한다.)
1886년에 ‘애틀란트 저널’에 나온 최초의 광고는 이렇다.
“코카콜라! 행긋하고, 시원하고,마음을 유쾌하게 하며, 기운이 넘치게 한다.!”
핌버톤은 광고 효과를 읻었고, 광고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전쟁 중의 병사들에게 코카콜라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의 광고 문구 중의 하나는 ‘갈증에는 계절이 없다.’ 였다. 정말로 코카콜라는 계절에 관계없이 팔려나갔다.
1920년 대의 금주법은 코카콜라의 급성장에 엔진 역할을 했다.
1891년에 경쟁사로 펩시콜라가 나타났지만, 100년 동안이나 펩시는 항상 2위였다. 최근에 와서 1위를 함으로 역전되었다고 한다.(2005년에 펩시가 1위가 되었다.)
진주만 폭격이 있자. 코카콜라 광고는 재빠르게 애국심과 코카콜라를 연계시켰다. 2차 대전 중에는 유럽으로 파견된 병사들이 코카를 찾았고, 당시의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군 수뇌부는 병사에게 코카를 무한정으로 공급하였다. 코카콜라는 미군 병사를 벗어나서 전세계에 퍼졌다. 이로서 코카콜라는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
미국의 제국주의 성향을 성토할 때, 코카콜라 안 마시기 운동으로 번졌다.
1950년 5월에는 뉴욕 타임지가 표지 사진으로 싣고 특집 기사를 냈다.
코카콜라 회사도 코카콜라에 코카인을 뻬버렸다.
코카콜라가 성공한 이유를
미국에서 전 지역으로 판매망을 구축하여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광고 효과를 최대로 이용했다.
애굮심과 연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