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지역 망해사 부근 만경강에 순천만과 같은 습지 공원과 국가 정원을 조성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초가을 새만금청 관계자들과 새만금 일대를 답사했다. 새만금 사업 지역에 생태 탐방로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군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김제와 부안 지역을 탐방하던 중, 김제시 만경면 몽포마을 부근에서 끝없이 펼쳐진 갈대숲이 눈길을 끌었다.
그것도 잠시 망해사에 이르자. 눈앞이 환하게 열렸다. 망해사를 찾은 지 몇 년 만에 놀랍게 변신한 만경강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순천만 갈대숲에 비견 될 갈대숲이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이다.
바다와 만나는 강의 하구에 아름다운 절이 날아갈 듯 서 있는데, 그 절이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망해사望海寺다. 만경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절로, 이름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절이다.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이 절은 754년(경덕왕 13) 법사 통장(通藏)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642년(의자왕 2) 거사 부설(浮雪)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고려 문종 때에 심월(心月)과 공민왕 때에 지각(智覺)이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의 숭유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거의 폐허화되었던 것을 인조 때인 1624년에 조사 진묵(震默)이 중창하였다. 진묵은 이곳에 머물면서 많은 이적을 남겼는데 그 일화들이 오늘날까지 널리 전승되고 있다.
이 절에는 낙서전樂西殿, 법당인 극락전, 종루, 청조헌聽潮軒 등이 조촐하게 들어서 있는데, 낙서전이나 청조헌 등의 이름까지도 모두 바다를 보면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낙서전은 조선 인조 2년(1624)에 진묵대사震黙大師가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바다 쪽으로 한쪽이 튀어나온 ‘ㄱ’ 자 건물로 낙서전 마루에 걸터앉아 바다 건너 고군산열도를 바라보면 가슴이 활짝 열리는 것 같다. 유서 깊은 이 절을 문화재청에서 국가유산인 명승으로 지정 예고 했으나 2024년 4월 14일에 극락전이 화재로 손실되고 말았다. 진묵대사는 이 절과 인연이 깊은데,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이라 불릴 만큼 법력이 높았던 조선 중기의 승려로 김제 만경 태생이다. 선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경 읽는 일로 일생을 마친 그의 행적은 전설로만 남아 세상에 떠돌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은고隱皐 김기종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모아 초의대사에게 전기를 쓰게 하였다. 진묵대사와 오랜 교분을 맺었던 봉곡鳳谷 김동준의 일기에 “이분은 중이기는 하나 유림의 행동을 하였으니 슬픈 마음 참을 수 없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진묵대사는 승려로서 불경뿐 아니라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효성이 지극했던 진묵대사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만경 북면北面 유앙산維仰山에 장사를 지냈다. 오늘날의 성모암 옆자린데, 그 자리가 연화부수형으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어머니를 모신 그날 진묵대사는 목수를 불러 현판을 만들고 스스로 붓을 들어 이렇게 썼다고 한다.
“여기 이 묘는 만경현 불거촌에서 나서 출가 사문이 된 진묵일옥의 어머니를 모셨는바, 누구든지 풍년을 바라거나 질병을 낫기를 바라거든 이 묘를 잘 받들지니라. 만일 정성껏 받든 이가 영험을 못 받았거든 이 진묵이 대신 결초보은하리라.”
그 후 그 마을 사람들로부터 봉분을 사초하고 향화를 올리면 여러 가지 영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서 오늘날까지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진묵대사는 이런 게를 남겼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으로 요를 펴놓으니
산은 절로 베개로다.
달은 등불이요, 구름은 병풍이라.
바닷물로 술잔을 하여 거나하게 취한 끝에
일어서서 춤을 추고 싶은데
곤륜산에 소맷자락이 걸쳐지는 아니꼼이여.
국가유산청에서 국가 명승으로 지정한 망해사는 지금은 바다가 아닌 새만금을 바라보고 있다. 98킬로미터 사행하천이었다가 일제 때의 직강화로 인해 82킬로미터로 줄어든 만경강의 하구는 김제시 진봉면과 군산시 회현면 사이인데, 바다를 바라보는 절인 망해사가 놀랍게 변신했다. 새만금개발이 시작되고, 불과 몇 년 사이 만경강에 절묘하게 강과 어우러진 갈대숲이 나타난 것이다.
군산과 김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만경강 하류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순천만 갈대숲에 비견 될 갈대숲이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이다.
망해사에서 만강강 가로 살포시 내려가 황동규의 시 ‘기도’의 한 대목을 떠 올려도 좋으리라.
“내 당신은 미워한다 하여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江邊을 보여 주며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姿勢를 보여주겠습니다.”
전북자치도와 김제시, 그리고 군산시에서 김제시 청하면 몽포에서 망해사 지나 심포에 이르는 만경강 갈대숲을 잘 보존하여 그곳에 최소한의 편의 시설을 만든다면 훌륭한 생태공원이 조성될 것이다.
만경강 건너에 있는 군산시 옥구읍 월연리 수산리 일대의 갈대숲을 환경 친화적인 구름다리로 연결하여 새롭게 조성될 새만금지역의 관광자원과 연계한다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허황하면서도 돈키호테같은 생각이라고 말할지 모르는 얘기지만 만주벌판이나 몽고 초원 같이 광활하게 펼쳐진 새만금에다가 게르도 짓고, 양이나 말들도 풀어놓아 비행기를 타지 않고서 즐기는 몽고체험장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꾼다.
“항상 꿈을 꾸게나, 꿈은 공짜 라네“ 프랑스의 철학자인 장 그르니에의 말을 회상하면서
2024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