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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31
"저도 알렉스. 당신을 꼭 만나야되요. 움직이지 마시고 그곳에 기다리고 있어요. 아셨죠? 늦어도 저녁식사때 전에는 도착할거예요."
춘자는 이제 걱정을 놓았다. 알렉스를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는 뭐든 다 날 위해 해결해 줄거라는 믿음을 가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짐이라야 빽색 하나지만 얼른 챙겨서 이곳을 떠나 대전으로 가고 싶었다.
알렉스는 춘자와 통화가 끝나자 인터넷에서 대전의 소식을 알려고 컴퓨터를 열었다. 그리고 찾아 들어간 대전뉴스에서 그는 긴장하였다. 오른쪽에 있는 작은 박스안의 뉴스에는 '중견작곡가 정지훈 자살미수로 병원에 입원하다' 였다. 이 기사는 한 눈에 기자가 작성한 정규기사가 아님을 알렉스는 파악하였다. 그러나 이메일 주소는 참고될 것 같아서 메모해 놓았다. 그 다음 놀라운 것은 그 기사 아래 쓰여진 댓글들이었다. 이미 100여개가 달려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너 아이디의 장문의 댓글이었고 그 댓글에 달린 꼬리글 들 이었다. 장문의 댓글은 작곡자와 여류시인이자 낭송가며 작사가인 중년여성과의 은밀한 관계에 대한 비난의 글이었다.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쓴 것으로 짐작하여 지인이며 삶의 내공이 어느 정도 갖춰진 사람의 글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 아이디는 3개의 댓글에 달린 꼬리글에 일일이 답하고 있었다. 거의 모두가 여류시인의 부도덕한 행위를 비난하고 있었다. 정지훈이 두 사람의 만남을 찍은 사람에게 폭행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많은 싸이트에 무차별적으로 글을 올리고 비방을 하였다는 상황이다. 알렉스는 정밀조사를 하듯 세밀하게 올린 아이디를 조사하다가 다시 놀랐다. '내춘자' '불사조' '꼽는남' '솔향' 이 네개의 아이디가 글과 댓글과 꼬리글을 주도하고 있음을 찾아냈다. 그는 우선 인터넷법(?)의 저촉 여부를 확인하였다. 정지훈에 대한 비방과 모욕적인 글과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사진들과 얼굴이 지워진 17금 류의 사진들이 함께 있었다. 올린 글들이 거의 사실성과 진실성은 없어 보였지만 흥미를 끌도록 하였다. 그러나 읽은 당사자들은 심적 정신적 충격을 받기에는 충분하였다. 마침내 알렉스는 한곳 포털싸이트에서 권진혁이란 이름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와 관계된 몇몇 정보를 찾아내었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았기에 확인이 필요하였다. 그는 이메일 주소와 그것들을 한곳에 메모하여 두었다.
"선생님. 이야기할 수 있어요?"
조수연이었다. 그는 랩탑을 덮었다.
"아. 조 기자. 좋습니다. 어디서 전화하는 겁니까?별 일은 없지요?"
"아니예요. 선생님. 별 일있어요. 지금 막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전화하는거예요."
"무슨 일? 사건? 사고?"
그는 놀라며 직업같이 물었다.
"선생님 혹시 정지훈이라고 들어봤어요? 중견 작곡가겸 통키타 가수예요."
알렉스는 원체 사회적 관계가 부족한 사람이었고 기억력도 나쁜 사람이었다.
"글쎄요. 기억에 없는 걸 보니 내가 모르는 사람같군요."
"아이참. 전에 피춘자 시인님이 시낭송하고 노래했던 그 공연에서 통키타를 치며 노래했었던 그 정지훈 작곡가를 모르세요?"
"응. 나는 모르는데... 아. 알아.확실치는 않지만. 지금 인터넷에서 누가 쓰서 올린 글들을 찾아 읽고 있었던 중이었어요. 피춘자 시인과 정지훈에 대한 음해 글들이 난무해서 걱정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 정지훈 작곡가?"
"선생님이 그 글들을 읽어셨어요? 어떻게해요. 그 정지훈 작곡가가 음독자실을 시도했는데 지금 병원에 입원하고 있데요."
"그럼 죽지는 않았군."
"네. 자살미수로 소문나고 있어요."
"당분간 피춘자 시인에게는 알리지 않은게 좋겠군요."
"어머. 늦었어요. 좀 전에 통화를 가졌는데 제주에서 출발한다고 그랬어요. 천삼분 사장님이 전화로 알려주었어요. 병원까지 알고 계세요. 제대로 오실지 걱정되어요."
"알았어요. 혹시 연락오면 절대 병원으로는 보내지 말고 나에게 알려주십시요. 그리고 제주에서 가장 도착하기 쉬운 항공터미널이어디지요?"
"제주에서 오는 비행기는 대부분 김포공항이에요. 아마도 그곳에서 택시타고 오실 것 같아요."
"조수연 작가의 그 말에 걸었습니다. 내가 김포공항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조수연 기자 아니 작가님. 나준석 피디가 말해도 그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겁니다. 이런 난관을 전화위복으로 역전시켜야 해요. 내가 피춘자 시인을 만나면 전화하겠습니다. 다른 생각있습니까?"
조수연은 난감했던 마음이 알렉스의 각오로 오히려 힘이났다. 전화위복. 바로 그것이다. 우린해 낼 것이다. 자신이 용솟음쳤다.
"아니에요. 없어요. 선생님의 한마디가 오히려 힘이 되었어요. 그대로 밀고 나가겠습니다."
“ 좋아요. 믿음직해요."
“선생님. 우리 포기하지 않기로 해요. 선생님을 믿을께요.”
알렉스는 조수연과 전화가 끝나자 간단하게 메모를 한 랩탑을 빽색에 넣고 모텔을나섰다. 그러나 암담하였다.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까지 간다??? 시간 차이로 어쩌면 어긋날 수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휴대폰을 꺼냈다. 국내선은 비행기안에서도 전자기기 사용이 가능하였다.
“피춘자 시인?”
“알렉스?”
“지금 어딥니까?”
“비행기 안이예요. 곧 김포공항에 도착할건데요. 어디서 전화하시는 거예요?”
전화하기를 잘했구나 생각한 알렉스는 한편으로 아쉬웠다. 국내선 공항도 항공여행 출착지인데.
"피춘자 시인님. 지금 기분 어떻습니까? 잘 오실 수 있지요? 제가 공항으로 마중가려고 나왔는데 지금은 늦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 겠습니다. 제주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을 늦게 받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예. 좋아요. 도착해서 공항뻐스 타고 갈거예요. 아마도 1시간 30분안에 도착할 수 있을거예요. 도착하자 말자 전화할께요."
"아. 그러지말고 대전에 들어서면 전화주십시요. 공항뻐스가 첫번째로 도착하는 대전의 호텔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아셨지요?"
"예. 알았습니다. 충성!"
"좋다. 믿겠다. 편히 쉬어라. 충성! 그런데... 오른 손바닥을 오른쪽 이마 끝에 대었습니까?"
"아닌데요? 그냥말로 하는건데요."
"이런 정신나간 병사가 있나. 다시 실시한다. 실시!"
"어휴. 알렉스. 여긴 비행기 안이예요. 다들 보고있단 말이예요."
"이유없다. 전에 알으켜 준대로 하면된다. 즉각실시!"
"어흐흐. 예. 알았습니다. 충성!"
"잘했다. 이제 힘내라. 충성!"
피춘자는 진땀이 났다. 옆에 앉은 젊은청년이 '이 이쁜 중년여성이 뭐하고 있나?' 하듯 보고 있었다. 그래도 신이났다. 부끄러움도 생기지 않았다. 곧 알렉스를 만난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시간들이 다 날라가 버린 것 같았다. 춘자는 혼자서 생각했다. 이번에 만나면 말하는 것부터 고치자고 해야지. 말을 올렸다 내렸다 자기 맘대로였다. 하나로 통일하도록 해야 겠다는 작정을 했지만 쉽게 되지 않을 것도 알고있었다.
"아. 아저씬데 오랫만에 만나면 저래요. 좋잖아요. 하고나면 힘이 막 솟아요."
춘자는 웃으며 이해를 시키려 애썻다.
"예. 저도 알아요. 작년에 만기 전역했습니다. 갑자기 옆에서 아름다운 여자분이 충성 하니까 깜짝 놀랐지 뭡니까. 아직 군대에 있는건가 착각하게 해서요. 저도 여자친구 만나면 그렇게 해 보라고 알려줘야 겠습니다. 힘들때 서로에게 힘이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행위라면 왜 마다 하겠습니까."
"고마워요. 그렇게 좋게 이해하여 주셔서."
옆자리의 젊은 청년이 피춘자 시인을 계속 보고 있었다.
“왜, 뭐가 잘못되었어요?”
“아. 아닙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말씀하시는 것도 참 매력이 있습니다. 언뜻 중년여성의 아름다운 매력을 몽땅 다 가진 분 같아서 보는 것 만으로 즐겁습니다. 막 말하여서 죄송합니다.”
“듣기에 좋은 말만 하시는 젊은 야성과 지성이 번뜩이는 청년남자님. 참 부러워요. 보고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말 할 수 있고 육지에 내리면 절제된 행동도 하시겠죠? 멋진 삶 만들어 가시길 바래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렉스는 로얄대전 호텔 라비로 들어갔다. 공항뻐스가 대전에서 첫번째 정차하는 곳이었기 떄문에 미리 가서 컴퓨터로 확인할 것들을 하며 기다리기로 하였다. 뻐스의 도착 시각은 오후 4시였다. 시간은 충분하였다. 그는 라비의 길거리 우측 뻐스 정차장이 보이는 창가로 커피를 들고 가서 앉아 랩탑을 꺼냈다. 그는 곧 침범하여 피춘자의 정보를 탈취해 간 것으로 짐작되는 아이피(InternetProtocol)를 찾았다. 다행히 고정 아이피였다. 그는 권진혁이 사용한 아이피와 다른 닉네임으로 들어간 아이피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피춘자가 운영하는 까페에서 일부 사진들을 복사해 갔음을 확인했다. 더 이상 깊이 파헤칠 형법적 위험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다만 질투와 시기와 모함의 덩어리들이 그 글들에 잔인하게 나타났음을 알았다. 그러나 남성이 혼자서 그런 일을 저지르기에는 인과관계가 부족하였다. 공모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때 알렉스는 창문으로 공항뻐스가 와서 정차하는 것을 보고 급히 컴퓨터를 빽쌕에 넣어 매고 나갔다. 호텔 정문을 막 나서자 춘자가 내리며 알렉스를 보았다.
“알렉스~”
“피춘자 시인님.”
“아유. 뭐예요. 호칭 좀 바꿔요. 가까이하기 너무 어려워요.”
"어. 그거... 나중에 하기로 하고"
"안돼요! 왜 나중에 해요. 지금해요. 춘자야 하고 불러봐요. 어서요."
"그렇게 아직 잘 안돼. 하여튼 부를테니 지금은 넘어가."
"맨날 곤란하면 넘어가자 그러잖아요. 알았어요. 그런데 알렉스. 너무 반갑고 만나줘서 고마워요. 으아아앙-"
춘자는 그만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알렉스가 안았지만 막무가내였다. 난감해진 알렉스는 춘자를 안은채 호텔 벽쪽으로 데려갔다.
"이제 됐어. 그만해 춘자야."
"와. 했다. 금방 춘자라 불렀어요. 알렉스. 이제 그렇게 불러요. 아셨지요?"
도대체 소녀같아서 감당하기가 힘들구나 생각한 알렉스는 심각한 얼굴을 했다.
"알았어. 그런데 춘자야. 제주도에는 왜 갔어?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이 많아. 그러니 피곤하겠지만, 저쪽 호텔로 가자."
"호텔? 이낮에?"
호텔에서 나와 비행기를 탓을텐데... 놀라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 호텔. 둘이서 가자. 왜, 안돼? 아침에 호텔에서 나왔을 것 아냐?"
"으흐흥- 그래도... 낮인데."
"흠. 거절은 하지 않는구먼. 낮에 가지 밤에 가? 어서 따라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라비 커피샾으로 가자. 컨셉터가 있는 자리로. 베타리가 다 되었거든."
놀라서 춘자가 알렉스를 쳐다 보았다.
"왜? 룸으로가자. 하지 않아서 서운하십니까? 피춘자 시인님."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듯 춘자는 빽색의 어깨끈을 당겨 추스리며 미소를 지었다. 서운한 것 같기도 당연하단 것 같기도 하는 묘한 백치같은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