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미디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다음 세대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도 다 스마트 폰에 갇혀 삽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기기에 이방 땅에서 갇혀 살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믿는 자들도 스스로 스마트 폰에 갇혀, 미디어 포로로 갇혀 삽니다.
부모 세대에게 미디어 중독이 심각하지만,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는 더욱더 치명적입니다. 전두엽이 25세 정도에 다 계발이 되는데요. 그 이전에 미디어에 노출되면, 다음 세대 뇌는 파충류 뇌처럼 됩니다. 보고, 반응하는 후두엽만 반응하게 되고, 이성과 사고, 감정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은 계발이 되지 않습니다. 미디어에 계속 노출되면, 학습력은 상당히 떨어지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 멘토 아래 잘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스마트 폰을 가까이하면서, 오히려 스마트해지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게다가, 건강, 재정, 관계 다 무너집니다.
로마 시대는 관습법상 14세까지 후견인 아래 있었고, 25세까지 재산권을 청지기가 대신 관리했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직 더 보호받고, 재산을 잘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던 바울은 율법의 역할을 후견인과 청기지 관습을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왜 하나님의 백성이 율법 아래 있었는지 잘 설명하였습니다.
주인이 어릴 때는 종과 다름이 없어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초등학문과 같은 율법 아래서 종노릇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절에서 11절, “스마트 폰 바벨론에 갇힌 스마트하지 않은 자”, 성경하브루타코칭
4장 1절부터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불완전하고, 세상 초등학문과 같은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습니다. 왜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나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율법 아래에 있는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4절부터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우리는 다시 율법 아래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다시 초등학문 수준, 미디어 바벨론에 빠져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믿는 자를 종이 아니라, 중독, 우울, 상처의 종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5절에 ‘아들의 명분’이라는 헬라어로 ‘휘오데시안’(양자 됨)은 신약성경에서 바울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로 양자가 되었지만.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성도들이 천박한 초등학문과 같은 율법 아래로 들어가 다시 종노릇 하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신봉한 자들은 날, 달, 절기, 해를 삼가 지키고, 인간의 고행과 금욕을 통해 고통스럽게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8절부터 11절 말씀입니다.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속을 받는 것을 이미 아는 자들이 다시 예전 율법의 준수를 통한 헛된 수고에 빠져 사는 것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바울이 율법 자체를 지키는 것에 분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날, 달, 절기, 해를 지키면서 구원을 이루려고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누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나타내려고 합니다. 세상적 율법, 가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이 나 자신을 향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자유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갈라디이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바울은 율법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죄에서 벗어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음을 밝혀줍니다.
즉,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온전히 정당화되지 못하며, 오직 믿음을 통해 그 은혜를 받고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고로,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통한 정당화가 아니라 믿음을 통한 정당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율법적 요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자녀로 세상의 초등학문, 율법, 미디어 바벨론을 넘어, 주님이 이루신 구원에 감격하며 주님께 반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
같이 눈을 감고, 잠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