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버스 앞,뒷문 여자차장이 "오라잇!" "스톱!"하던 그 시절..
명동의 추억 1부
1970년대 초에는 서울의 연인이나 젊은들이
갈만한 곳이 지금에 비하면 그리 마땅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지요
청바지 통키타 장발족 미니스커트 나팔바지 배꼽바지 등이 유행하며
청바지는 쌍마! 그 당시도 청소년들의 전용 이미지 였고 비싸기도 했고,
월남전의 영향으로 저항가수 반전을 노래한 가수들이 많았습니다.밥딜런, 비틀즈등 외국 아티스트들의 영향이기도 했지요.
우리나라는 히식스 키보이스 등의 그룹이 인기있었습니다.
장발이나 청바지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 반정부적 의식을 내포 하고 있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미8군 피엑스에서 미8군 GI 들이나, 이태원등지에서 양키 물건장사에게 청바지를 구해 입기도 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싼가격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의 청소년 젊은이들의 문화의 꽃을 피운곳이 명동을 중심으로 한 을지로 종로 퇴계로
이대 홍대쪽으로 신촌 등 서울시내 각 대학가 주변이었습니다.
결국은 명동이 집결지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재건 데이트' 덕수궁 돌담길, 남산길..........
그 당시에는 등산을 많이 다녔지요 왜냐?
비용적 측변에서 부담이 가장 적고 갈만한 곳도 없으니까.
남영동쪽 성남,금성극장 조금 입장료가 덜한 극장가
영등포,화양리,청량리...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청소년들이 찾던 곳이라는 생각이들고........
입장료 비싼 개봉극장 대한극장 스카라 단성사 명보 중앙 피카디리극장 은 부담이 되고,
그리고, 생각나는 이름들 명칭 있으신가요!
장발족/장발족단속/통키타/국립극장/코스모스,명동백화점/튀김골목
필하모니/워싱톤/세시봉/늘봄/챔피온/예그린/쉘브르/카네기/본전/명동/청자/콘도라/챔피언/마음과마음/코스모포리탄/통드레와/사장실/꽃다방/르시랑스/을궁/ 을호/타임/대광/호수/상아탑/마음과마음/여심/별/교육문화회관/
서린호텔 쪽으로 1.2.3/파고파고/팽고팽고/라는 나이트 크럽이 있엇는데, 맥주만 나시는것이 아니고, 막걸리도 있어ㅏㅆ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입장료 남자200원, 여자무료 였던 것으로 생각 됩니다. 1980년대에는 한국의 3대 나이트크럽하면 타워호텔나이트크럽, 한강호텔나이트, 강남고속터미널 청록나이트크럽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1970년대 그 당시는 아직 나이트크럽이 그 수준에 미치지 않았을때라고 생각이 됩니다.
명동성당/중국대사관/ 뒷골목/딸라골목/명동칼국수/무교동낙지골목/
70년대 초 당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었던 가수 디제이 생각 나는 이름이
이종환/김추자/펄씨스터즈/신중현/조영남/김민기/이장희/윤형주/김세환/송창식/양희은/틔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
물론 최고의 흥행가수는 나훈아 남진이 쌍벽을 이루었는데, 당시 시민회관에서 칼부림 사태가 나기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외 조용필은 독보적인 존재였고, 이미자 김세레나 등 기성세대의 가수라고 했고 젊은이들은, 팝송이나 듣고외국 가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영어로 흥얼거려야 되는듯한 그런시대.......
별이빛나는밤에/밤을잊은그대에게/밤에플렛트홈/영시에 다이얼/이종환 /윤형주-이장희 명동백화점 3층 싸인 팬미팅, 악보 배부하고
어떠한 추억들이 있으셨나요? 1970년대 풍경 옛 생각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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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추억 2부
그건 그렇고.....그때...
장발족 단속이 심하던 때 이어서
짭새/파리(당시 경찰을 이렇게 불렀음)만 나타나면 골목길이 아수라장이되고
짭새에게 덤비고 사정하고 안끌려 갈려고 하는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이기도 하던 그런 시절 이었다.
파출소에 끌려가보면 파출소안이 꽉차
지금의 전철 러시아워를 방불케 할 정도 였다.
고분고분하면 "다음 부터는 머리 안 기르겠다고" 각서쓰고
가위로 머리 한쪽 썩둑 짤리고 손도장 지장찍고 뒤통수 한대 맞고 나오면 되었고.
좀 반항기가 있고 똥고집 부리다가는 되게 얻어 터지고
각서 쓰고 중부경찰서에서 하룻밤 구류 살고 나오고
그러던.........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없는 웃지못할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나던 그 시절 그래도 생각 키워지는 것은 왜인지?
그런가 하면 경찰관들이 "막대기 자"를 들고 다녔는데 이건 어디다 쓸려고?
치마가 짧다 싶으면 세워 놓고 무릎에서 치마 까지의 높이를 재어 몇 센치메터 이상이면 파출소 행이던 참 지나고 보니 한심한일인지 재미있는 일이었는지 그런 세상을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짧은 치마를 내려서 안끌려 가려고하면 경찰은 올려서 재려고 하구!
데이트 약속 해 놓고서는 남자는 장발족으로 잡혀 가버려...
여자는 미니스커트로 파출소로 끌려가....
이러니 만날수 있겠어요.
요사이 처럼 핸드폰이 있어 연락이 되나 답답할 노릇이지요.
그냥 마냥 기다리다가 "나를 우습게 봤어"하고는 깨지는것 아니겠어요.
그래도 재수 좋으면 어디서 다신 만나 데이트를 어디서 하는 줄 알아요.
둘다 장발족으로 미니스커트로 잡혀 와..
파출소에서 만나게 될 줄...
대단한 인연이다~! 해서 잘 되가지고 결혼했지요
자식들 출가까지 시키고.....
그래도 세월이 이렇게 지나니 그리운 자난날의 모습입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한 추억이 되고 말았지요
되살 수 없는 젊음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신 중년으로서의
모습을 다듬고 다듬어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을
오늘에 충실하며 내일을 기약 할 수 밖에...
본 내용은 체험 사실 그대로 입니다.
피카디리 극장 옆 종로2가 파출소에도 잡혀 들어갔었고
명동파출소에서는 혼잡한 틈을 이용해 도망나왔고,
가평 선착장에서 남이섬가는 배타려다 잡혀서 한쪽머리 짤리는 바람에 짤린채로 한여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머리 때문에 곤혹을 치르며 피해다니기를 얼마나 했던지 !
그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경험이 있으시거나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올드팝송 음악을 들으며 그때 그 생각에 가슴이 미어 질것같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난날들 .........
그립고 보고픈 그 친구들 지금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월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아름다운 세상과 함께 하시는 여러분의 건강 안녕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꿈만같던 그때는 어렵기만하든 그시절이 다시올수만 있다면 되돌려보고싶네요 아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