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수동교회에서 많은 영적체험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뒤에 엉뚱이는 전주에 개척하기 전 두 교회를 더 거쳤다. 그 곳은 정읍군 감곡면의 유정교회와 김제군 하정면에 있는 복지교회였다. 그런데 그 두곳 교회에서도 악령(귀신)과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부딪쳤다.
정읍 유정교회에서의 사건
유정교회는 사택이 두곳이었는데 새로진 신관에서는 저희가 살고 구 사택에선 정인복이란 집사와 김영자 집사(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정 형편을 듣자하니 며느리인 김영자집사님 사정이 딱하였다.
남편은 딸만 나놓고 가출해 버려 소식도 없는데다가 그 시어머니는 앉은뱅이가 되고(실제는 건강하지만) 지능은 3-4 세 아이처럼 어린양을 부렸다. 그러니 자기 두 딸과 아이가 되어버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내 눈에는 시어머니가 악령(귀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며느리 집사에게 귀신들려 저러는 것이다고 설명을 한뒤 축사를 하였다.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은 떠날찌어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성령 충만을 위해 안수 기도를 했다. 한달쯤 지나자 그 시어머니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말하는 것도 걷는 것도.
내가 유정교회를 떠나 김제 복지교회로 그리고 전주에 나온 뒤에도 그 며느리인 김영자집사는 나를 따라 김제로 전주로 이사를 했고 우리교회에서 충성스런 권사로 일하고 그 딸 중의 큰 딸은 사모가 되었다.
김제 복지교회에서의 사건
내 목회지역에는 30호가 살고 있는 수록리라는 동네도 포함되었는데 그곳에는 김제읍에서도 알아주는 점쟁이가 있었다. 그 동네는 교회에 나오고 싶어도 그 점쟁이가 하는 말이 무서워 전도가 안되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자기 죽을 것을 알고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출석하고 있는 교인에게 나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 집을 방문했더니 악령(귀신)에 붙들려 종이 된 모습은 참으로 흉하였다. 그래서 예배와 축사를 한 뒤 그 점쟁이가 자기가 점쟁이가 된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자신은 점쟁이가 되는 것을 싫어했으나 자기 난 아들 둘을 난지 삼 사흘후에 두번 씩이나 자기가 깔아서 죽게 되는 것을 보고 무서워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점쟁이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자기는 학교도 다니지 못한 일자 무식인데 자기에게 임한 귀신은 한학을 공부하고 일제 치하에서 경찰이었던 외 삼촌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왜 귀신이 자기를 죽은 사람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나중에 한 번 쓰련다)
점쟁이 생활 사십년을 하면서 귀신에게 시달려 몸이 아쁘고 회복이 되질 않아 김제 흥복사에 기도하러 갔더니 그 곳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이 당신은 앞으로 열흘 정도 살고 귀신이 데리러 올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도 귀신 종이 되었는데 죽어서도 자기가 귀신에게 종살이하는 것이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내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점치는 기구( 동자승과 목탁, 그리고 엽전 7개)를 불태워버리고 그 날이 토요일이어서 그대로 두면 다시 역사할 것 같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주일날 같이 예배를 드리고 나니 복수로 배가 남산만 했는데 뿍 꺼지고 얼굴도 화색이 돌아왔다.
그때 당시 엉뚱이는 신학생이라서 월요일 학교에 가야기에 서울로 가면서 아내에게 저사람 자기 집에 간다고 해도 보내주지 말고 당신이 나 올 때까지 꼭 같이 있어야 한다고 한뒤 서울에 있는 동안 사단이 났다.
집사람이 내 말을 듣고 보내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점쟁이가 하는 말 ' 그간 몸도 한번 안 씻어서 냄새가 나니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는 말을 듣고 그러라고 보내주었다는 것이었다(그 말은 사실이었다. 병에 찌들린 상태에서 입을 옷 그대로 입고 몸도 씻질 못했으니 말이다)
서울에 공부하러 간 사이 초상이 났고, 딸에게 유언하기를 나는 죽어도 귀신이 싫으니 너는 교회에 꼭 나가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주님께서 그 영혼을 긍휼히 여겨 십자가 상의 강도에게 한 것처럼 낙원을 허락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