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흔치 않은 풍경이지만 예전엔 운동회 때 선수선서는 빠지지 않는 의식이었다. 남녀학생이 조회대 앞에서 전교생을 대표해 공정하게 경쟁할 것을 다짐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법관 등도 취임이나 임용 때 반드시 선서를 한다. 법을 지키고 직무를 충실히 할 것을 맹세하는 일이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나이팅게일 선서, 법정에서 증인이나 감정인이 진실만 밝히겠다고 약속하는 선서도 있다.
선서는 만인 앞에서 서약을 공표하는 행위이다. 또 자기 자신에게 약속하는 고결한 서약의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모양새를 갖춰도 스스로에 대한 신뢰 없이는 쉽사리 가식이 되고 허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선서이다. 모든 선서는 양심에 비춰 한 점 부끄럼 없는 의식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공개적으로 선서를 거부한 일도 있다. 영국 교회사에서 선서거부는 국교회의 내분을 부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명예혁명으로 제임스2세가 쫓겨나자 일부 성직자들이 새 통치자 윌리엄3세에 대한 신종선서를 거부하고 이탈했다. 지위와 녹봉을 박탈당하면서도 선서를 거부한 배경에는 왕권신수설이란 명분이 있었다. 양심 때문에 선서를 거부한 경우도 있다. 절대미분학을 만든 이탈리아 수학자 레비치비타는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내세우며 파시스트당 정부에 대한 선서를 거부했다.
법무부가 검사 임용 때 사명감을 갖고 직분에 충실할 것을 맹세하는 '검사 선서'를 도입하기로 했다. 새 정부 들어 정치적 코드맞추기 혐의를 받고 있는 검찰로서 엉뚱해 보이는 데다, 그것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라니 뒷맛이 씁쓸하다.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선서보다는 내실을 꾀하는 자기 성찰이 더 절실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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