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朝鮮) 사람이 지은 ‘한도십영’(漢都十詠)이라는 시(詩)가 있다고 합니다.
서거정(徐居正, 1420년/세종 2년~1488년/성종 19년)의 ‘목멱상화’(木覔賞花)와 이승소(李承召, 1422년/세종 4년~1484년/성종 15년)의 ‘목멱상화’(木覓賞花)라는 시(詩)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도십영(漢都十詠)의 목멱상화(木覓賞花)는 목멱산(木覓山)에서 한성(漢城)을 바라본 풍경(風景)을 시(詩)로 표현(表現)한 것입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남산(南山)의 본래(本來)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인데, 옛말로는 ‘마뫼’라고 합니다.
일제(日帝) 시대(時代)의 잡지(雜誌) <별건곤(別乾坤)> 1929년 10월호에 따르면,
“남산(南山)은 일명(一名) 종남(終南) 또는 목멱(木覓)이다. ‘목’(木)은 남(南), ‘멱’ (覓)은 산악(山岳)의 음(音)을 취(取)한 것이니, 역시(亦是) 남산(南山)이란 뜻이다”라고 합니다.
[출처=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00116/25448305/1]
추가적(追加的)으로, 남(南)쪽에서 부는 바람(風)을 ‘마파람’이라 하고, 남(南)쪽을 ‘마녘’이라고 합니다. 또한 ‘마뫼’의 ‘뫼’는 산(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목멱산(木覓山)의 위치(位置)를 비정(比定)하기 위하여,
목멱(木覓)의 발음(發音)을 ‘木覓’(목멱)=‘Mumi’(무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구상(地球上)의 어디에서 ‘Mumi’(무미)라는 이름의 산(山)을 찾으면, 그곳이 남산(南山) 즉 목멱산(木覓山)일까요?
아시다시피, ‘木覓’(목멱)을 ‘Mumi’(무미)로 발음(發音)하는 것은 현대(現代) 표준(標準) 중국어(中國語)와 똑같습니다.
오늘날의 한어병음(漢語倂音)으로 살펴보면, ‘木’(목)은 ‘Mu’(4성)이고 ‘覓’(멱)은 ‘Mi’(4성)입니다.
서거정(徐居正)이나 이승소(李承召)와 같은 사람들은 1446년(세종 28년)에 제정(制定)-공포(公布)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알고 있었을 터인데, 그들이 ‘木覓’(목멱)을 ‘Mumi’(무미)로 발음(發音)하였을까요?
‘Mumi’(무미)라는 발음(發音)은 ‘木覓’의 <훈민정음(訓民正音)>과 분명(分明)히 다릅니다.
그들은 대륙(大陸)의 어느 지방(地方)에 살았던 사람일까요?
그들은 표준어(標準語)가 아닌 사투리 또는 방언(方言)을 사용하였을까요?
그들은 옛말인 ‘마뫼’를 ‘木覓’(목멱)으로 한자(漢字) 표기(表記)하고 ‘Mumi’(무미)라고 발음(發音)하였을까요?
그것은 이른바 이두식(吏讀式) 표현(表現)이었을까요?
만약(萬若) 그것이 이두식(吏讀式)이라면, ‘木覓’(목멱)을 ‘마뫼’라고 읽어야 합니다.
‘무미’는 ‘마뫼’와 똑같은 말일까요?
‘마뫼’는 표준어(標準語)이었고, ‘Mumi’(무미)는 사투리 또는 방언(方言)이었을까요?
도대체 어느 시기(時期)에 ‘마뫼’가 ‘무미’로 바뀌었을까요?
‘다음 카페’ <아시아문화사연구회> 서우성 선생님의 주장(主張)에 따르면,
아프카니스탄(Afghanistan) 발흐(Balkh; Bactra) 남(南)쪽의 ‘Sar-e Pol’(사르이폴) 산맥(山脈) 남(南)쪽에는 ‘Mumi’(무미)라는 지명(地名)이 있다고 합니다.
[출처=http://cafe.daum.net/asiaculture/DdIu/45]
그곳을 당시(當時)의 목멱산(木覓山)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게다가, 발흐(Balkh; Bactra)의 ‘Termez’(테르메즈) 지역(地域)을 당시(當時)의 ‘한양’(漢陽)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곳이 당시(當時)의 ‘장안’(長安)이었고, 그곳에 ‘한강’(漢江)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무다리야’(Amu Darya)는 당시(當時)의 ‘한강’(漢江)이었을까요?
서우성 선생님의 주장(主張)은 홍진영 선생님의 “이성계(李成桂)는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의 티무르(Timur)이었다”는 주장(主張)과 연결(連結)되는 내용(內容)입니다.
따라서 엄밀(嚴密)한 검증(檢證)을 위하여, 앞으로 철저(徹底)히 연구(硏究)할 필요(必要)가 있다고 보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6AC7224B87559672)
[출처=위키백과(한국어)]
첫댓글 이씨 조선이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하여 호북성 한양까지 왔다는 추리가 가능할 만큼 이런 설들이 본 학회에 풍미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설들은 중시해야 합니다 단 동쪽에는 조선이 없었다는 무리한 설만 빼고요
최남석 선생님, 코멘트... 고맙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그 이론이 막연한 이론으로, 그 학설이 주관적 학설로 끝나지 않고 객관적 사실로 인정받으려면, 그 주장자이든 그 동조자이든 '증명'의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륙조선사를 뛰어넘여 서역조선사.. 서역조선의 진실이 언제쯤 밝혀질까여.. 금세기에는 힘들것 같습니다. 대륙조선사도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구조선사>를 진실이라고 주장하시는 지명선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