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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의 2023년은 이미 끝났지만, 각급 학교의 졸업식은 2월에 마무리 된다. 매년 돌아오는 졸업식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분들이 있다. 일반 학생뿐만 아니라 초ㆍ중등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방송통신중ㆍ고등학교`, 평생교육법에 따른 `문해교육프로그램` 수료자들이다. 이들도 각자의 배움터에서 졸업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들 졸업식의 풍경은 일반 학교 졸업식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이 학사모를 쓰고 있고, 이들의 자녀가 부모의 졸업을 축하하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어르신들의 졸업을 바라보는 자녀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와 함께 부모의 설움을 알기에 눈물이 흐른다.
이들 부모 세대들이 겪은 시대는 말 그대로 풍상의 세월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까지 일제의 압제로 식생활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교육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또 광복 이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하루 끼니는 고사하고 매일 생명유지의 두려움에 떨어야 했으니 배움에 목이 말라도 사치성 욕망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배우지 못함을 자식들 교육으로 채워 나갔다. 자신들은 먹고 입지 못해도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이후 세대들은 학교 교육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역량을 확대했고 이를 통해 산업근대화의 주역이 됐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이면에는 배움에 목말랐지만 배우지 못한 우리 부모 세대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후세대들의 이해와 배려는 극히 미미하기 짝이 없다.
울산시 교육청에 따르면 2023학년도 울산 지역 방송통신 중ㆍ고등학교의 졸업생이 102명,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초등과정ㆍ중학과정 학력을 인정받은 성인이 197명으로 총 299명이 졸업장을 받게 됐다. 이들은 어린 시절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해 세월이 흐른 뒤에야 교육의 문을 두드린 성인들이 대부분이며, 방송통신 중ㆍ고등학교의 경우 해마다 입학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르신들이 체감하는 울산의 성인교육 인프라는 부족한 실정이다. 올해 문해교육 프로그램 졸업자에 따르면 `중학교 과정까지 학력이수를 하더라도, 울산의 방송통신고 정원에 제한이 있어, 입학에 실패한 사람은 고등학교 과정을 포기하거나 타 지역 학교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자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던 환경에도 불구하고, 부모로서, 경제주체로서 헌신하고, 후세대의 풍족한 생활에 기여한 어르신들에게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 교육 기회를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 채 치열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배움을 통해 만족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새로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방송통신 중ㆍ고의 정원 대비 입학수요를 파악하고, 정원 확대 또는 학교 신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인 대상 교육 기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홍보도 병행해야 한다.
물론, 이 또한 다른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예산과 행정력이 적지 않게 수반되는 일이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축소되거나 사라질 사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일군 터전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학교 시설과 교육 시스템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도리치고는 자그마한 수준에 불과하다.
헌법에 보장된 교육 받을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했던 부모세대 모두가, 삶의 후반부에서나마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 본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