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공부법(학문의 갈림길에서 누구를 찾아 물을 것인가?)
강연이나 답사 중에 물을 때가 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어려서 공부를 잘 했을 것 같습니까? 못했을 것 같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잘했을 것 같다.’고 하고, 내 말에 물음표를 느낀 사람은 ‘못했을 같다.’고 하는데, 연암은 어렸을 때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고 결혼 이후에야 글을 배울 수 있었다.
“연암은 안색이 불그레하고, 윤기가 돌았다. 또 눈자위는 쌍꺼풀이 졌으며, 귀는 크고 희었다. 광대뼈는 귀밑까지 뻗쳤으며, 긴 얼굴에 드문드문, 구레나룻이 났다. 이마에는 달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주름이 있었다.
몸은 키가 크고 살이 쪘으며, 어깨가 곧추 섰고, 등이 곧아 풍채가 좋았다. 그런데 연암을 그린 초상화는 연암을 제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초상화에서 보여 지는 모습은 눈이 찢어지고, 날카로우며, 덩치 큰 모습만 강조했지, 그 내면의 따사롭고 풍부한 면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초상화는 아무나 함부로 맡길 것이 못된다.“
연암의 아들인 박종채가 지은 <과정록過庭錄>에 실린 글이다.
연암 박지원의 생애는 순탄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벼슬에 오르지도 못한 채 박지원이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나 할아버지에게서 자라게 되었다. 벼슬자리에 있을 때 청백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그의 할아버지는 연암을 불운한 자식이라 생각하여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박지원은 열 다섯 살까지 글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죽고 박지원의 나이 열여섯 살인 1752년(영조 28)에 전주이씨全州李氏 보천輔天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다. 박지원의 처숙인 교리校理 이군문李君文은 박지원이 공부할 시기를 잃었음을 알고서 “사대부로 배우지 않으면 어찌 행세할 것인가? 오늘부터 나에게 가르침을 받겠느냐?” 하고 물었고 박지원은 그 자리에서 배우겠다고 승낙했다.
박지원의 문집에 수록된 시문중 제일 처음에 쓰여진 것이 그의 나이 열아홉 살에 지은 <이교리제문李校理祭文>인 것을 보면 박지원이 그 때에야 비로소 학문을 연마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스승이자 처 외삼촌인 이교리가 별세하자 연암은 진솔한 제문을 남겼다.
제가 현문賢問의 사위가 되고, 어린 나이에 스승에게서 배움을 받았습니다. 두 분 형제분의 정이 두터웠고, 화기和氣가 넘쳐났지요. 그때 장인 이 내게 이렇게 말했지요.“ 내 동생이 글을 좋아해서 벼슬은 변변치 않지만 문학에 매우 열성이다. 네가 내 집 사위가 되었으니 내 동생을 스승으로 삼아라.”
스승은 나를 아낌이 장인 못지않았으므로 저에게 시서詩書를 주고 엄한 일과로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스승을 모시고, 몸가짐 갖기 4년이 되었지만 문장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쇠약한 문학만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스승께서는 저에게 산문은 한유韓愈의 뼈로 만들고, 시는 두보의 살갗을 갈아 만들어 재주 없는 사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제 겨우 스승의 인도와 보살핌으로 겨우 못난 사람을 면했는데, 문득 가시니 아득한 학문의 갈림길에서 누구를 찾아 물을 것인가,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옛날 책 한 권을 읽으려고 해도 막히고 어그러짐이 많아서 겨우 몇 줄 읽어 내려가면 온갖 의문이 서로 가로막아서 책을 덮고 한숨지으며 눈물 흘리기 일쑤입니다.
이 의문을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요? 또한 이 게으름을 누가 독려하겠습니까? 지난여름 장마와 무더위에 스승의 병이 처음 들었을 때에도 저를 돌아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어찌 물을 살피지 않느냐? 큰일을 하려거든 흐르는 물처럼 바빠야 하느니라.” 하셨으니, 그 말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상제가 앉아야 할 거적자리에는 맏 상주도 없고, 노모는 아직 살아 계시는데, 알기 어려운 것은 귀신에게나 물어 볼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문과에 장원은 하였지만, 집안은 매우 청빈하였고, 두루 화려한 요직을 거쳤으나 어버이 봉양으로 외직을 맡지 않으셨으며, 한림원이란 영광스런 자리도 스승께서는 영광스런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올린 상소 하나로 흑산도 변방에 귀양을 가서 저는 벽에 걸린 지도를 보고 눈물 방울방울 흘렸습니다. 그 옛날 유배를 갈 때는 위로의 말이라도 전했지만 이제 이렇게 떠나시니 차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갖춘 제물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인정과 예절로 갖춘 것이라 존령尊靈은 어둡지 않아 모름지기 이 한 잔 흠향하시라.“ 상향.
연암 박지원이 스승이자 처 작은 아버지인 <이교리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자기에게 학문의 길을 열어준 스승이 이 세상을 떠나갔으니, 말 그대로 세상을 다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연암의 제문을 읽다가 보면 세네카가 <도덕론>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가벼운 슬픔은 수다스럽지만, 큰 슬픔은 벙어리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인생이라는 길목에서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인데, 연암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스승을 만나 공부한 것이리라.
중요한 것은 연암의 공부법에서 보듯 너무 이른 공부, 조기교육이 능사가 아니다. 공부가 꼭 필요할 때 하는 공부, 연암처럼 절실하게 연애하듯 하는 공부가 바로 연애 공부법이다.
어느 시절에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사는가?
2024년 10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