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 1
조선 미술사는 안견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안견과 몽유도원도를 배경으로 하는 ‘도원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장편소설을 쓴 일도 있어서, 안견이라는 인물에 더욱 더 애착이 간다. 그가 화가로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견의 이야기를 몇 편으로 나누어서 소개하려 한다.
정확한 생몰년대는 모른다. 그의 호는 현동자(玄洞子)와 주경(朱耕)이다. 주경은 붉은 인주로 경작하여 산다는 뜻이니, 자신이 그림을 그려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화가임을 드러낸 거시다. 현동자를 문자대로 해석하면 검은 동굴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도가적 사상을 뜻하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출생진인 충남 서산군 지곡면의 지명이리라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생졸년대는 모르지만 연구자에 의하면 대강의 생년을 태종 18년(1418)이라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한국미술사’를 쓴 ‘맥큔’ 여자는 생몰년대를 대락 1400 – 1470년으로 잡았다. 몽유도원도가 그려진 년대라든지, 조선을 방문하여 안견의 화풍을 배워간 일본의 畵僧의 자료에 의하면 근접한 년대이리라고 추정한다.
안견이 죽은 해도 모른다.
후원지인 안평대군이 죽는 계유정난(1453) 때도 살아남았다. 이후에 아들이 대과에 올라 출세했을 때도 기뻐하였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세조조인 1464년에 아직 화원화가로 벼슬살이를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니까 안견은 세종조에 이름을 날린 유명화가였고, 문종-단종-세조 조의 화가였아며, 성종(1469-1494) 때도 어쩌면 화가로 활동하였으리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