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3. ●●●●●동계집(東溪集)의 경일 태허(敬一太虛)와 위작된 재약산영정사고적의 태허 남붕(太虛南鵬) 등 검증 <2> 작성중

작성자:도재국 작성시간:2019.09.13 조회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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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 ●●●●●동계집(東溪集)의 경일 태허(敬一太虛)와 재약산영정사고적의 태허 남붕(太虛南鵬) <2> 작성중
이 글은 "敬一太虛"와 "太虛南鵬"이 同名異人인지? 異名同人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확인이 가능한 모든 자료를 찾아와서 이 게시판에 등재시켜 그 사실 여부를 알아본다
즉, 이 글의 최종 목적은 載藥山영정사고적에 등장하는 인물(鄭東溪, 太虛南鵬 등)의 眞僞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載藥山 영정사(표충사의 1839년 이전의 이름)"의 창건설화인 “재약산영정사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 속에 기록된 載藥山은 경일 태허(敬一太虛)의 東溪集에 기록된 載岳山을 삭제하고 僞作으로 만들면서 고의적으로 載岳山을 載藥山으로 조작한 것이 밝혀지고 있다 ※敬一太虛의 宅號(居號)가 東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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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敬一, 桐溪, 東溪, 鄭東溪, 太虛, 南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알아본다
Ⅰ. 동계집(東溪集,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조선43, 2018.7.30, 동국대학교출판부)에 기록된 "경일 태허(敬一太虛)" 1. 法名 : 경일(敬一) 2. 道名 : 태허(太虛) 3. 居號(宅號) : 동계(東溪) 4. 출생년도 : 숭정(崇禎) 병자년(1636) 5. 출생지 : 인동부(仁同府) 약목촌(若木村) 6. 열반년도 : 을해년(1695.3.15) 7. 열반장소 : 비슬산(琵瑟山) 용천사(湧泉寺) 극락암(極樂庵) 8. 東溪集 지은이 : 敬一 東溪 9. 俗人(출가 前) : 10. 특이사항 : 11. 山名 : 재악산(載岳山) 12. 寺名 : 영정사(靈井寺) 13. 東溪集의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 내용을 보면 아래 "Ⅱ. 재약산 영정사 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과 매우 유사하나, 산명은 載藥山이 아닌 載岳山으로 기록하고 있음 14. 출판 : 2018년 동국대학교 출판부
15. <동계집 차례> ○동계집 해제 ○일러두기 ○동계집 序 ○주
○동계집 제1권 - 오언절구 21편 - 육언절구 3편 - 칠언절구 20편 - 오언율시 43편 - 칠언율시 57편 - 주
○동계집 제2권 - 序 2편 - 記 12편 - 주
○동계집 제3권 - 記 5편 ①大谷寺 創建 前後 事蹟記 ②琵瑟山 龍興寺 事蹟記 ③★★★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 ④智異山 白蓮臺記 ⑤★★★載岳山記 - 碑銘 4편 - 주
○동계집 제4권 - 잡지 6편 - 주 - 간기(刊記) : 康熙 五十年(1711년.숙종 37년) 慶尙左道 密陽 載岳山 靈井寺 開刊 - 동계집 후발 - ★★★ [ 부록 ] 태허당 대사 행적 - 주
※율시의 편법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넷으로 나누어진다. 1·2구를 기, 3·4구를 승, 5·6구를 전, 7·8구를 결이라 한다. 논자에 따라 용어상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주)도재국 : 위 차례만 보아도 경일태허 대사가 영정사에 주석하면서 지금의 천황산을 載岳山으로 기록하면서 "載岳山 靈井寺 事蹟記"와 "載岳山記"를 남겼다.
동계집은 위작인 "재약산영정사고적"의 내용이 최초로 보이는 공식적인 문헌이다. 동계집에는 載岳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위작인 본 고적에는 대부분의 내용을 동계집과 같이 하면서 산명만 載岳山을 載藥山으로 조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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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재약산 영정사 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에 기록된 "태허 남붕(太虛南鵬)" 1. 法名 : 태허(太虛) 2. 道名 : 남붕(南鵬) 3. 거호(宅號) : 4. 출생년도 : 5. 출생지 : 인동부(仁同府) 약목촌(若木村) 6. 7. 8. 東溪集 지은이 : 정동계(鄭東溪) 9. 출가 전 俗人 : 10. 특이사항 : 姓이 鄭氏임(선원계 세조의 후예가 아니다) 11. 山名 : 재약산(載藥山) 12. 寺名 : 영정사(靈井寺) 13. 별도 人(桐溪 鄭蘊) : 관료, 문인 ※姓氏로 볼 때는 桐溪 鄭蘊으로 보아야 함 14. 별도 人 동계 정온(桐溪鄭蘊) 생몰년 : 1569~1641 15. 동계 경일(桐溪敬一) 생몰년 : 1636∼1695 ※경일 스님이 5세 때 관료 정온(鄭蘊)은 사망함 ※정동계 찬(撰) 간기(刊記)를 볼 때 정온이 사망한 후에 위 고적을 정온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됨(즉, 죽은 정온이 살아서 고적을 작성한 경우가 됨) 16. "재약산 영정사 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은 위작(僞作)으로 보임
※동계 정온(桐溪鄭蘊) : http://m.cafe.daum.net/maejongsarang/BU5z/10385?svc=caf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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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삼대성사(三代聖師) 표충비각(表忠碑閣), 2017.4.24, 무이거부 譯註"에 기록된 "남붕(南鵬)" 1. 法名 : 2. 道名 : 남붕(南鵬) 3. 居號(宅號) : 4. 5. 6. 7. 8. 三大聖師 지은이 : 무이 거부(無二巨芙) 스님 9. 南鵬 기록 출처 : 땀흐르는 사명대사 영당비(四溟大師 影堂碑) 10. 11. 98~99페이지 : 齋任(建祠 南鵬) ※99페이지 註書 334번 : [ 南鵬 : 太虛南鵬. 1755. 4 운문사 삼신불탱(施主) ] ※기록 근거 : 조계산 송광사 성보박물관장 고경 스님 말씀 12. 三代聖師 表忠碑閣 : 譯註(無二巨芙), 발행인(무이거부), 발행처(無二精舍), 제작(도서출판 운주사), 초판 발행(20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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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표충사 진영 약보(表忠寺眞影略譜, 송광사 성보박물관장 고경 스님)에 기록된 "태허 남붕(太虛南鵬)" 1. 法名 : 태허(太虛) 2. 道名 : 남붕(南鵬) 3. 4. 5. 6. 7. 8. 9. 10. 系譜 : 024. 9世 풍담의심(楓潭義諶) 생몰년(生歿年) 1592~1665 027. 10世 월담설상(月潭雪霜) 생몰년(生歿年) 1632~1704 104. 11世 환성지안(唤惺志安) 생몰년(生歿年) 1664~1729 116. 12世 설송연초(雪松演初) 생몰년(生歿年) 1676~1750 268. 13世 태허남붕(太虛南鵬) 생몰년(生歿年) ★ 최초로 표충사당 이건(移建) 계획 마음 먹음 ★ 東溪集 : 敬一, 太虛堂 ★ 古蹟.山名.寺名 확인대상 ★ 동계집 내용 확인 대상 338. 14世 진봉평해(珍峰平海) 생몰년(生歿年) 280. 15世 성파영오(星坡永悟) 생몰년(生歿年) 259. 16世 경파소안(景坡소岸) 생몰년(生歿年) ???. 17世 월파천유(月波天有) 생몰년(生歿年) ★ 월파천유(月坡天有) ★ 표충사당 이건(移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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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밀양 표충사(表忠祠, 김종민.조규환.이철헌 공저, 2014.12.24,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에 기록된 "태허 남붕(太虛南鵬)" 1. 法名 : 2. 道名 : 남붕(南鵬) 3. 거호(宅號) : 4. 출생년도 : 5. 출생지 : 6. 활동 사항 ○1738~1743년 : 남붕의 무안 영취산 表忠祠 중흥(37~42페이지) ○1738년 해인사와 1차 분쟁 : 사명대사 위패 봉안 관련하여 남붕이 해인사와 분쟁 대처(42~45페이지) ※위의 내용으로 보아 남붕은 1738~1743년 까지 무안면 영취산 표충사에서 사명대사를 비롯한 3대사의 表忠祠 중흥을 위해 활동한 흔적이다 ○무안 영취산 表忠祠 수호 승도 돈화 등장(表忠祠守護僧徒頓和等狀) : 205~284페이지 ※이하 남붕 관련 연결문서 포함 ○(무안 영취산) 밀양 표충사 초창 중창시 비국 예조 본도 관문 급 완문 병록(密陽 表忠祠 初創 重創 時 備局 禮曹 本道 關文 及 完文 竝錄) : 285~339페이지 ○감영 완문(監營完文) : 339~340페이지 ○본관 절목(本官節目) : 340~343페이지 ○사명당 비각 이건 서문(四溟堂 碑閣 移建 序文) : 343~347페이지 ○예조 절목책(禮曹節目冊) : 347~351페이지 ○완문(完文) : 351~355페이지 ○완문(完文) : 355~357페이지 ○선교 도유사안(禪敎都有司案) : 357~372페이지 ○영문위 본사 면세문(營門爲本祠免稅文) : 358~362페이지 ○완문 표충사.을사년 작성(完文 表忠祠.乙巳年 作成) : 363~364페이지 ○완문. 밀양 표충사(完文. 密陽 表忠祠) : 365~366페이지 ○순영 완문(巡營完文) : 366~367페이지 ○판청 절목(判廳節目) : 368~370페이지 ○표충사 보원생안 성책(表忠祠 保院生案 成冊) : 370~372펭지 ○표충사 상사문서 등록(表忠祠 上司文書 騰錄) : 372~396페이지
7. 발간 년도 : 2014년 8. 9. 10. 11. 12. 13. 출판 : 동국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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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밀양 표충사 시첩(詩帖, 2018년, 동국대학교 출판부)"에 기록된 "태허 남붕(太虛南鵬)" 1. 法名 : 書簡帖에 따라 [태허(太虛)] 2. 道名 : 남붕(南鵬) → 鵬 3. 당호(堂號) : 태허당(太虛堂) ※동계집 44페이지 : 객이 태허당을 조롱하는 시에 차운하다 차객조태허당운(次客嘲太虛堂韻) 吾堂號太虛~ 내 당호는 태허당인데~
※차운하다 [次韻--] (사람이)남이 지은 시에서 운자를따서 시를 짓다 ※운자 : 한시에 운으로 다는 글자 ※韻 : http://m.cafe.daum.net/y0ujin1387/ePxS/50?svc=cafeapp
4. 출생년도 : ? 5. 출생지 : 6. 시첩 받은 경위와 차례 ○경위 : 현재 表忠寺에 소장되어 있는 시첩은 1738년(영조 14) 당시 서울에 왔던 남붕선사가 유명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받은 시문을 모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증송운시첩(贈松雲詩帖) ○표충사 제영 일(表忠祠題詠一) ○표충사 제영 이(表忠祠題詠二) ○표충사 제영 삼(表忠祠題詠三) ○표충사 제영 사(表忠祠題詠四) ○표충사 제영 오(表忠祠題詠五) ○표충사 제영 육(表忠祠題詠六) ○표충사 제영 칠(表忠祠題詠七) ○표충사 제영 팔(表忠祠題詠八) ※1738년에는 남붕이 무안면의 표충사 중흥(사명대사 활동 홍보)을 위해서 크게 활동한 기간이다
7. 열반 년도 : 1777년 ※ 근거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470
8. 표충사와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지난 2015년 9월 ‘표충사 소장 고문헌조사 업무 협약식’을 체결해 전체 256건의 고문헌과 문서에 대한 구축사업을 전개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9. 발간 년도 : 2018년 10. 고불식 : 2018.9.17 11시 밀양 표충사 대광전 ※고불식 보도 기사(일부) : 이같은 대작불사를 이끈 인물이 사명대사 5세손인 태허남붕(太虛南鵬, ?~1777) 스님이다. 남붕스님은 사명대사의 유고(遺稿)를 들고 영의정송인명 등 당대 고위관료와 저명인사 160명에게 164수의 시를 받았다. 이 시를 모아 간행한 것이 <표충사제영록(表忠寺題詠錄)>이다. <표충사제영록>을 간행에 책으로 묶은 것이 <표충사제영(表忠祠題詠)>이다. 11. 12. 13. 출판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위 사진에 보면 책명이 "밀양 표충사 시첩"과 "밀양 표충사 서간첩"으로 되어 있다 이 두 권의 책에서 태허남붕(太虛南鵬)의 행력(行歷)을 살펴 보아야 한다 ※ 사진출처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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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밀양 표충사 서간첩(書簡帖, 2018년, 동국대학교 출판부)에 기록된 "태허 남붕(太虛南鵬)" 1. 法名 : 태허(太虛) 2. 道名 : 남붕(南鵬) → 鵬 ※대부분의 서간첩에는 受信人을 南 字를 생략하고 鵬 字으로만 기재(南鵬→鵬) 3. 거호(宅號) : 4. 출생년도 : ? 5. 출생지 :
6. 남붕선사 생존기간 확인 : 편지받은 년도를 생존년도로 간주 ○귄1(남붕선사가 편지 받은 년도) 1740년 1742년 1743년 1744년 ○권2(남붕선사가 편지 받은 년도) 1747년 1748년 1749년 ○권3(남붕선사가 편지 받은 년도) 1740년 1751년 1752년 ○권4(남붕선사가 편지 받은 년도) 1738년 1743년 1749년 1753년 1754년 1739년? 1749년? ○권5(남붕선사가 편지 받은 년도) 1745년 1746년 1747년 1738년 ○권6(남붕선사가 편지 받은 년도) 1739년 1740년 1741년 1742년 1750년
※위 기록들로 보면 남붕은 1738년 ~ 1754년 기간에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아래의 열반 년도는 아래의 영문속성 신문(불교신문 이성수 기자 기사)에서 발췌한 것인데 이 년도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1777년에 열반했다면 1754년 이후부터 1777년 열반 때 까지 23년간의 행적을 알 수가 없다
●남붕이 1738년부터 활발하게 활동을 한 것을 보면 적어도 40세 이상으로 본다면(즉, 1738년을 40세로 본다면 1777년에 열반했다면) 열반 당시 나이는 79세이다 ●40세(1738년-40세=1698년=추정 출생년도)+16년(1754-1738=16년)+23년=79세(열반 당시 추정 나이) ●40(출생부터 1738년까지 활동기간)+16(왕성한 활동기간)+23(말년)=79세 ●태허남붕은 기록에 의하면 1738년부터1754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1738년을 40세로 추정한 이유는 ①밀양지역에서 영정사 주지 또는 영취산 표충사의 최고 책임자 정도를 하려면 최소한 40세 이상 되어야 한다 ②밀양지역에서 지역 유림들과 주도적으로 교유하려면 최소한 40세 이상 되어야 한다 ③사명대사 영당비(땀흐르는 비, 1742년 건립) 건립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려면 최소한 40세 이상 이어야 한다 ④사명대사 영당비에 새겨진 불사인명(佛事人名) 171명을 남붕이 직접 만나거나, 최소한 서신으로 교유했다는 것은 적어도 40세 이상 이어야 한다 ⑤사명대사.서산대사.기허대사 선양(宣揚) 사업을 위해 조정에 직접 가서 주도적 활동을 하려면 최소한 40세 이상 이어야 한다 ⑥사명대사.서산대사.기허대사 선양(宣揚) 사업을 위해 경사(京師)에 직접 가서 왕실의 측근과 주도적 활동을 하려면 최소한 40세 이상 이어야 한다 ※경사(京師)는 수도의 다른 말이다. ⑦사명대사 위패를 밀양시 무안면 영취산 표충사에 수호하기 위해서 영남과 전국의 명사(정객과 유림)들을 교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40세 이상 이어야 한다 ⑧사명대사 위패를 밀양 무안 영취산 표충사에 수호하기 위해서 해인사 승통. 수창승과 주도적으로 소송을 한 것은 적어도 40세 이상 이어야 한다 <밀양 표충사 사명대사 위패 수호 자료> 제1차 분쟁은 1739년 3월 해인사의 승려들이 나서서 밀양의 표충사당을 홍제암으로 옮기기 위해 비변사에 상소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주동 인물인 해인사의 승통 성오(聖悟)와 수창승 현일(玄一) 등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같은해 6월 조정의 결정으로 표충사는 밀양(무안면 영취산 표충사)에 그대로 두기로 하고 해인사 홍제당을 훼철해 버렸다. ⑨밀양 무안 영취산 표충사 시대에 고관대작에게 부탁하여 시를 지어달라 하여 받고, 또 고관대작과 고승(高僧)들로부터 서간을 주고 받을 정도면 나이가 적어도 40세 이상 이어야 한다
즉, 남붕의 생몰년(生歿年,출생과 사망일)을 1698년 ~ 1777년으로 억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다시 생몰년을 정리하면 ◆◆◆동계 정온(桐溪鄭蘊) : 1569년 ~ 1641년 ※桐 字가 아래의 東 字와 다름 ◆◆◆경일 태허(敬一 太虛) : 1636년 ~ 1695.3.15 ※宅號(居號) : 東溪 ◆◆◆태허 남붕(太虛南鵬) : 1698년(추정) ~ 1777년
다시 정리하면 ●경일태허(禪師)가 5세 때 동계정온(文臣)이 사망하고 ●태허남붕(禪師)이 태어나기 3년 전에 경일태허(禪師)는 이미 열반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위 3인의 인물은 성명.법명.법호.택호가 서로 비슷하나 세대 순차별로는 적어도 한(一) 세대 이상 차이가 나서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실이 이렇게 추정이 됨에도 소위 영정사 창건설화인 "재약산영정사고적(일명 영정사 창건설화, 약칭 고적)"에 위 3분의 인물을 추정케 하는 듯한 글을 적어놓은 것은 이 고적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위작(僞作)이라는 것이다
동계집의 ○載岳山記(268~272p)와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259~262p) ○刊記(365p)에는 載岳山 이라 적혀 있고 ○太虛堂 大師 行蹟(368~371)에는 그가 영정사(표충사 옛 이름)에 3년간 수행한 기록이 있다
위 동계집에서 옮겨적은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에도 ○188p : 底 康熙 五十年 密陽 載岳山 靈井寺 開刊本 ○210p :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刊記(載岳山 산명 유래 등을 상세히 기록) ○212p : 載岳山記(載岳山 산명 유래 등을 상세히 기록) ○228p : 康熙 五十年 慶尙左道 密陽 載岳山 靈井寺 開刊 ○229p : 太虛堂 大師 行蹟 이라, 적혀 있다 ※한국불교전서는 여러 문헌을 집대성한 문헌이다
"재약산 영정사 고적(위작)"의 내용처럼 "약초가 많거나 효험이 있어 載藥山이다" 라는 직설적인 표현이 없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밀양지(密陽誌)와 밀양구지(密陽舊誌).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 등에는 이 위작을 근거로 載岳山을 載藥山으로 조작하고 있다
필자(도재국)이 보기로는 15세기 중세국어의 "ㅣ"모음이중순행동화 현상으로 한문 "載岳"의 한글식 발음을 할 때 이중으로 된 "ㅣ" 모음이 순행동화를 일어키면서 한글 "재약" 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문 "載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것은 이 게시판에 여러 건의 글로 적어 놓았다
※中世國語의 음운학적 변화에 대한 글(이중모음 순행동화 현상)이 있는 곳 : ★46 ★47 ★47-1 ★47-2 ★47-3 ★47-4 ★83번 글
7. 열반 년도 : 1777년 ※ 근거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470 (불교신문 이성수 기자 기사)
8. 표충사와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지난 2015년 9월 ‘표충사 소장 고문헌조사 업무 협약식’을 체결해 전체 256건의 고문헌과 문서에 대한 구축사업을 전개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9. 발간 년도 : 2018년 10. 고불식 : 2018.9.17 11시 밀양 표충사 대광전 11. 12. 13. 출판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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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 동계집(東溪集, 漢文本 韓國佛敎全書, 동국대학교출판부)에 기록된 "동계경일 (東溪太虛)" 1. 法名 : 경일(敬一) 2. 道名 : 태허(太虛) 3. 居號(宅號) : 동계(東溪) 4. 출생년도 : 숭정(崇禎) 병자년(1636) 5. 출생지 : 인동부(仁同府) 약목촌(若木村) 6. 열반년도 : 을해년(1695.3.15) 7. 열반장소 : 비슬산(琵瑟山) 용천사(湧泉寺) 극락암(極樂庵) 8. 東溪集 지은이 : 敬一 東溪 9. 俗人 : 조선 世祖의 후손 10. 특이사항 : 선원계(璿源系) 11. 山名 : 재악산(載岳山) 12. 寺名 : 영정사(靈井寺) 13. 東溪集의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 내용을 보면 아래 "Ⅱ. 재약산 영정사 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과 매우 유사하나, 산명은 載藥山이 아닌 載岳山으로 기록하고 있음 14. 출판 : 2018.7.20 동국대학교 출판부
Ⅸ. 동계정온(桐溪鄭蘊) 동계 정온(桐溪鄭蘊) 생몰년 : 1569~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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Ⅹ. 검토 사항 ○무이거부 스님이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구입했다는 위 Ⅱ. 재약산 영정사 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은 위작(僞作)일 가능성이 매우 큼 ○위작의 내용 중에 가장 큰 조작으로 보이는 것이 "동계집 원문에는 載岳山으로 기록했는데, 본 재약산영정사고적에는 載藥山으로 조작하여 기록하고 있음 ○위 Ⅱ. 재약산 영정사 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의 찬자(撰者)를 정동계로 했는데, 정동계의 姓氏를 중시(重視)하여 보면 내용은 선원계 세조의 후예인데, 찬자를 정동계(鄭桐溪)로 했기 때문이다 ○위 "Ⅵ. 밀양 표충사의 시첩(詩帖)"와 "Ⅶ. 밀양 표충사 서간첩(書簡帖)"의 열반 년도를 다시 확인해야 함
=== 남권희 소장 동계집 === 한국불교전서 권12 : "序" 다음에 편집되어 있던 "동계집"을 맨 끝 "부록"으로 편집
※"삼대성사 표충비각"의 佛事人名 齋任의 南鵬 기록 근거 : 무이거부 스님에 의하면 "송광사 성보박물관장 고경 스님"께서 운문사 소장 탱화에서 발견되었다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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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日帝) 조선총독부는 민족의 산(山)인 "재악산[載嶽山=載岳山, 해발 1189.2 미터]" 을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위해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했습니다
daum과 naver에서 재악산 산명(山名) 복원 운동 관련 중요 검색어인 "①밀양광장 ②재악산 [③載嶽山=④載岳山, 해발 1189.2 미터], ⑤도재국, ⑥손흥수" 검색을 방해하는 세력은 반민족적 세력으로 응징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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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1394. 동계집 269쪽 재악산기(載岳山記)의 양지자(養智者).양정자(養定者).양신자(養身者), "고선양신자(故善養身者)"란,다음★1392.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고전전적 종합목록, 동계집[東溪集, 券1, 경일 編(조선 후기), 被傳者 朴泰淳(1653~1704) 목판본,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2019.10.28 새벽에 아래의 문장을 추가한다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이라는 이유수 선생의 기고문은 이해하기가 어렵고 또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일러두기”를 먼저 권해 드린다. 산명(山名)에 대해서는 아래의 “7” ~ “10” 항목의 문헌(文獻)과 인물(人物)을 부득이하게 언급할 수 밖에 없는 사정임을 양지하시기 바란다. 1. 본 기고문을 쓰는 목적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허구로 작성된 『천황산일식명설고찰』등에 의하여 민족의 산명인 載嶽山(載岳山) 말살되었다 라는, 사실을 알린다. 우리는 허구로 작성된 이 글의 실체가 어떠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제1봉인 사자봉(獅子峰, 해발 1189.2m)에 붙인 일제 친일의 상징인 天皇山을 없애고 원래의 민족 산명인 載嶽山(載岳山)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동시에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 해발 1119m)에 붙인 조작된 載藥山 산명을 원래의 봉우리 명칭인 수미봉으로 변경시키는 것이다. 2. 문장 부호(숫자) 부여 순서 로마자(Ⅰ,Ⅱ,Ⅲ) → 아라비아숫자(1,2,3) → 한글(가,나,다) → 하얀동그라미숫자(①②③) → 검은동그라미숫자(❶❷❸) → 검은동그라미(●). 하얀동그라미(○) 등이며, 더 많은 지면(紙面) 확보를 위해 들여쓰기를 생략한다. 3. 한글의 옛글 표시 한글문서에서 옛글을 작성해서 카페게시판과 책 편집파일에 붙이면 변환이 안되므로 『옛글 12개』는 『Ⅲ. 이유수의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 考察) (사진)』과 『사진 30』을 참고 바란다. 4. 속성(영문주소 바로가기) 관련 안내 "속성"은 "영문 주소로 인터넷 사이트에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말하며, 다음(daum) 카페(cafe) "밀양광장"에 가입을 하여 로그인을 한 상태에서 아래에 적힌 『속성(영문주소)』을 검색하면(누르면) 해당 글이 있는 곳으로 연결되며, 관련 글과 사진 등이 상세하게 있다. 5. 산군(山群)이란 ○산의 능선(지맥)이 모여 있는 무리 즉, 산의 덩어리를 말하며 형태에 따라서 원형. 일자형. 독립형. 부정형 등으로 구분된다. 비슷한 용어로서 산괴(山塊)라고도 한다. ○표충사를 둘러싸고 있는 재악산군(載嶽山群)은 주봉(主峰. 소위 천황산)인 사자봉이 시계 방향으로 자봉(子峰)인 수미봉(일명 소위 載藥山). 관음봉. 문수봉. 향로봉. 필봉 등을 거느리고 있는 원형의 산군이다 6. 천황산일식명설고찰(天皇山日式名說考察) ○1998년경에 울산의 향토사학자 이유수 씨가 지금의 제1봉(사자봉)인 天皇山은 민족의 산명이고, 제2봉(수미봉, 소위 載藥山)의 위치가 載嶽山이라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적은 글로서 제목을 번역하면 "천황산이 일본식 산명인가를 고찰한다" 이다. ○이 글은 민족의 수많은 지리문헌에 기록된 제1봉의 載嶽山(載岳山) 위치를 자기의 매우 주관적이고도 일반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즉, 고지지와 고지도를 매우 경직된 이해와 독도(讀圖)로써 제2봉의 위치를 載嶽山(載岳山)의 위치로 주장하는 글이다. 본 글에서는 “천황산일식명설고찰”을 약칭 "논문" 또는 "글"로 적기도 한다. 7. 재약산영정사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 ○재약산영정사고적(載藥山靈井寺古蹟)은 일명 "영정사 창건설화" 또는 "표충사 사적기" 라고도 말하나, 2015년에 원문(소위 原文이라 불리는 古蹟)을 입수하여 번역.검토한 결과 찬자(撰者, 지은이) 鄭東溪는 역사상 확인이 되지 않는 인물이고, 일부 내용 또한 역사적 기록과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와 "載岳山記"는 조선시대에 영정사에 주석했던 敬一東溪 禪師가 지은 東溪集에 있다. ○정체 불명의 鄭東溪가 지은 "載藥山 靈井寺 古蹟(재약산 영정사 고적)"은 아래 "9" 東溪敬一의 東溪集에 나오는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밀양 재악산 영정사 전후 창건기)"를 저본으로 취사선택, 필사하여 산명을 載藥山으로 변경한 것 같아 보이고, 일부 내용(머리말 등)을 추가하여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東溪敬一의 東溪集에 있는 "載岳山記"에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재약산영정사고적" 속의 산명 유래를 부정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268쪽 ~ 272쪽) ❶<前略, 앞에 기록은 생략한다> 이제 載岳(재악)이란 이름은 기량. 모양. 색깔. 생산물 중 무엇인가. 마침내 고을의 노인들에게 유래를 물으니 혹은 산의 모양이 수레에 짐을 실은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고, 혹은 신라 왕이 병이 났을 때 이 산의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할 때 수레에 그것을 실었기 때문이라 했으니 이 모양새에서 생겨난 것이다. 혹은 산이 아니라 약초 때문이라 하는데 옛날에 산중에 약초가 많았다 한다.
❷나는 말하길 "모두 맞지 않는다.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하는 것은 소소한 것이고 참된 것이 아니다. 이제 내가 뜻을 모아 생각하여 보면 산의 뿌리가 멀리 백두산. 풍악산. 오대산. 태백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와 동해 바다로 흘러가다가 높이 솟아 푸른 산이 되어 청도. 밀양. 양산. 언양의 수 백리를 휘감고 <中略, 중간의 기록은 생략한다> 밀양 사람들은 또한 나라의 백성이니 이 산 역시 나라의 보배가 아닌가. 그러므로 밀양 사람과 나라 백성은 모두 이 산을 재악이라 하는 것은 마땅하다. 載藥이 병자에게 약을 주는 것이 분명하니 보통 이름이 아니다. 혹은 약초를 캔 세 신선을 말하는데 어찌 한갓 병 치료를 위해서였는가. 도리어 장생불로하여 세상의 허물을 벗고 신선에 오르게 하는 약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 나는 말하길 "불사약은 비록 세상에서 좋은 약이라고 하지만 어찌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게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後略, 뒤의 기록은 생략한다> ○다른 지리문헌을 살펴볼 때 당시에 載嶽山이 주변(영남알프스)의 여러 산을 거느리는 宗山(主山)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천년이 넘는 불교사에서 절과 짝이 되는 배산(配山)과 절을 품고 있는 배산(背山)은 제2봉이 아닌 제1봉을 가리키며, 절의 명칭은 배산의 산명을 취하는 사례가 있으며, 많은 지리문헌 등에 표충사의 옛 명칭을 재악사(載嶽寺) 또는 재악사(載岳寺). 재악사(載岳社)로 적혀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절의 명칭을 "ㅇㅇ寺(사)" 또는 "ㅇㅇ社(사)"로 기록했으며 고려시대에는 "ㅇㅇ社(사)"로 더 많이 기록했으며, "보각국존 일연스님 관련한 1295년 산립(山立)의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에는 일연스님(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의 문도인 선염(禪燄) 선사께서 재악사(載岳社)에 주석하신 것으로 새겨져 있다. 8.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 일명 改修塔記碑(개수탑기비). 약칭 改修碑(개수비)이다. 이 비의 첫머리에는 "名載岳山靈井寺也(명재악산영정사야)" 로 적혀 있다 즉, "이 산의 이름은 載岳山(재악산)이고, 이 절의 이름은 靈井寺이다" 이다. 이 碑는 표충사의 배산이 제1봉인 사자봉이 載岳山이다 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성보유물로서 1995년부터 많은 수난을 겪은 끝에 드디어 2017.10.31 국가보물 제1944호로 지정되었다. 즉, 밀양 영남루와 대등한 보물이 되었다. 9. 문헌에서 발췌한 인물 소개 가. 東溪敬一(동계경일) ○출생.열반 년도 : 숭정(崇禎) 병자년(丙子年,1636) ~ 을해년(1695.3.15) ○출생지 : 仁同府 若木村(인동부 약목촌) ○출처 : 漢文本(한문본) 東溪集(韓國佛敎全書.한국불교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에 기록된 東溪敬一 ○위 "가"의 東溪敬一과 같은 책으로 漢文本으로 발행 년도가 앞섬.
나. 東溪敬一 (동계경일) ○道名 : 太虛(태허) ○출생.열반 년도 : 숭정(崇禎) 丙子年(1636) ~ 乙亥年(1695.3.15) ○출생지 : 仁同府 若木村 ○출처 : 한글본 東溪集(한국불교전서, 조선43, 2018.7.30, 동국대학교출판부)에 기록된 東溪敬一
다. 太虛南鵬(태허남붕) ○출생.열반 년도 : 기록 없음 ○작성 : 鄭東溪 ○출생지 : “仁同府 若木村”으로 기록 ○출처 : 載藥山靈井寺古蹟(재약산영정사고적), 일명 靈井寺創建說話(영정사창건설화) 또는 表忠寺사적기 ○비고 : 鄭東溪(정동계)는 정체가 불명함, 실존 인물 확인 불가. 라. 南鵬(남붕) ○출생.열반 년도 : 기록 없음 ○사명대사영당비 : 98~99페이지 : 재임(齋任) 건사 남붕(建祠 南鵬) ○출처 : 三代聖師 表忠碑閣(삼대성사 표충비각) : 譯註(역주, 無二巨芙.무이거부), 발행인(무이거부), 발행처(無二精舍.무이정사), 제작(도서출판 운주사), 초판 발행(2017.5.2) ○비고 : 무안면 무안리 사명대사영당비 건립을 주도적으로 한 실존 인물. ○비고 : 위 "建祠(건사)"란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현존하는 "사명대사영당비(땀흐르는 비)를 세우는 직위를 맡은 것을 말함"를 말함 마. 太虛南鵬(태허남붕) ○기록 내용
(前略), ●116. 12世 雪松演初(설송연초), 生歿年(생몰년,출생과 사망일) : 1676~1750, ●268. 13世 太虛南鵬, 生歿年 : 기록 없음, ●338. 14世 珍峰平海(진봉평해) 生歿年 : 기록 없음, (後略, 뒤는 생략한다)
○출처 : 表忠寺眞影略譜(표충사진영약보) ○비고 : 밀양부(密陽府) 무안 영취산(靈鷲山) 표충사(表忠祠) 중창 및 삼대사 선양(宣揚)에 노력. 바. 太虛南鵬(태허남붕) ○영취산 표충사에서 사명대사를 비롯한 3대사의 表忠祠(표충사) 중흥과 삼대사 선양(宣揚)을 위해 조정에 직접 출장하여 고위 관료들을 만나 활동, 사명대사영당비(일명 땀흐르는 비) 건립, 해인사 승려의 사명대사 위패 탈취 사건으로 해인사와 분쟁하여 승소하는 등 크게 활동. ○출처 : 表忠祠, 김종민.조규환.이철헌 共著, 2014.12.24, 대한불교조계종불교사회연구소. ○비고 : 사명대사영당비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위 表忠祠란 밀양시 무안면 靈鷲山(영취산)에 있었던 表忠祠를 말함 사. 太虛南鵬(태허남붕) → 鵬(붕) ○法名 : 書簡帖(서간첩, 편지를 모은 책)에 太虛 ○道名 : 南鵬 → 鵬 ○堂號(당호) : 太虛堂(태허당) ○출처 : 밀양 표충사 시첩(密陽 表忠祠詩帖, 2018년, 동국대학교 출판부) ○주요 활동기간 : 1738년 ~ 1754년 ○밀양 表忠祠書簡帖(표충사서간첩, 2018년, 동국대학교 출판부)에 기록된 "太虛南鵬 ○비고 : 위 表忠祠란 밀양시 무안면 靈鷲山에 있었던 表忠祠를 말함
아. 桐溪鄭蘊(동계정온)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ㆍ고고자(鼓鼓子). 저서로는 《덕변록(德辨錄)》, 《동계집(桐溪集)》 등. ○출생 : 1569년(선조 2) ○사망 : 1641년(인조 19), ○경력 : 사간(司諫), 이조참의(吏曹參議), 대사간(大司諫), 대제학(大提學), 이조참판(吏曹參判)
10. 인물 비교 ○위에 기록된 8명의 인물(“가” ~ “아”)은 같은 인물도 있고, 서로 다른 인물도 있고, 정체 불명의 인물도 있다. ○특히 “영정사창건설화”로 불리는 위 “9 - 다”의 “載藥山靈井寺古蹟”의 일부 기록과 작성자 鄭東溪(정동계)는 위 다른 항목의 인물과는 姓氏(성씨)는 다르나 號(호)는 비슷하고, 또 다른 인물의 생몰(生歿 : 출생과 열반. 사망)의 년대와 본(本) 고적의 작성 년대가 차이가 난다. ○동계정온(桐溪鄭蘊)이 사망한 훨씬 뒤에 鄭東溪가 본 古蹟(고적)을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어 선원계보(璿源系譜, 세조대왕의 후손 계보)가 아닌 俗人(속인)으로서는 서로가 다르고, 속인의 姓氏가 다르니 더욱 아니다. 또 년대상의 차이가 있다.
○위에 열거한 서로 다른 호(號.호, 法名.법명, 道名.도명, 堂號.당호, 居號.거호) 가 붙은 인물은 다음과 같이 각각 다른 사람이다. ❶정온(鄭蘊) : 호(號)가 동계(桐溪), 관료(官僚, 대제학 등의 벼슬을 함) ❷동계(東溪, 道名 太虛) :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와 "載岳山記"를 지음, 선사(禪師, 스님), 영정사 주석. ❸정동계(鄭東溪) : 위작(僞作)으로 보이는 "載藥山靈井寺古蹟"을 지은 것으로 간행기(刊記)에 적혀 있음, 정체 불명 인물 ❹태허남붕(太虛南鵬) : 선사(禪師, 스님), 밀양부 영취산 表忠祠 주석. ○“영정사창건설화”로 불리는 위 “9 - 나”의 “載藥山靈井寺古蹟(재약산영정사고적)”의 일부 기록과 작성자 鄭東溪(정동계)과 작성 년대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조사가 되어야 겠다. ○위에 열거한 내용 중에 나오는 表忠祠(표충사)란 密陽府(밀양부) 載嶽山(재악산)의 "靈井寺(영정사, 載嶽寺,재악사).表忠祠"를 말하는 것이 아닌 "密陽府 靈鷲山(밀양부 영취산)에 있었던 表忠祠(표충사)"를 말한다. ※본 글을 작성하는 것을 보고 있던 한 대학 졸업 직장인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문을 잘 모르므로 한글을 같이 적어주어야 한다" 라는 말을 듣고,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목적이 있으므로 삭제했던 한문을 다시 같이 적음을 양지하시기 바란다.
◎속성 : ★1393. ●●●●●동계집(東溪集)의 경일태허(敬一東溪, 道名은 太虛)와 위작된 재약산영정사고적의 태허남붕(太虛南鵬) 등 검증 <2> 작성중.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fldid=9fnZ&page=3&prev_page=1&firstbbsdepth=000ndzzzzzzzzzzzzzzzzzzzzzzzzz&lastbbsdepth=000n2zzzzzzzzzzzzzzzzzzzzzzzzz&edge=&contentval=000mL000mOzzzzzzzzzzzzzzzzzzzz&selecty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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