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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에 위와 같은 휠체어 비슷한게 나와 손수레의 역사를 찾아보면서 휠체어 같은게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아보자.
손수레는 보통 일륜, 이륜, 삼륜, 사륜으로 나뉜다. 다륜차는 5000년전에 등장했지만 일륜차는 그 보다 훨씬 뒤에 발명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륜차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한데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 아티카 반도에 있는 고대 건축물에서 자재리스트 2장이 발견되었는데 그 시기는 기원전 408~406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리스트에 monokyklou, dikyklos, tetrakyklos라는 글자가 등장하는데 뒤의 두 글자는 각각 이륜차와 사륜차를 의미하는듯 하고 mono는 "단일"이라는 뜻으로 monokyklou는 일륜차인듯 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일륜차(외바퀴 손수레)
한편 중국에서는 한나라때 손수레가 발명된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후한말 삼국지의 주인공 제갈공명은 목우와 유마를 발명해 전쟁에서 식량을 수송했다고 진수가 쓴 삼국지에 나온다.
목우와 유마는 바퀴가 한개인 일륜 손수레일것으로 고증하고 있다. 촉지방에서 중원으로 통하는 잔도를 통해 짐을 운반하기에는 이륜차는 불편하다는것이 사실이니까.
일륜차 형태는 쓰찬성과 산동성에서 발견된 漢墓(서기118년 희황제의 무덤안 벽돌부조)내 벽화와 부조에도 나온다
당시 일륜 손수레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앞에 돛을 단것으로 알려져있다.
TV 삼국지 드라마에 제갈공명은 아래와 같은 사륜 수레 즉 현재의 휠체어 유사한 것을 사용하는 모습으로 많이 나온다.
보통 역사에는 휠체어가 19세기 이후에 발명되었다고 하지만 제갈공명이 탄것이 휠체어가 아닐까?
송나라 高承은 "사물기원"에서 일륜손수레는 제갈공명이 발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한시대 경학자 劉向이 쓴 효자전에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윈 동영이 "鹿車"에 아버지를 모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녹차가 바로 일륜차이다.
범엽이 쓴 후한서에도 녹차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共挽鹿車(함께 녹차를 끈다는 뜻으로 부부가 함께 화목하게 지낸다는 뜻). 또 하나는 서기 23년에 서한의 멸망시 대신 조희와 한중백이 녹차에 아내를 태워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략 이런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이륜차보다 일륜차가 많았다고 한다(손수레의 경우).
일단 한명이 두명을 태울수 있고 균형을 잃고 넘어질 경우에도 탑승한 곳과 지면간의 간격이 좁아 이륜차보다 안전하기는 했을것이다.
이를 독륜거라 칭하고 있다.
중국 송나라때의 그림을 보면 위와 같은 일륜 손수레가 많이 보인다.
청명상하도내 한부분
바퀴가 하나일 경우 중심만 잘 잡으면 회전도 쉽고 비포장길이나 좁은길에서 훨씬 수월하고 빠르게 운반할수 있는 장점이 있었을듯 하다. 관아에 물건을 공급하거나 시장상인들이 많이 이용한듯 하다.
인력거의 시초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그것도 한나라때에서부터.
우리나라의 경우
주로 위와 같은 종3품 이상의 관용차로 알려진것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록을 보면 조선 숙종때 병조판서 민진후(1659~1720)가 "신이 북경에 갔을때 독륜거(외발손수레)를 보았습니다. 이를 고쳐서 양륜거(이륜 손수레)를 만들도록 하였더니 독륜거보다 조금 나았습니다 "
이규경(1788~?)은 "중국의 수레 사용은 매우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양륜거뿐이다"고 하였다.
독륜거는 외발수레에 물건을 균형 잡히게 싣고 다니는 손수레라면 양륜거는 바퀴가 두개 달린 손수레이다. 바퀴가 두개라 안정감이 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양륜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양반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모양 빠지게 양쪽에 한명씩 타는 것보다야 두바퀴로 혼자서 여유있게 타는것이 더 모양이 나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길이야 양쪽이 다 비슷한 형편이었을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그림에 손수레가 나오는 걸 찾아보면
위 그림에 나오는 화외소거라는 말은 자치통감을 쓴 중국의 사마광 (1019~1086) 이 절친인 소옹이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소옹이 오다가 꽃을 구경하다 늦는 것이라면서 소옹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며 쓴 글에 나오는 내용으로 소옹이 구경하던 꽃은 매화꽃이었다고 한다. 아마 초봄이었을 것이다. 사마광의 화외소거의 문장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이다
위의 그림을 보면 손수레가 양륜거인데 뒤에서 미는 인력거의 형태이고 휠체어 형태임을 알수있다. 실제 소옹이야 중국식 일륜거를 탔을 가능성이 높으리라.
즉 조선시대 후기에 양반들은 중국의 외발손수레를 들여와 두발손수레로 바꾸어 한가로이 외출시 이용했음을 알수있다. 가마보다야 인력도 덜들지 않았을까?
당시 그림을 보면 뒤에서 긴막대를 오로지 힘으로 미는 형태임을 볼수 있는데 이럴 경우 길이 안좋거나 오르막일경우 상당히 힘들었을것 같다.
짐을 싫고 운반하는 손수레의 그림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짐을 운반하는 손수레가 있기는 했겠지만 선비들의 그림에 올리기에는 고상한 내용이 아니어서 그리지 않았을수도 있었으리라
유일하게 보이는것은 정조때의 화성성역의궤에 나온 유형거인데 이것이 손수레인지 소나 말을 이용하는 달구지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성을 쌓는데 사용했으니 무거운 돌을 운반하던 달구지였지 않았을까?
아무튼 우리나라에도 손수레가 없었는것은 아니었는듯 하다.-펌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