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애인이 있다면
김이듬
아침 일찍 카페에 가지 않겠어
카페 문 열릴 때까지 서성이다가
콘센트가 있는 구석 자리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겠어
한여름에 애인이 생긴다면
집에 당장 에어컨부터 달겠어
나의 밝은 방으로 그를 초대하겠어
같이 마트 가서 고등어를 골라도 재미있겠지
하지만 애인을 찾을 수가 없네
둘러보면 유쾌하게 떠드는 사람들뿐이야
내가 다정해보이지 않는 건 알아
만약 내가 식물이라면 내부에 붉은 꽃을 피우는 과야
저기 혼자인 이는 온라인게임만 하고 있군
말을 붙일 찬스도 없네
“이렇게 나이 먹은 사람이 오실 데가 아니잖아요.”
마주 앉은 이가 찡그리며 말했지
우연히 부킹한 것 뿐인데
친구 부부 따라 춤추러 간 것뿐인데
그날 샴푸나이트클럽 사이키 조명 아래에서
그도 내 또래로 보였는데
인간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젊게 생각하지
아, 여름날 애인이 있다면
밤새 춤을 추겠어
물속에서도
원피스 안에 수영복 입고 지금 당장 해수욕장 달려가겠어
잠자지 않고 밥 먹지 않아도 헤엄치며 신나겠지
저녁 때가 가까우니 카페 손님들이 해변 피서객처럼 빠져나가네
음료 한 잔 더 주문해야 눈치가 덜 보이겠지
아, 무화과깜뺘뉴는 왜 이리 비쌀까
여름에 애인이 생긴다면
카페에서 죽치며 우스꽝스러운 시를 쓰지 않겠어
웹진 『시인광장』 2024년 8월호 발표
김이듬 시인
2001년 계간『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베를린, 달렘의 노래』,『히스테리아』,『표류하는 흑발』,『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투명한 것과 없는 것』과 장편소설『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디어 슬로베니아』, 『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출간. 연구서적으로 『한국현대페미니즘 시연구』가 있음. 2014년 제7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