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시즌도 어느새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팀의 윤곽도 어느 정도 드러났고 시드니올림픽 대표선수 명단도 발표됐다.
개인타이틀에 근접한 선수들은 막판 페이스를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한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은 반드시 황금색 메달을 걸어오겠노라고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심사에서 송구홍의 이름은 보이질 않는다. 올 시즌 11경기에 나와 21타수 4안타에 타율 0.190. 92년 20-20을 달성하며 LG의 신바람야구를 주도할 때와 비교하면 송구홍이 야구할 맛이 나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송구홍은 자신을 가장 '행복한 야구선수'라고 말한다. 야구를 통해 돈을 많이 벌어서도 아니고 야구선수로서 예전에 기량을 한꺼번에 회복할 묘안이 있어서도 아니다. 송구홍이 느끼는 행복은 다름 아닌 팬들로부터 비롯된다.
99시즌이 끝나고 쌍방울이 해체되면서 송구홍은 잠시 갈 길을 잃었다. 그 때 그를 LG로 불러준 은인은 LG구단이 아니라 송구홍의 팬이자 LG팬들이었다.
그러기에 송구홍은 항상 팬들을 먼저 생각하는 야구를 한다.
"가장 어려울 때 나를 구해준 은인은 바로 팬들이다.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준 팬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그 분들이 경기장을 찾는 이상 대주자로 나가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트레이드가 가르쳐준 프로야구
송구홍은 97년까지 7년을 뛰던 LG를 뒤로하고 98년 해태로 트레이드 됐다. 그리고 1년만에 쌍방울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송구홍은 이 기간을 통해서 비로소 프로야구를 배웠다고 한다.
송구홍이 해태에 있을 때는 우승의 잠재력이 어디서부터 나오는가를 배웠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팀원들간의 신뢰와 공동체 정신이 해태에는 깃들어 있었다고 한다. 무슨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얘기 같지만 대표팀이든지 프로팀이든지 간에 이 정신이 없으면 절대 좋은 성적을 못낸다는 것.
그리고 쌍방울 시절에는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꼈다고 한다.
잠실구장에서 LG유니폼을 입고 2만명에 가까운 관중들 앞에서 하는 야구와 천명이 채 안 되는 관중이 모인 전주구장에서 하는 야구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역시 프로야구는 팬 앞에서 하는 것임을 새삼 인식한 송구홍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시기였다.
송구홍은 92, 93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했으나 94년부터 96년까지 부상과 군복무가 겹치면서 급속한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송구홍 자신은 "그 기간 동안 감을 잊어 버렸다. 그리고 타격감을 잊는 것은 쉬어도 다시 찾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며 3년의 기간이 야구선수로서 큰 고비였음을 털어놨다. 물론 송구홍은 " 내 자신이 나태했기 때문"이라며 다른 핑계는 일체 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송구홍은 인터뷰 당일에도 손목과 왼손 검지에 부상을 안고 있었다. 이것이 항상 따라 다니는 송구홍의 적이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플레이를 선보이다 잔부상을 당하기 일쑤였다. 작은 부상이라도 한번 당한 부상은 다음 경기에 지장을 주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부진한 성적으로 이어진다.
팬들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그러면 과감한 플레이를 줄이면 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 사실이다. 하지만 송구홍은 진지하게 야구를 하다보면 파인플레이가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내가 항상 웃는 것을 보고 산만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가끔씩 나오는 멋진 플레이도 경기에 집중하는 중에 나오는 것일 뿐이다."
송구홍이 항상 웃는 이유도 프로야구의 생명력은 팬으로부터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게 인상 붉히는 모습을 보일 순 없다는 것이다. 송구홍 자신도 심판 판정이 애매하거나 경기가 마음대로 안 풀릴 때는 수 없이 화를 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경기장에서 화날 때마다 그대로 발산했다면 지금 내가 LG 유니폼을 다시 입지 못했을 것이다. 팬들이 나를 다시 LG로 불러준 것도 내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야구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구홍은 항상 행복하고 언제나 감사하다. 경기장으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중얼거리며 다니는 송구홍. 그는 행복하다. 벤치에 있든지 2군에 있든지 자신을 기억해주는 팬들이 있으니까.
"항상 안타를 치고 멋진 수비를 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기장에 단 1분을 서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진지하게 야구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팬들에게 그런 송구홍이었고 야구선수로서 첫째 목표도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