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통영행
십일월 끝자락 일요일 아침은 통영 미륵섬 리조트에서 맞았다. 대학 동기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날아 밝아와 지기들에게 ‘은행 단풍잎’을 넘겼다. “곡우비 내리던 날 지상에 밟힌 수꽃 / 초가을 암그루 밑 알알이 열매로써 / 암수는 각자 나뉘어 한 차례씩 낙하다 // 겨울이 오는 길목 번잡한 도심 거리 / 샛노란 은행잎은 바람에 흩날리어 / 단풍은 황금빛으로 길바닥에 쌓인다”
새벽에 남기는 생활 속 글은 어제 오전 대산 평생학습센터에서 ‘앞당겨서 한 숙제’로 미리 올려두고 전날 오후 통영으로 갔다. 아침에 넘긴 가락의 은행 단풍은 거리에 쌓인 낙엽을 곁들여 숙소에서 즉석 읊조린 시조와 함께 보냈다. 아침을 맞은 리조트 창밖으로 한려해상 국립공원 청정한 바다가 보였다. 거목으로 자란 해송 그루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광이 아름다웠다.
전날 아귀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충무 김밥과 회를 곁들인 술잔으로 늦은 시간까지 담소를 나눴다. 여덟 명 가운데 수년 전 배우자를 여읜 한 친구는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대구 친구는 사정이 있어 불참해 모두 여섯 친구 부부인데 나는 혼자 다녀 동기들에 면목이 없다. 통영에서 일찍 명예퇴직한 친구는 아직 현업 종사자라 할 수 있고 나머지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울산 친구는 주중 고향 함양으로 돌아가 노부모를 돌보고 농사를 지어 정정했다. 다른 한 친구도 처가 동네로 귀촌해 고령 장모를 모시며 농사를 지었다. 전업 농부 못하지 않을 농장 규모에 근면함이 이웃으로 퍼져 내가 사는 동네까지 부지런히 농사짓는 일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한 친구는 파크 골프에 심취하는 등 각자 처한 사정이 달라도 퇴직 이후 시간을 멋지게 보냈다.
친구들보다 먼저 잠을 깨 산책 대신 휴대폰으로 지기들에게 시조로 안부를 전하고 아침을 먹으러 여장을 꾸려 나섰다. 진행을 맡은 친구가 사전 답사로 미리 알아둔 산양읍 거리에서 가까운 돌솥밥 식당으로 갔다. 말린 생선구이와 구수한 된장국으로 아침밥을 먹고 한 친구는 먼저 떠났다. 합천에서 열리는 파크 골프 대회 출전을 앞둬 우리와 시간을 같이 보낼 여건이 못 되었다.
식후 근처 박경리 기념관을 찾으니 시설 개선공사라 둘러볼 여건이 못 되어 발길을 돌렸다. 그 뒤쪽 묘소라도 참배하고 싶었으나 다른 친구들은 다음 행선지로 가자고 해 봉수골 전혁림 화백 기념관으로 갔다. 통영 출신 예술가 유치환과 윤이상이 동료로 동행한 1947년도 통영여중 재직시절 경주 수학여행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그의 그림이 걸렸다.
미술관 2층과 3층까지 구상과 추상의 전시 작품을 둘러보고 1층 카페에서 한담을 나누고 용화사로 향했다. 벚나무는 나목이 되어 겨울을 날 채비를 미친 보도를 따라 걸어 용화산 기슭 고즈넉한 절집을 찾았다. 숲길에서는 역광으로 비친 햇살에 남녘 산자락 늦게까지 남은 단풍잎이 고왔다. 산등선 너머 한국전쟁 당시 고승이 머물렀던 미래사가 있으나 거기까지는 가질 못했다.
우리 일행은 점심밥을 먹으로 중앙시장 골목으로 갔다. 밤에는 다찌집으로 알려진 주점이 낮에는 보리밥으로 맛깔스러운 점심상을 차려내는 식당이었다. 상차림에 커다란 돔이 찜으로 익혀 나와 보리밥집이 맞나 싶었다. 제철 굴은 전으로 부쳐 나와 밥상을 받아 짧은 여정에서 포만감을 느꼈다. 통영에서 사는 친구의 안내를 잘 받음에 감사를 표하고 손에는 명물 꿀빵까지 들었다.
진주로 떠나는 친구가 있고 울산으로 복귀하는 친구 차에 동승해 국도를 달려 고성을 거쳐 마산 내서로 왔다. 의령으로 귀촌해 농사를 짓는 친구는 아내가 복지관에서 연말 열린 공연 리허설로 먼저 돌아가 나와 동행해 왔다. 셋이 오다가 둘이 먼저 내리고 울산 친구는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짧으나마 바깥에서 하루 머무는 일정도 이제 지쳐 앞으로 몇 해 더 지속될지 의문이다. 25.11.28
첫댓글
어라?
어제의 움직임을 복사해 놓은 듯 하구나.
<청학동과 칠불사 답사> <서가 산책>잘 보았다네.
귀한 몸 잘 챙기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