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말씀'
세수는 남 보라고 씻는다냐 ?
머리 감으면 모자는 털어서 쓰고 싶고
목욕하면 헌 옷 입기 싫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겠냐만은 날마다
새 날로 살아라고 아침마다 낯도 씻고 그런거 아니냐.
안 그러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낮을 왜 만날 씻겠냐 ?
고추 모종은 아카시 핀 뒤에 심어야 되고 배꽃 필 때 한 번은 추위가 더 있다.
뻐꾸기가 처음 울고
세 장날이 지나야
풋보리라도 베서 먹을 수 있는데,
처서 지나면 솔나무
밑이 훤하다 안 하더냐.
그래서 처서 전에 오는 비는 약비고, 처서비는 사방 십리에 천석을
까먹는다 안 허냐.
나락이 피기 전에
비가 쫌 와야 할텐데...
들깨는 해 뜨기 전에 털어야
꼬타리가 안 부서져서 일이 수월코,
참깨는 해가 나서
이슬이 말라야 꼬타리가 벌어져서 잘 털린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든
살펴봐 감사 해야 한다.
까치가 집 짓는 나무는 베는 것 아니다.
뭐든지 밉다가 곱다가 허제.
밉다고 다 없애면 세상에 뭐가 남겠냐?
낫이나 톱 들었다고
살아 있는 나무를 함부로 찍어 대면 나무가 앙 갚음하고,
괭이나 삽 들었다고
막심으로 땅을 찍으대면
땅도 가만히 있지 않는것이다.
세상에 쓸데 없는 말은 있어도 쓸데없는 사람은 없는것이다.
나뭇가지를 봐라.
곧은 건 괭이 자루,
휘어진 건 톱 자루,
갈라진 건 멍에,
벌어진 건 지게,
약한 건 빗자루,
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놈이 있고
작은 놈이 있는 것이나,
야문 놈이나 무른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한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 나가먼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겠냐?
밥 하는 놈 따로 있고
묵는 놈 따로 있듯이,
말 잘 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 있고,
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도 다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없어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겠냐.
내 살아보니 그닥시리
잘난놈도 못난 놈도 없더라
허기사 다 지나고 보니까
잘 배우나 못 배우나
별 다른 거 없더라.
사람이 살고 지난 자리는,
사람마다 손 쓰고 마음 내기 나름이지,
많이 배운 것과는 상관이 없는 갑더라.
거둬감서 산 사람은
지난 자리도 따뜻하고,
모질게 거둬들이기만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죽고 없어저도 까시가 돋니라.
어쩌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 도와 가면서 살아라 해라.
다른 사람 눈에 눈물 빼고 득 본다 싶어도 끝을 맞춰 보면 별 거 없니라.
누구나 눈은 앞에 달렸고,
팔다리는 두개라도 입은 한 개니까
사람이 욕심내 봐야
거기서 거기더라.
갈 때는 두손 두발 다 비었고.
말 못하는 나무나 짐승에게 베푸는 것도 우선 보기에는 어리석다 해도 길게 보면 득이라.
모든게 제 각각,
베풀면 베푼대로 받고,
해치면 해친 대로 받고 사니라. 그러니 사람 한테야 굳이 말해서 뭐하겠냐?
내는 이미 이리 살았지만 너희들은 어쩌든지 눈 똑바로 뜨고 단단이 살펴서, 마르고 다져
진 땅만 밟고 살거라.
개는 더워도 털 없이 못 살고, 뱀이 춥다고 옷 입고는 못 사는 것이다.
사람이 한 번 나면, 아아는 두 번 되고 어른은 한 번 된다더니,
어른은 되지도 못하고
아아만 또 됐다. 인자 느그들 아아들 타던 유모차에도 손을 짚어야 걷는다니.
세상에 수월한 일이 어디에 있냐?
하다 보면 손에 익고 또 몸에 익고 그러면 그렇게 용기가 생기는 것이지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지...
옛 노인 말씀
하나도 틀린 말 없네요.
우리 늙은 이들이 듣고 살던 그때 그말씀 그립습니다.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가 남긴 유언의 글
너무도 가슴 절절한
사연이 마음에 와 닿네요
어떻게 시골 노인네가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머니 사랑과 수고에 감사합니다.
[림태주 산문집]
"그토록 붉은 사랑"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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