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작이 치료를 시작하고 20일이 되자 태자는 건강을 되찾았다. 사기에는 능생사인(能生死人)으로 적혀 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의사가 돈을 탐내어,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병이 있다며 치료하려 드네.”
피부에 가려운 증세가 있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환자들이 많다. 어떤 환자는 의사가 심각한 병의 초기 증세라고 말해줘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일단 의심부터 한다. 진실을 회피하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병이 조금 악화되어도 그 반응은 달라지지 않는다. "난 병이 없다니까요!"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해질 것이라는 두 번째 경고에는 이렇게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요행을 바라는 심리 때문이다.
이번 사자성어는 병입골수(病入骨髓)다. 앞의 두 글자 병입(病入)은 '~에 병이 들다'라는 뜻이다. 골수(骨髓)를 순우리말로 바꾸면 '뼛속'이다. 이 둘이 합쳐져 '뼛속까지 병들다'라는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 병입골수(病入骨髓)는 사마천 사기(史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편의 한 일화에서 유래했다. 병입골수(病入骨髓)와 병입고황(病入膏肓)은 같은 뜻이다. 고황(膏肓)은 심장과 횡경막 사이다. 몸의 제일 '깊은 곳'을 비유한다.
편작(扁鵲)은 기원전 401년 출생했다. 본명은 진월인(秦越人)이다. 전(田)씨 제나라의 환후(桓侯)는 '서둘러 치료해야 한다'는 편작의 경고를 세 번 연속 무시하다가 결국 사망한다. 두 번째 경고에만 치료를 시작했더라도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병이었다. 당대의 명의 편작도 '뼛속까지 스며든 병'은 치료할 방법이 없었기에 서둘러 도주한다.
편작(扁鵲)을 글자 위주로 풀이하면 '널리 돌아다니는 까치'라는 뜻이다. 중국인들도 까치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로 여긴다. 그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위중한 환자들을 치료해 붙여진 이름이다.
편작(扁鵲)은 주요 진료 과목도 현지의 수요에 맞춰 변경했다. 부녀자를 귀히 여기는 한단(邯鄲)에서는 산부인과 위주로 진료를 했다. 노인을 존중하는 낙양(洛陽)에서는 안과와 관절염 치료 통증 클리닉을 열었다. 어린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함양(咸陽)에 머물 때는 소아과 진료에 전념했다.
편작(扁鵲)이 괵(虢)나라 태자를 살려낸 에피소드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그가 괵나라 궁문 앞에 이르렀을 때 태자는 그날 새벽 이미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였다. 그가 사망한 태자를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편작(扁鵲)은 먼저 태자에게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을 듣는다. 이어 "제 의술은 맥을 짚거나 안색을 살피거나 청진(聽診)을 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병의 증상만 들으면 확진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라며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과연 편작의 진단대로 태자의 병은 시궐(尸蹷)이었다. 시궐(尸蹷)은 졸도하여 죽은 사람처럼 되는 병증이다. 편작이 치료를 시작하고 20일이 되자 태자는 건강을 되찾았다. 사기에는 능생사인(能生死人)으로 적혀 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편작(扁鵲)의 최후는 꽤 덧없다. 질투에 눈이 먼 동종 업계 종사자가 보낸 자객 손에 희생됐다. 동서고금 인간 세상에 좋은 일만 계속될 수는 없다. 평생 좋은 일을 해도 최후 순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수 있다. 이런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사례는 의외로 세상에 흔하다.
편작(扁鵲)의 인품은 무던한 편이었다. "뭐, 제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재주가 있는 게 아니에요. 원래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을 제가 ‘일어서게’ 한 것일 뿐이죠." 괵나라 태자를 되살리는 공로를 두고도 그는 이처럼 '쿨(cool)'하게 말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발견된 이후 현대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지금은 '병이 걸려 죽으려고 해도 그게 쉽지 않다'는 유머까지 있다.
하지만 유독 심리 분야에선 약물치료의 길이 여전히 미답이거나 미완성이다. 우리 현대인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을 많이 앓고 있다. 불편함과 신음 소리와 두려움은 있지만, 편작(扁鵲)이 선보인 비책(秘策)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수시로 엄습하는 불안으로 사회적 은퇴를 강요당하는 이들도 있다.
의술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성과 중시 문화에서 원인을 찾는 진단도 있다. 궁금하다. 여전히 우리의 전부를 지배하는 이 마음이란 것은 대체 우리 몸 어디쯤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