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3편 세상꽃>
⑦ 유희의 애꿎은 사랑-42
유희는 또 다시 서울로 갔다고 하였다.
천복은 언제나처럼 지게를 지고 유남이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서 땔나무를 하여오고는 하였다.
여름철이라 산에서 자라는 관목이나 교목들이 죄다 잎이 무성하여 풋나무를 하게 되었는데, 마당에 널어서 땡볕에 말리어야 땔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한여름으로 갈수록 한겨울에 비하면 땔감이 훨씬 적게 들었다. 구들방에 불을 땠다가는 방안이 후끈거리어서 견디기가 어려웠던 거였다.
그래서 마당에다 화덕을 차리어놓고 거기에다가 밥도 짓고, 국과 찌개 같은 것을 끓이었기에 땔나무가 많이 드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저절로 이틀이나 사흘을 걸러서 나무를 하여 오더라도 땔감이 달리지는 아니하였다.
유희가 또다시 서울로 갔다는 말도 유남에게서 들었다. 그런데 그는 연화와 올가을에 혼인을 할 거라고 벼르고 있었다. 이미 초여름에 사주단자도 보내어서 혼약도 하였고, 홍산에 가서 약혼사진도 찍었다고 하였다.
그러한 그는 요즘 들어서는 연화네 집에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연화아버지가 손을 쓰던 돼지우리도 더욱 튼튼하게 고치고, 또 돼지우리를 넓히는 일을 비롯하여 잡다한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달리어들어서 일손을 돕고는 하였다.
유남이를 새침때기에 꽁생원으로만 알았던 연화엄니는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돼지우리는 한 칸을 더 늘리고, 우리의 세로막대기도 탄탄한 연목가래를 총총히 못질하여서 고치어놓았다.
그러한 뒤의 어느 날이었다.
암퇘지 두 마리를 장부맞춤을 한다면서 수퇘지를 불러들이었다. 수퇘지는 서당이 있는 점생이 동네에서 불러왔다. 그 크기가 이백오십 근이나 넘는 거구의 시커먼 흑돼지이었다.
이 흑돼지는 근동에서 하나뿐이었다.
흑돼지는 연화네 안마당으로 들어서더니, 대뜸 우리에 들어있는 암퇘지를 보고서는 껑충껑충 뛰면서 세로막대기를 넘성거리더니, 우리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누구인가 귀뿌리에 흰 점이 박힌 암퇘지를 마당으로 풀어놓았다. 흰점박이 암퇘지가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흑돼지가 냅다 후리는데 볼만하였다.
흰점박이의 등으로 올라타는데, 중량이 엄청 무거운지라 짓눌리어서 납작이 엎드리었고, 암퇘지는 흑돼지를 보더니, 뜨물 같은 분비물을 흥건히 쏟아놓았다. 그러자, 웬 도래송곳 같은 성기가 발작 증세를 일으키면서 암퇘지의 뒤꽁무니에 박히면서 흘레붙더니 사정없이 돌아가고 있는 거였다.
동네사람들이 하얗게 안마당과 울 너머를 채우고서 시선이 모아지었다.
연화도 유남이 옆에 나란히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연화엄니도 연화아버지 옆에 서서 신기한 듯이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흑돼지는 한동안 암퇘지 꽁무니에 붉게 상기된 도래송곳을 꽂고는 흘레붙어서 돌아가자, 수퇘지의 음수와 암퇘지의 분비물이 함께 용솟음치는 게 장관이었다. 말⨉하는 걸 보면 과부가 수절을 못한다고 하지만, 돼지 장부맞춤도 그와 못지않게 볼만하였던 거였다.
“유희오빠, 웬 물이 저렇기 많은 겨? 오호호.”
그녀는 불그데데하여진 낯빛이었는데, 낮은 소리로 옆에 서있는 유남에게 넌지시 묻고 있었다.
“돼지는 본래 그려.”
유남은 돼지가 본래부터 그렇다고 대꾸하였다.
“새끼를 많이 날 것 같어유.”
연화가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새끼를 많이 낳겠다고 하였다.
“아무려나, 애액(愛液)이 많으면 새끼도 많이 배겠지.”
유남이가 나름의 생각대로 말하였다.
연화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유남이도 암퇘지가 새끼를 많이 배기를 바랐다.
경산이 사준 배메기돼지이니, 새끼를 많이 밸수록 수입이 큰 까닭이었다. 만일 열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면, 교미한 값으로 한 마리를 접어두더라도 아홉 마리인데, 넉넉히 잡고라도 네 마리의 돼지새끼를 얻게 되는 것이니, 땡잡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연화 시집가는 혼인잔치에 돼지 한 마리 잡을 만도 하였다. 잔치에 돼지 잡는 집도 흔치 않았다. 하기에 만일 연화네 혼사에 돼지를 잡는다면 여간한 큰잔치가 아닐 거였다.
연화와 유남이 혼약이 맺어지자, 어두운 그림자만이 칙칙하게 엉기던 두 집안이 갑자기 밝은 빛이 서리고 있었다.
천복은 한창 짙푸르게 자라나는 볏논두렁을 밟아가면서 올가을 추수를 마치고 지원입대를 하든, 입산을 하든 집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에 잠기었다.
이대로 집에 꿇고 있다가는 나뭇지게를 벗을 날이 없고, 농사도 소농이라 품앗이를 하면 남의 농사를 짓지 않을 수가 없기에, 평생토록 이러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히어 있었다.
배우고 수양하는 일은 당장은 집안에 보탬이 없더라도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지원입대를 하면 언젠가는 복무하여야할 병역을 미리 치르는 게 되고, 군대에 입대할 때까지 공부를 한다면, 그만큼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거였다.
(<제4편 입산기> 1. '출가'입니다)
첫댓글 돼지가 바램데로 새끼를 많이 낳으면
살림에 보탬이 되겠지요^^
지금 세상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너무너무 가난들 했습니다. 닭을 키워 돼지를 사고 돼지를 키워 소를 사서 그러한 밑천으로 토박한 논배미라도 장만하게 되지만 그게 쉽지 않고 날마다 먹고 사는 일이 커서 곤란지경에 빠지고는 했지요. 돼지 소 심지어는 닭 몇 마리가 잘 자라도 잘 되는 집안이라고 칭찬했으니까 가축도 병들어 죽기가 보통이었습니다. 집안이 잘된다는 것도 순전히 운명에 맡기고 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