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We Were – Memories
1974년. 모교 휘문을 졸업한지가 불과 엇그제 같은데 어느새 몇 년만 지나면 졸업 40주년이 되고 또 이어서 60세 이순 (耳順)이 된다고 하니 이글의 제목을 옛 추억을 더듬는 의미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노래 제목 그대로 “우리가 걷던 그 길 – 추억들”로 하였슴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우리가 졸업한 1974년 2월에 빌보드 챠트 1위를 3주간 장식하였던 노래입니다..
이 글의 제목을 노래제목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라 우리시대의 노래와 관련한 추억부터 시작하겠슴니다. 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세대에게는 라디오는 아주 친밀한 존재였지요. 고달픈 대학입시 준비에 밤늦게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듣던 심야방송이 그나마 유일한 탈출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 “0시의 다이얼”, “꿈과 음악사이” , "밤의 플랫폼 이야기" 등등의 프로그램들이 메마른 우리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어 주지 않았나 싶슴니다. 7080이란 단어로 표현되는 이 시대의 노래들은 아직도 노래방의 인기가요들이고, 또 우연이 이 시절의 포크송이나 팝송이 들려오면 아련한 옛 추억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TV 오락프로그램에서 요즘 신세대 대중가요에 밀려서 한동안 7080의 노래를 듣는 것이 심야프로그램에서만 가능했었는데 최근에 MBC의 “나도 가수다”와 KBS2의 “전설-불후의 명곡”이란 코너에서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추억의 노래들이 다시금 우리의 심금을 울려줍니다. 인터넷에서 70년대의 가요와 빌보드 챠트를 검색해 보았슴니다. 귀에 익고, 부를수 있는 노래가 너무 많아 언급할수 조차 없었슴니다.
또 70년대에 일상용어처럼 널리 쓰였지만 세대를 거치며 세월 따라 사라져간 유행어를 기억하십니까? 기발한 표현과 해학성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였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은 무슨 말인지 조차 모를 것입니다. 그냥 죽 나열해 보겠슴니다.
고삐리(풋나기 고교생), 꼰장(교장), 꼰대(선생님), 꼰닥터(양호선생), 꼰녀(여선생), 향토장학금(부모가 내주는 학비), 몰래 바이트(비밀과외), 11호 자가용(걷기), 깔치(여자친구), 까이(놈씨), 오리지날(결혼할 여자), 자가용(여자 파트너), 리바이벌(다시 만난 여친), 영구취직(결혼), 초팅(야외미팅), 고팅(고고춤을 추는 미팅), 부팅(부르스를 추는 미팅), UN공주(성매매 여성), 레지(다방 여종업원), 딸딸이(자위행위), 야코 죽이기(기죽이기), 깡다구(배짱), 썰레풀다(거짓말하다), 뜳다(아니꼽다), 기똥차다(아주 좋다), 해골 굴린다(빈둥거린다), 빠졌다(기강 해이), 못생긴 얼굴을 빗대어 민주주의, 후지카, 몰카, 졸도카, 호박, 박호순(거꾸로 읽으면 순호박),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건빵(눈이 작은 사람), 무허가 건축(여드름이 난 얼굴), 핫바지, 짱아찌, 공돌이와 공순이, 전돌이와 전순이, 당시에는 흔했던 식모를 지칭한 솥뚜껑 운전수, 미숙이, 밥모, 그리고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탄생한 돈국구(정치헌금 내고 전국구 국회의원), 사꾸라(상대 첩자), 국물(뇌물), 쇠가루(돈), 사바사바(뒷거래), 모리배(수단 가리지 않고 이익만 꾀하는 사람)
70년대의 유행을 낳았던 추억의 광고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광고효과는 대단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님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슴니다.” 이 말 그당시 많이 유행했었는데 지금들어도 재미있는 표현 같슴니다.
“흔들어 주세요~ 해태 써니텐”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손에 담아드려요~” 광고보다 CM송이 더 유명했던 오란씨 광고.
“주고싶은 마음, 먹고싶은 마음”의 빙그레 퍼모스트 광고. 아이스크림 광고라기 보다는 오히려 남심을 자극하는 카피가 인상적인 광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농심라면 광고.
“친구는 역시 옛친구, 맥주는 역시 OB”
“오직 그것뿐! 그 언제나 상쾌한 맛, 난 느껴요”의 코카콜라 캠페인.
마침 지금 세종문화회관 전시관1에 가면 “여기는 대한민국 1970 KHz”라는 전시회를 볼수 있슴니다. 전시기간은 내년 2012년 2월 28일까지이고, 70년대의 가정집, 복덕방, 이발관, 골목가게 등등을 실물로 전시해 놓았기 때문에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 볼수 있슴니다. 부부가 손잡고 관람해 보기를 추천해 드림니다. 그리고 전시실중 “시간의 방”에 있는 포스터 내용을 조금 길기는 해도 그대로 옮겨 봅니다.
혼수품목 제1호 재봉틀
대중탕의 베스트 셀러 이태리 타월
아버지의 자존심 월급봉투
한국 최초의 신약 활명수와 이명래 고약
Fassion & Passion 미니스커트와 통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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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씨앗 썬데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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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기적 그리고 애환 국민교육헌장, 교복, 교련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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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식문화의 혁명 분유, 커피, 소주, 라면
쾌적한 주거환경의 일등공신 양변기
미디어 시대를 연 금성A501호 한국 최초의 흑백 TV
도깨비 팬티만큼 질긴 검정 고무신
우리 휘문 66회 동기들. 6 to 6.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호쾌하게 술을 마시고, 그리고 다시 직장으로… 청춘의 정열과 체력은 과거의 자화상일 뿐, 현재는 벌써 인생의 황혼기를 목전에 앞두고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세대로 전락하기 일보직전 이지만, 과거에 그랬드시 오늘도 열심히 그리고 내일도 더 건강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동기들끼리 더욱더 돕고, 의지하고, 격려해 가면서. “지는 태양이 바다를 두려워 하랴.”
첫댓글 이번 교우회보가 66회 특집이랍니다. 황홀한 간택을 받아 정신없이, 그리고 두서없이 하명받은 글을 써 보았슴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많이 지적해 주시기 바람니다. 아예, 새롭게 다른 친구가 다른 각도에서 쓰는 것도 좋을 듯.
역시 광고업 하시는 분의 글답게 짧지만 강렬한 임팩트가 압권입니다. 66회 소개 글로 최고..^^
제 눈에 띈 옥에 티 하나 구봉서,곽규석 콤비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는 삼양이 아니라 농심라면 광고로 기억되네요.
농심라면. 맡슴니다. 즉시 수정. 꼼꼼이 관심같고 읽어 준 이총무님 너무 감사!
꼰대는 선생님의 은어인 것 같군요..
제 기억에는 아버지나 선생님 양쪽에 다 사용했던 기억이...
까이(놈씨), 깔치(여자친구), 작은 집(변소), 쐬가루(돈), 푸시기(담배), 식구통(입), 빠졌다(군인 기강해이), 튀튀한다(투덜대는 소리),
"오매 좋은거"(박노식), "뭔가를 보여 주겠다" "일단 한번 와보시랑껭요"(이상 이주일), 기똥차다, X삐리(풋나기 고교생), 깡다구(배짱),
지식을 팔아먹는 상인(학원강사), 썰레풀다(거짓말하다), 딸딸이(자위행위), 업자(실업자), 뜳다(아니꼽다), 아메더치, 히빠리(호객꾼), 민주주의(못생긴 여자 얼굴), 방안에 누워 해골 굴리다(빈둥거리다), 전돌이/전순이(전문학교 남/여학생), X또 방위, 야비군(예비군),
똥싸게(군대 인사계), 길러서 먹는다(?)등의 隱語, 俗語, 卑語들도 있었지요
역시 기억력의 천재, 신회장님 답슴니다. 동의해 준다면, 아니 동의해준 것으로 감히 알고, 일부는 윗글 내용에 포함시키겠슴니다. 감사.
옛날 추억들이 새록새록 기억나게 만드는 재미난 글 입니다. 훌륭합니다.
홍 성호 교우가 이번 66회 특집교우회보에 휘육회 모임도 게재 한다고 하여 이전 모임때 찍은 사진을 여기에 올려달라고 하여 올립니다. 허락하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꾸벅.
방송국 팝송 프로그램에서는 "3시의 다이얼(DJ최동욱, 동아방송), 2시의 데이트(DJ김기덕, FM), Young 840(DJ최경식, 기독교방송),
뮤직텔스타/밤의 디스크쇼(DJ이종환, 문화방송), 한밤의 음악편지(DJ임국희, MBC)"도 있었습니다.
역시! 역시나! 이글은 동창중 기억력 최고에다 문장력도 좋으신 신회장님이 쓰실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좋을 내용은 감사하지만 이미 원고를 편집위원회에 넘겨서 추가할수가 없네요.
광고계 대부입니다.윤영진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