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과 촌부들이 있던 자리에, 낯선 아파트가 들어선다
토지구획정리사업과 택지개발이란 '개발의 도구'
리장
오늘도 뜨거운 여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다.
한 낮의 태양을 나무그늘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가며 달려간 곳은 인천 서구 검암동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 서구 공촌동과 공촌천(지방2급 하천)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이웃동네다.
↑ 택지로 개발되고 있는 검암지구
↑ 새로 지은 검암경서동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
↑ 검암동 일대를 나타내는 지도
OOO동 OOO동이라 행정상으로 경계지어 괜히 멀게 느껴지지만, 옛날에는 마을 규모가 작아 다들 알고 지낸 이웃사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가 이 근처에 하나밖에 없어 다들 한 학교출신 동창들이고 또래친구거나 선배, 후배이다.
그리고 이웃한 마을 처녀와 총각이 서로 혼인을 하는 경우도 있어 마을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계양산 줄기 아래서 대대손손 벼농사와 밭농사를 생업으로 하고 있던 사람들은, 품앗이나 두레 등을 통해 함께 노동하고 필요한 농기구들을 서로 빌려쓰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 새로난 도로로부터 살아남은 옛날 주택
↑ 낡은 공촌경로당
↑ 옛모습을 간직한 구멍가게
↑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집
한마리도 예전의 우리 동네는 소규모 농촌공동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마을공동체가, 거침없이 파고드는 잇따른 '개발'에 의해 파괴되어 버렸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니까 10년도 훨씬 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촌동, 검암동, 연희동, 심곡동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인천시내로 장을 보러 나가거나 관공서에 나가려 하면 시간 맞춰 나오는 버스 1대(17번)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이는 달리 말해 그만큼 '개발'의 손이 타지 않아 수려한 자연환경과 풍족한 생활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어떤 이는 이런 모습을 보고 '개발되지 않아 불편하다' ' 어떻게 그렇게 하고 살았을까' '그래서 도시처럼 개발해야 한다'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겐 그 불편함이 지금의 '개발'로 인한 불편함보다 오히려 훨씬 낳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자연친화적' '웰빙'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다)
암튼 순식간에 계양산과 철마산 자락이 산이 깍여나가고 논과 밭이 불도저에 뭉개지고, 그 위에 '개발'의 선봉장인 아스팔트 도로가 나고 그 위에 빌라주택과 아파트들이 속속들이 들어섰다. 그로 인해 땅을 일구며 삶터를 지켜온 이웃들은 도로확장공사와 토지구획정리로 하나둘 땅을 정부와 부동산 업자에게 헐값에 팔고는 외지로 떠나야 했다.
우리 동네서도 우리 집하고 동네 친척과 이웃 몇몇 분들만이 아직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예전처럼 하지 못하고 있다. 다들 나이 드신 분들이고 정말 농사를 짓고는 땅 소유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 조차 벅차기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대대손손 피땀 흘려 일궈온 조상이 물려준 생명의 땅을 팔고 떠날 수 밖에 없다.
↑ 부동산중개소와 임대문의, 땅, 투자 표시가 거리에 가득
↑ 아파트와 부동산의 관계는 상하관계?
그리고 그동안 꽁꽁 묶여있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들이 슬금슬금 풀려나갔고 그 곳에 더 많은 '개발의 부산물'들이 포클레인과 콘크리트의 힘을 빌려 뿌리 내렸다.
* 인천 검암지구 택지개발 관련기사
- 인천/경기 택지개발지구 탐방(1), 동아일보, 2002.09.22
- 인천 서구 검단지구 2006년 물 대란 예상, 문화일보, 2002.10.29
- 인천/경기 택지개발지구 탐방(3) 서구 전원도시 조성사업, 동아일보, 2002.09.24
- 인천 서구 검암.원당지구, 신공항 배우 '주거타운'각광, 파이낸셜타임즈, 2002.10.15
- 인천/경기 20가구 이상 집단취락지역 40곳 개발제한구역 해제, 동아일보, 2005.05.30
특히, 마을과 이웃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낯선 외지인들이 몰려들어 부동산 투기와 오염덩어리들을 한가득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이상 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수 있는 땅이 더욱 사라지고 있다.
이런 것들을 정부와 지자체, 공무원, 민간건설사업자들이 주도한다는 것을 다 커서 알아버렸다.
* 관련기사
- 영종도.인천 투기사범들의 '모럴 헤저드' 천태만상, 프레시안, 2005.08.30
↑ 택지지구내 한 마트(가게)가 철수한 뒤 남은 쓰레기
↑ 누군가에 의해 버려지는 쓰레기들
↑ 구획정리가 끝난 곳에 버려지는 건축물쓰레기
↑ 생활쓰레기와 건축물쓰레기
↑ 어디서 굴러온건지?
↑ 날카로운 유리
↑ 흉물스런 쓰레기더미
위와 관련하여 어머니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의 초등학교 동창인 한 친구분이 검암동에서 벼농사를 크게 짓고 계셨는데, 나이가 드시면서 큰 농사를 혼자 짓기도 어렵고 수지타산도 맞지 않아(당시 우르과이라운드니 쌀개방이니 하면서 농민들을 더욱 어렵게 했다) 결국 그 땅들을 구획정리다 개발이다 하면서 밀려들어온 부동산 업자에게 팔고 큰 돈을 얻으셨지만, 이내 주식투자의 덫에 걸리고 사기를 당해 쫄딱 망하고, 이제 건설현장의 잡부로 일하시고 있다는 한다.
'개발'이라 미명하에 마을공동체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개발지역으로 묶여버린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이웃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어야 했다.
서글프다.
↑ 건물공사가 한창
↑ 토지구획정리가 끝난 검암동 일대
↑ 아파트 성벽
↑ 줄지어 들어선 아파트
↑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붙여놓은 현수막
↑ 콘크리트 건물만 가득
↑ 전원주택단지 건설이 계획된 구역
↑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
이렇게 '개발하면 다 좋다' '살기 편해진다'라는 입발린 소리를 하는 '개발세력'들이 이용한 방법이, 바로 '국민주거생활의 안전과 복지향상에 기여하기 휘해 제정했다'는 택지개발촉진법을 앞세운 '토지구획정리사업'과 '택지개발'이란 것이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도시계획구역 내 또는 국토건설종합계획법에 의한 특정지역 내에서 대지로서의 효용증진과 공용시설의 정비를 위하여 하는, 토지의 교환. 분합. 구획변경. 지목 또는 형질변경. 공공시설의 설치 및 변경에 관한 사업'으로 시행자는 토지소유자. 토지구획정리조합. 대한주택공사. 지방자치단체 및 국가라고 한다.
택지개발은 '공영개발택지'와 '민영개발택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공영개발택지는 말그대로 '국가 및 공공기관이 직접 토지를 매수하여 개발한 후 공급하는 택지를 말하며, 사업주체가 공공기관이다. 즉 한국토지공사, 지방자치단체, 대한주택공사(SH) 등이다.
하지만, 이런 '공공의 이익추구'란 이름하에 감춰진 '개발'의 도구들은 부동산 투기 우려, 개발이익 환수장치 미흡, 사업기간의 장기화, 공공시설 확보의 어려움과 난개발 등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왔다.
이전 신도시로 각광받았던 용인의 택지개발상에서 발생한 난개발 문제와 최근 건교부가 서울 강남지역의 그린벨트내 임대주택 건설계획이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에서 거부된 것과 관련된 뉴스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관련기사
- 용인 난개발...환경파괴 심각, SBS, 2005.07.05
- 용인 수지 마지막 녹지 사라지나, 한겨레, 2006.01.25
- 정부 임대주택 졸속추진 도마에...연대 공급차질, 2006.07.31
그린벨트가 이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토지구획정리와 택지개발이 한창인 검암동 일대를 돌아보니,
'정말 왜 이렇게 해야 하는건지? 진정 이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국민들의 주거생활의 안정을 위한 것인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개발'이 아닌 다른 '개발'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딱히 어떤 대안이 떠오르진 않는다.
대신에 멋드러진 '개발계획'을 줄줄이 만들어내시는 머리좋고 뛰어나신 분들이 그런 것들 좀 고민해 주면 안될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첫댓글 대단하시네요... 언제 사진 찍고 , 언제 자료 정리하고 ...언제 입찰 보러 다니는지 ...대단 하시네요 짱님!!! 참......... 8월 8일날 남부지원 맨 앞 좌석에 계섰던 분이 유니짱님이신가요? 신정동 빌라 입찰 하셨던.... 얼굴을 알았으면 인사라도 헀을 텐데... 아쉽네요!!!
역사의 자료같아요... 대단하십니다.